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Part3 미리보는 '블록체인 경제']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블록체인, 암호화폐에 들어 있을 때 활용 가치 높아”
“암호화폐 빠진 블록체인은 무용지물일 뿐”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블록체인 기술만 갖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이 같은 평가를 내렸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전문가인 그는 최근 암호화폐·블록체인과 관련한 다양한 자문 등을 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흔히 블록체인을 두고 세상을 변화시킬 ‘혁신 기술’이라고 하지만 김 교수의 의견은 달랐다. 블록체인은 암호화폐에 적용되는 수많은 기술들 중 하나일 뿐이며 암호화폐가 빠진 블록체인은 무용지물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암호화폐에서 블록체인 기술만 떼어놓고 본다면 문제도 많고 활용할 곳도 마땅하지 않다”며 “블록체인은 암호화폐에 들어 있을 때 활용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구분할 수 없다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맞아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구분하자는 것은 잘못된 접근법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블록체인은 암호화폐와 결합해야 비로소 기술로서의 가치가 극대화된다고 보면 돼요. 암호화폐를 자동차라고 하면 여기에서 핸들 역할을 하는 게 블록체인 기술이죠.

핸들이 자동차에 붙어 있으면 생명력을 발휘하는데 자동차에서 핸들을 떼어내 핸들만 잘 개발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허울 좋은 전시품밖에 될 수 없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자동차가 블록체인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핸들이 암호화폐라고 생각하는데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실상은 반대라고 할 수 있어요.”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블록체인은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데이터 구조의 한 가지라고 보면 돼요. 지금까지 많은 데이터 구조가 개발됐지만 그 구조만 가지고 세상을 바꾼 사례는 없었어요. 따라서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합니다. 블록체인은 쉽게 말하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인데 암호화폐에서 이것만 떼어 놓고 본다면 개인이나 기업 모두에 독이 될 수밖에 없는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기업이 블록체인을 물류에 쓰겠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해당 기업의 영업 비밀이 거기 다 노출되기 마련이죠. 만약 삼성전자가 인텔에서 칩을 100만 개 샀는데 이것을 블록체인에 올리게 되면 이론상으로는 사람들이 그것을 공유해 물류에서 시간을 단축하고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애플 같은 경쟁사에서 블록체인에 공유된 내용들을 지켜보고 삼성이 차기 스마트폰 모델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죠. 블록체인 기반의 개인 의료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얘기도 있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죠. 우리의 의료 정보를 블록체인에 올리자는 것인데 이것은 한 번 올리면 지울 수 없어요. 본인이 앓았던 감추고 싶은 질병까지도 모든 사람들이 계속 공유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이런 부분을 보완해 폐쇄형(프라이빗) 블록체인이 개발된 것 아닌가요.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정보를 공유하는 블록체인과 완전히 다른 구조입니다. 소수의 접근성을 가진 사람들만 블록체인에 올린 정보들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죠.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블록체인 기술로 꼽히는데 저는 의문이 들어요. 외부의 접근성을 제한하는 것은 현재 시스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굳이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구축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죠.

블록체인이 기존 시스템보다 보안성이 강해 해킹에 안전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사실 블록체인과 해킹은 크게 상관이 없어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웹사이트도 중앙 서버를 두고 운영하기 때문에 외부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 밖에 블록체인 기술이 갖고 있는 허점들이 굉장히 많아요.”

▶또 어떤 문제점들이 있나요.

“많은 이들이 블록체인의 투명성과 합의 과정, 개방성이 좋다며 극찬하고 있어요. 그런데 블록체인이 가지고 있는 합의 정신이나 민주 정신이 굉장히 무책임한 의사결정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뒤집어 얘기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합의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려요. 또 나쁜 뜻을 가진 사람들이 나쁜 쪽으로 합의하면 질서가 깨지기 마련이죠. 사람들이 다 좋은 쪽으로 합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된 판단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블록체인을 활용한 서비스를 준비 중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근 마케팅 차원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무엇인가를 내놓는다는 기업도 많다고 분석하고 있어요. 마케팅에는 유형이란 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AI)이라는 말을 써야 마케팅이 됐어요. 똑같은 기술을 개발하고 상품을 시장에 내놓아도 인공지능을 쓴다고 하면 잘 팔려 많은 제품들이 AI라는 단어와 함께 출시됐어요.

그런 것처럼 최근에는 블록체인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이 ‘저건 뭔가 차별화된 제품 또는 서비스’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케팅 정도의 키워드지 블록체인을 적용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기존과 비교해 기술적으로 특별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암호화폐 빠진 블록체인은 무용지물일 뿐”
▶블록체인만으로는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말씀이신가요.

“세계경제포럼(WEF) 등에서도 세상을 바꿀 기술로 블록체인을 얘기했지만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어떻게 조사했는지 모르겠지만 WEF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니 블록체인에 대한 엄청난 신뢰가 쌓이고 있어요. 하지만 막상 암호화폐 이외의 곳에서 블록체인을 구현하는 것은 큰 실효성이 없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블록체인이 적용된 암호화폐가 될 것입니다. 암호화폐는 인터넷처럼 글로벌 산업 환경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향후 암호화폐가 발전하면서 블록체인도 지금보다 합의 과정 처리 속도 등에서 보다 진일보한 기술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에 더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암호화폐는 엄청나게 혁신적입니다. 정부가 만든 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고 어떻게 이를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해 각국 중앙은행의 협력을 돕는 국제결제은행(BIS)에서도 암호화폐에 대한 보고서를 펴낸 것은 물론 현재 각국 중앙은행들이 자체적인 암호화폐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돌입하고 있는 상태죠.

이것만 봐도 암호화폐가 가까운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암호화폐가 자리 잡게 되면 시중은행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암호화폐가 세상을 바꾼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암호화폐가 자리 잡기까지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그건 아무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지만 이미 곳곳에서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가상화폐공개(ICO)는 세계의 투자 환경을 완전히 바꾸는 중이에요.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라고 할 수 있는 현재까지는 기업공개(IPO)가 투자금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IPO를 하려면 기업이 창업한 후 일정 수준으로 성장시키고 그 실적을 바탕으로 추가 자본을 모으는 방편으로 운영해야 하죠.

그런데 이더리움이 2014년 ICO를 하면서 갑자기 ICO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어요. 최근 ICO는 단순히 암호화폐를 준비하는 절차에서 벗어나 각종 사업영역으로 확장됐습니다. 기업이 존속하다가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데 필요한 자본을 모으려고 ICO를 하는 곳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어요.

ICO 때문에라도 암호화폐는 빠르게 정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운데 현 정부는 ICO를 전면 금지했는데 이는 특히 청년들의 창업 자금 마련 통로를 차단한다는 점에서 매우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enyou@hankyung.com
[기사 인덱스]
PART1: 블록체인·암호화폐 한번에 이해하기
- '알쏭달쏭' 블록체인 한번에 이해하기
- 암호화폐 블록체인, 경제시스템을 해킹하다
- 9번째 생일 맞은 비트코인의 제너시스
- 암호화폐를 움직이는 사람들 '누구'
- 블록체인에 푹 빠진 세계의 중앙은행들
PART2: 블록체인, 산업 지도를 바꾼다
- 삼성SDS, 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2015년부터 집중 투자
- 하나은행, 블록체인으로 '글로벌 결제 허브' 만든다
- 글로스퍼 '지역화폐의 진화'...블록체인으로 활용성 업그레이드
- 메디블록, 앱으로 활용하는 내 비밀스런 의료 정보
- 블록체인으로 게이머와 개발사 직접 잇는다
- 나이지리아 진출...'코인'에 신용정보 저장
- 이더리움 기반 모바일 게임 '크립토 탱크'
- 월마트, 돼지고기에 부착한 블록체인 '안전 이력서'
- 자율주행차 안전, 블록체인이 지킨다
- 코닥, 130년 사진 명가의 암호화폐 실험
- 글 올리면 돈 되는 '스팀잇'의 마법
- 에스토니아, 암호화폐 발행준비...두바이 '블록체인 정부' 선언
- 통신·SI·금융업계 "블록체인 신시장 잡아라"
PART3: 미리보는 '블록체인 혁명'
- 최공필 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 "암화화폐와 법정화폐 모두 통용되는 세상 올 것"
- 김서준 해시드 대표 "참여자 모두 돈 버는 '토큰 이코노미' 가능하죠"
- 장화진 한국IBM 대표 "AI IOT 빅데이터 등 블록체인 위에 자리 잡을 것"
-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암호화폐 빠진 블록체인은 무용지물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