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신아 케이큐브벤처스 상무]
-이베이·네이버 거친 ‘인터넷·모바일 서비스 전문가’
“이젠 한국서도 ‘유니콘 기업’ 나올 때가 됐죠”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카카오의 벤처캐피털(VC) 자회사인 케이큐브벤처스에서 인터넷·모바일 분야의 투자심사역을 맡고 있는 정신아 상무는 평소에도 투자사들의 로고가 새겨진 후드티를 즐겨 입고 다닌다. 판교 사무실에서 1월 30일 만난 정 상무는 이날도 케이큐브벤처스 로고가 새겨진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온갖 물건들이 가득 찬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이 제품들 역시 투자사에서 판매 중이거나 판매를 준비 중인 제품들이다.

“요즘은 어딜 가든지 우리 가족들 제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요. 제가 영업 사원이라니까요. 하하.”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순식간에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의 모습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이 넘치는 에너지로 정 상무는 끊임없이 투자사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 방법을 찾아주는 ‘맏언니’ 역할을 자처한다.

정 상무는 “투자심사역이라고 하면 스타트업을 심사하고 발굴하는 역할을 주로 떠올리지만 투자한 스타트업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투자사 대표님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설립된 케이큐브벤처스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누적 투자액 1000억원, 투자 기업 112개를 넘어섰다. 전체 운용 자산도 2000억원을 넘었다. 투자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국내 1위 모바일 증권 서비스 ‘카카오스탁’을 운영 중인 두나무(2013년)와 월정액 주문형 비디오(VOD) 스트리밍 서비스인 ‘왓챠플레이’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스, 모바일 게임 업체 ‘넵튠’ 등 성공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넵튠은 2016년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며 ‘잭팟’을 터뜨렸다.

◆ 투자 성공 비결 ‘패밀리 데이’

정 상무는 성공 비결로 가장 먼저 ‘패밀리 데이’를 꼽았다. 패밀리 데이는 케이큐브벤처스로부터 투자 받은 투자사 대표들의 정기적인 모임이다. 투자사들의 커뮤니티와 유대감을 강조하는 것은 국내 VC들 가운데서도 케이큐브벤처스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초기 스타트업들 투자의 성공은 결국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얼마나 잘 버텨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어느 창업자든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힘든 게 있을 텐데, 특히 이 시기에는 투자사인 우리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잖아요. 창업자들이 힘들 때 구원 요청을 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한데, 우리가 그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죠. 그런데 창업자들끼리는 가능하거든요.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선배 창업자에게 배우는 게 더 많기도 하고요.”

패밀리 데이를 통해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 외에도 실질적으로 얻는 성과 또한 크다. 창업자들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의 약점과 강점을 보완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스타트업에서는 개발팀이 약하다. 새로운 개발자를 채용할 때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다른 스타트업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스타트업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사람 리스크’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실제로 기업들의 인사 실패를 줄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 밖에 투자사들 간의 ‘컬래버레이션 프로모션’을 통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의 사례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정 상무가 패밀리 데이와 같은 커뮤니티 활성화에 더욱 공을 들이는 이유다. 최근에는 투자사들이 120여 개에 다다르면서 ‘같은 고객군을 가진 스타트업들끼리 소규모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젠 한국서도 ‘유니콘 기업’ 나올 때가 됐죠”
보스턴컨설팅그룹·이베이·네이버를 거쳐 2013년 11월 케이큐브벤처스에 합류했다.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왔지만 이베이와 네이버 등에서 주로 신사업 론칭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으며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현재도 주로 모바일·인터넷 서비스 분야의 스타트업과 관련한 투자 심사를 맡고 있다.

◆ 벤처 투자시장, ‘알파고’ 덕에 바뀌었다

“투자 대상을 선정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늘 ‘되는 한 가지’를 본다고 얘기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한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실제로 그 팀이 핵심 역량을 얼마나 탄탄하게 갖추고 있는지 보는 거죠. 그런데 투자심사역으로 일하면 할수록 요즘에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점점 더 중요하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데스밸리’를 잘 견뎌내는 창업자들의 특징을 보면 결국은 버티는 건데, 그냥 가만히 버티지 않아요. 끊임없이 동굴 속에서 출구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실험을 계속해요. 한마디로 얘기하면 ‘실행력’이죠.”

정 상무는 최근 투자한 청소 가사 도우미 중개 서비스 ‘청소연구소’를 운영하는 생활연구소를 사례로 들었다. 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는 카카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워킹 맘이다.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했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을 과도하게 잡지 않을지 우려가 들었던 정 상무는 투자를 결정하기 전 이 팀에 “만약 30억원이 아니라 5억원만 투자한다면 어떻게 마케팅 계획을 잡을 것이냐”는 도전 과제를 줬다. 이때 보통은 목표로 하는 유저나 매니저의 숫자를 줄이는 곳이 많은데 생활연구소팀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루트나 모델을 이것저것 연구해 제시했다. 투자를 결정하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도전 과제들이 주어질 때마다 그때그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실행력’이 결국 투자를 성공시킨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이다.

그는 처음 케이큐브벤처스에 합류했던 2014년 무렵과 비교하면 현재의 벤처 투자시장 또한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말한다.

“예전에도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돈은 많았지만 생태계 측면에서 보자면 굉장히 초창기 모습이었어요. 여기저기 화제가 되는 스타트업은 많은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대규모 투자를 끌어온 곳들이 대부분이고 실질적으로 탄탄한 매출을 보이는 곳은 찾기가 힘들었죠.”

이와 같은 분위기를 반전시킨 데는 2016년 3월 ‘알파고 사건’이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전만 해도 국내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인수가 잘 없었는데, 알파고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하기 위해 네이버와 카카오가 경쟁을 벌이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 전반적으로도 스타트업 인수에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인수·합병(MA&) 시장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테슬라 상장’이나 ‘기술특례 상장’ 등의 제도를 통해 스타트업들의 IPO 관문도 넓어지는 추세다.

“이제는 국내 스타트업 시장도 어느 정도 시간이 무르익어 생태계가 본격화되고 있는 느낌이에요. 실질적으로 탄탄한 매출을 보이는 스타트업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어요. 이젠 정말 정말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도 나올 때가 됐죠. 실제로 ‘두나무’ 등은 10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잖아요. 앞으로 이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은 지금보다 점점 더 많아질 거예요. 그럴수록 우리도 더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겠지만 그만큼 기회도 더 많아질 거예요.”

정 상무는 이와 같은 시장의 변화에 따라 최근에는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데 새로운 시도를 꾀하는 중이다. 케이큐브벤처스가 초기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를 하는 곳은 보다 뒤 단계에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들과의 협력을 통해 스타트업이 안정적으로 투자 자금을 공급 받을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일이다.

“아무리 펀드가 커진다고 해도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시리즈 D, E’ 단계까지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시리즈 A 이상의 투자를 주로 진행하던 곳들도 투자를 위해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거죠. 최근에는 이런 투자사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는 편이에요. 현재 국내 벤처투자 시장 내에서 나름의 생태계를 만드는 작업과 논의들이 계속되고 있어요. 벤처 투자시장이 다양해지고 활성화되고 있다는 의미여서 기대감이 큽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