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콘텐츠 강화 위해 패션 PB 뛰어들어
-가성비 넘어 품질로 승부
(사진) 지난해 김정숙 여사가 입어 화제가 된 CJ오쇼핑 'VW베라왕'의 정장. /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해외 출국 당시 입었던 정장이 화제를 모았다. 김 여사가 홈쇼핑에서 직접 구매한 제품이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화제가 된 흰색 정장은 CJ오쇼핑이 선보인 ‘VW베라왕’ 제품이었다. 명품처럼 보이지만 가격은 재킷·하의·블라우스를 모두 합쳐 10만원대다. CJ오쇼핑은 어떻게 명품 브랜드 ‘베라왕’의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할 수 있었을까.
답은 ‘자체 브랜드(PB) 상품’에 있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PB 상품은 개발 방법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유통업체가 직접 제품 기획·제조·판매 등 전 과정에 참여하는 ‘생산 개발형’ △유통업체가 기획하고 협력업체가 생산해 주문자 상표를 부착하는 ‘기획 개발형’ △해외 브랜드와 독점 수입 계약, 해외 유명 브랜드의 완제품을 직수입해 독점 판매하는 ‘독점 수입형’ △해외 유명 브랜드와 기술제휴, 라이선스 계약해 일정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브랜드를 빌려오는 형태인 ‘라이선스형’이 있다. CJ오쇼핑이 국내 단독 기획 상품으로 선보인 ‘VW베라왕’은 라이선스형에 속한다.
CJ오쇼핑은 2015년 베라왕 미국 본사를 1년여간 설득했다. 그 결과 베라왕의 의류·잡화·인테리어 등의 토털 라이선스를 아시아 최초로 획득했다. 여성복 브랜드 ‘VW베라왕’은 방송 때마다 매진이 이어졌다. 2015년 론칭 이후 1700억원 정도의 누적 판매액을 기록하며 CJ오쇼핑의 효자 브랜드로 등극했다.
PB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가성비’ 트렌드와 맞물려 오래 지속돼 왔다. 기존에는 편의점과 마트를 중심으로 식품 PB에 치중해 있었다면 백화점·홈쇼핑·마트를 중심으로 유통가에 패션 PB 상품이 확장되고 있다.
◆홈쇼핑, 고급 ‘소재’ 경쟁 나서
‘노브랜드’로 식품 PB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이마트는 대형마트 패션 PB에서도 가장 크게 성장했다. 이마트 패션 PB ‘데이즈’는 2009년 연매출 2002억원으로 출발해 2016년 46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 규모는 국내 SPA 브랜드 중 유니클로에 이은 2위다.
유통업체들이 패션 PB 상품을 만드는 이유는 ‘수익성’과 ‘가격 경쟁력’에 있다. 유통 과정을 줄이고 가격 결정권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어 마진율 조정도 자유로운 편이다.
패션 PB의 가장 큰 특징은 품질을 통한 프리미엄 경쟁이다.
PB라고 해서 합리적인 가격만 강조하진 않는다. 패션 PB 상품들의 디자인과 퀄리티가 대폭 업그레이드되면서 제조업체 브랜드와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가성비’가 강점인 홈쇼핑업계도 고급 소재를 채용한 프리미엄 PB를 앞세우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지난해 9월 프리미엄 패션 의류 PB인 ‘라씨엔토’를 론칭했다. 라씨엔토는 이탈리아 최고 캐시미어를 사용한 ‘이탈리아 캐시미어 코트’, 터키산 양가죽을 사용한 ‘리버시블 무스탕 코트’, ‘밍크 알파카 코트’ 등 고급 소재 의류를 선보였다. 기존 홈쇼핑 의류 대비 20~40% 정도 비싼 가격대지만 첫 론칭 방송에서 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GS샵에는 울 전문 브랜드 ‘쏘울’이 있다. GS샵은 2012년 호주양모협회 본사와 단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협회에서 인정한 최고급 메리노울을 공급받아 자체 브랜드로 생산했다. 쏘울은 소재 특성상 가을·겨울 시즌에만 판매하고 있지만 2015년 760억원, 2016년 823억원의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총 누적 판매 금액은 3000억원을 넘어 GS샵의 대표 프리미엄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CJ오쇼핑은 베라왕 전담 브랜드매니저(BM)와 상품기획자(MD)를 두고 있다. 이들은 매달 베라왕 미국 뉴욕 본사를 찾아간다. 한국 시장에 대한 특징을 본사에 공유하고 제품을 함께 기획하기 때문이다. 기획 기간도 기존 홈쇼핑 상품의 두 배인 6개월이 필요하다.
베라 왕 디자이너는 브랜드 행사에서 “한국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디자인이나 품질이 뉴욕 백화점에서 팔리는 것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극찬했다. (사진) 신세계백화점의 다이아몬드 PB브랜드 '아디르' 매장과 란제리PB가 입점해 있는 속옷 편집매장 '엘라코닉' / 신세계백화점 제공
◆PB는 기업의 정체성 대변하는 콘텐츠
홈쇼핑 패션 PB가 여성복 중심이라면 백화점 패션 PB는 품목을 다양하게 확대하고 있다.
백화점 패션 PB계의 ‘게임 체인저’는 신세계백화점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여성복과 남성복뿐만 아니라 다이아몬드·속옷에서도 자체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밴브루 셔츠’는 신세계백화점이 2012년 업계 최초로 선보인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다. 2016년에는 캐시미어 전문 브랜드 ‘델라나라’와 ‘일라일’을 선보였다. 이 브랜드는 신세계백화점이 기획부터 생산까지 총괄한 첫 PB 브랜드다.
델라나라는 이탈리아에서 가공된 원사를 직접 수입해 일반 캐시미어 상품 가격의 절반 수준에 내놓고 있다. 지난해에는 업계 최초로 다이아몬드 PB 브랜드인 ‘아디르’와 란제리 PB 브랜드인 ‘언컷’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여성 의류, 남성 의류, 리빙 제품 등 5개 직매입 PB 편집매장을 ‘엘리든’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했다. 기존 PB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롯데만의 차별화된 PB 파워를 높이기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들은 PB가 단순히 가격 경쟁력을 넘어 기업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윤선미 GS샵 브랜드사업부장은 “PB 상품은 각 사가 가진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품”이라며 “특히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패션 PB는 고객들에게 차별화의 직접적인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도 “경쟁이 치열한 유통업계에서 더 이상 플랫폼 비즈니스는 차별화 요소가 아니다”라며 “유통 기업이 자신들만의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PB 상품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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