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임팩트 투자'의 프런티어들]
-성수동을 소셜벤처밸리로 바꾼 ‘현대家 3세’…"투자는 사회문제 해결하는 방법론 중 하나"
정경선 HGI 대표 “글로벌 사모펀드도 임팩트 투자에 눈독 들이죠”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성수동이 임팩트 투자의 메카로 떠올랐다. 소셜 벤처 입주센터인 헤이그라운드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자리하면서 사회적 혁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성수동을 소셜 벤처 밸리로 만든 일등 공신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손자이자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아들인 정경선(32) 에이치지이니셔티브(이하 HGI) 대표다.

정 대표는 여느 ‘재벌 3세’와 달리 사회적 혁신가를 지원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2012년 루트임팩트를 창업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경영 승계를 위한 사전 준비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그런 편견에 도전한 지 어느새 6년이 지났다.

정 대표의 프로젝트가 성과를 보이자 차가운 시선도 차츰 수그러들었다.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정 대표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최근 임팩트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정부가 1000억원 규모의 임팩트 투자 모태펀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고 해외에서는 골드만삭스와 JP모간 등 유수의 금융회사들이 일제히 임팩트 투자 전담 부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베인캐피털·TPG 등 글로벌 사모펀드도 대형 임팩트 펀드를 조성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밀접하게 일하는 기관들과 대기업, 해외 경험이 있는 몇몇 분들을 제외하면 임팩트 투자는 여전히 대중에게 생소한 영역인 것 같습니다.”

-대표님의 성장 과정도 특별했을 것 같은데요.

“학창 시절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국내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남들과 다른 배경이란 이유로 따돌림을 경험했죠. 그때부터 왜 우리는 누군가가 돈이 없거나 있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환경과 다름으로 인해 약자로 만들어 버리는지 의문이 생기자 관심은 저와 비슷한 혹은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로 뻗쳤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방법을 찾던 중 ‘사회적 금융, 임팩트 투자’가 큰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HGI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많은 사회공헌 활동 중 임팩트 투자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투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 중 하나입니다. 지금 당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긴급 재난 지원이나 노숙인 숙식 제공 혹은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국가가 제공하는 무상교육 등은 ‘투자’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취약 계층을 고용하거나 저탄소 에너지, 친환경 농산물 같은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죠.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즈니스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임팩트 투자는 투자자에게 적정한 수익을 돌려주는 ‘투자’란 점에서 매우 적절했어요. 루트임팩트와 HGI 두 법인을 설립한 이유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비영리’, ‘영리’적 접근을 모두 하기 위해서죠.”

-투자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기업이어야 해요. 임팩트 금융에 걸맞게 스스로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성과의 교차점을 찾아 성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어야 하죠. 비영리에 더 적합한 모델로 소수에게만 임팩트가 돌아가는 것도, 재무적 성장에만 집중해 사회적 고민을 놓치는 것도 지양합니다. 일반적인 투자와 임팩트 투자가 가장 다른 점은 재무적 가치 창출에 대한 집요한 고민과 노력만큼이나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수반되는 기업 또는 기업가를 찾는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관심을 두는 분야가 있나요.

“양질의 서비스와 콘텐츠를 적정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육아·보육·교육 분야의 소셜 벤처를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영유아 전문 시간제 돌봄 선생님 플랫폼인 ‘째깍악어’나 유아 전문 UX 디자인 기업 ‘키두’와 같은 소셜 벤처에 투자를 집행했습니다. 또한 컴퍼니빌딩 형태로 피트니스센터에 놀이 공간을 만들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기 동반 피트니스 스튜디오 ‘헤이비핏앤펀’을 직접 설계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본 임팩트 투자 생태계는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요.

“한국에선 임팩트 투자 대부분이 주식회사 형태의 사회적 기업에 대한 투·융자 정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자산별로 부동산·국채·공개 주식과 비공개 주식 등 투자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재단이 사업비로 수익률을 보장하거나 국가가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해야겠지만 성공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모델들을 한국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는 국내 임팩트 금융의 성장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한국의 임팩트 금융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습니다만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는 면에서 글로벌에서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서울시의 사회혁신센터나 SK와 같은 대기업들의 전사적 노력 등은 규모면에서도 그렇고 무척 빠른 속도로 이뤄졌어요. 이런 점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신반의하는 주변 시선에도 임팩트 금융에 장기간 힘을 쏟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자라온 ‘시대정신’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들은 존엄한 인권을 누리며 각자가 지닌 특별함을 존중 받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들은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비즈니스의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임팩트 투자는 소수의 사람만이 관심을 갖는 비주류가 아닌 모든 이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방법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업적 금융의 상징과도 같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연초 서한을 통해 ‘앞으로 비즈니스는 사회적 의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밝힐 것을 보면 그 미래는 머지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약력
1986년생. 2012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아산나눔재단 창립 멤버 및 NPO사업팀장. 록펠러 자선자문단 이사(현). 루트임팩트 CIO(현). HGI 대표(현).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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