[비트코인 A to Z]화폐를 ‘사회적 약속’으로 본 미제스…암호화폐 현상 해석의 좋은 틀
20세기의 금본위론자가 비트코인을 본다면
(사진)오스트리아학파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17년 12월 말 ‘비트코인의 가격은 제로’라는 분석 보고서를 냈다. 모건스탠리는 또 다른 투자은행 JP모간에 비해 암호화폐에 우호적이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가 2017년 9월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말하자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고먼 CEO는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그 이상의 ‘무엇’”이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하지만 모간스탠리의 투자 전략 애널리스트들은 비트코인의 실제 가격은 0달러에 가깝다고 결론 내렸다. 화폐로서는 여러 면에서 하자가 있는 데다 금과 같은 실체나 내재 가치가 전혀 없다고 분석한 것이다.

사실 비트코인 가격이 거품이라는 주장은 상식적이지만 논리적이지 않다. 이유는 자산 가격에서 ‘거품’을 논할 때는 ‘적정가격’을 유추할 수 있을 때만 의미를 갖는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만 보고 거품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간 현상에 대한 ‘억지스러운 평가’일 뿐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50만원 미만이던 2015년에도 글로벌 유력 경제지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거품이라고 주장했다.

계속해 나오는 ‘폭락론’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5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폭락할지, 10만 달러에서 5만 달러로 폭락할지 모른다면 ‘폭락은 피할 수 없다’는 조언은 너무도 공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의 가격은 결국 0이라는 주장은 분명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주장은 비트코인이 적정가격을 따질 만한 내재적이거나 혹은 객관적 가치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논거들로 뒷받침된다.

◆비트코인의 객관적 가치는 ‘0’이 당연

화폐의 교환가치 외에 화폐가 갖는 상품으로서의 내재 가치를 중시하는 이론은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와 관련 있다. 미제스는 국가 통화 체계를 비판하며 금본위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신적 지주다.

미제스의 저서 ‘화폐와 신용이론’은 화폐로서 비트코인을 옹호하려는 이들이라면 여러 번 읽어야 할 고전이다. ‘화폐의 가치는 고정돼 있다’는 논리로 비트코인을 비판한다면 이 책에 의해 바로 논박당할 것이다. 마치 미제스가 살아서 비트코인을 둘러싼 논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현장감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스트리아학파가 다른 경제학자들에 비해 비트코인에 대해 호의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모건스탠리처럼 비트코인의 실제 가치는 0이라는 과감한 주장은 오스트리아학파의 논거를 차용할 때도 가능하다.

이렇게 뒤죽박죽인 이유는 사태가 단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자의 가르침은 추종자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이해되기 어려운 피할 수 없는 비극 때문이다.

미제스는 화폐의 교환가치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금이나 은과 같은 금속화폐들이 이를 대표한다. 국가가 발행하는 종이돈은 금과 달리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래서 비트코인의 가격이 0이라는 모건스탠리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학파는 종이돈의 실제 가치가 0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금본위론자들에게 종이돈이 ‘나쁜 화폐’라면 비트코인은 ‘지나친 농담’일 뿐이다.

하지만 미제스는 금속화폐의 내재 가치를 따지려는 시도를 단호하게 비판한다. 그가 상품화폐를 옹호했던 이유는 내재 가치 때문이 아니다. 개인이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상품화폐만이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보라고 봤다. 비트코인의 화폐적 속성을 이해하려면 화폐를 사회의 정보 체계로 간주해야 하는데 미제스는 이미 그러한 시도를 했다.

금 같은 상품화폐는 정치적인 이유로 쉽게 양을 늘리지 못하고 또한 국제적으로도 통용된다는 정보를 개인에게 제공한다. 누군가가 가르쳐 준 게 아니다. 금이 상품으로 통용되던 시절로부터 내려온 인류의 ‘공유지식(common knowledge)’이다.

비트코인은 2100만 BTC까지만 채굴된다. 그리고 현재 1670만 BTC 정도가 채굴돼 유통되고 있다. 만약 자신이 1BTC를 소유하고 있다면 그 개인은 자신의 소유 비율을 정확하게 알고 행동할 수 있다. 비트코인에서는 획득·전송 등 모든 정보가 공유지식으로 이뤄진다. 단, 이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모를 뿐이다. 그래서 ‘사회의 정보 체계’로서 금이 최선이라는 미제스의 논리는 비트코인에 의해 그 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

1973년 사망한 미제스가 비트코인을 알 리는 없다. 하지만 그가 비트코인을 만났다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처럼 농담으로만 여겨 쉽게 단정해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발행 총량과 발행 속도 등 화폐 체계의 중요한 정보들이 개개인에게 공유지식으로 제공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매료됐을지 모른다.

화폐는 물질이 아니라 사회를 떠받치는 하나의 신호체계라는 개념이 그의 고색창연한 책에서 다시금 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다. 어쩌면 그는 반짝거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디지털 시대에 지구 반대편의 컴퓨터로 손쉽게 보내면서도 개개인이 진위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없고 정부가 발행량을 좌우하지도 못하는 비트코인이 금보다 더 낫다는 결론에 닿았을지도 모른다. 비트코인 때문에라도 신호체계로서의 화폐라는 개념은 미제스의 어록들 사이에서 발굴돼 가장 현대적인 화폐론으로 재평가 받을 것이다.

[돋보기] 게임 이론과 공유 지식 : 무인도에 있는 열 쌍의 부부에 대한 우화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그녀가 알고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다’ 이 두 가지 진술은 외관상 비슷하지만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피차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는 그녀의 사소한 행동에 대한 해석의 모호성이 사라진다. 학자들은 후자를 ‘주지의 사실(common knowledge)’ 혹은 ‘공유지식’이라고 부른다. 공유지식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꾼다. 신성휘 씨가 지은 ‘게임이론 길라잡이’에는 공유지식을 소개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열 쌍의 부부가 사는 섬에서 남편들은 자기 아내의 부정은 알지 못해도 다른 부인의 부정은 알고 있다. 남편들은 매일 모닥불 주변에 모여 부인들의 지조에 대해 자랑한다. 자기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남편은 아내를 저주하면서 슬피 운다. 모든 부인들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지만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칭찬한다. 왜냐하면 다른 남편들의 부인은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기 아내의 부정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한 부인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알려주고 나면 다음 날부터 9일까지는 예전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되다가 열흘째에 모든 남편들이 자기 아내의 부정을 알아차리고 울면서 아내를 저주한다. 천사로 인해 한 부인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 공유지식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부정한 부인이 두 명이라면 부정한 부인의 남편들은 다른 한 명의 부정한 부인만 알고 있다. 하루 동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 때문에 이들은 부정한 부인이 두 명 이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 아내가 범인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부정을 저지르는 9명의 부인을 알고 있는 남편들은 9일째까지 어떤 남편도 울지 않는 것을 보고 10명의 모든 부인들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