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예상보다 거센 중국의 도전…소규모 파일럿 제품 통해 ‘혁신 본능’ 되찾기를
갤럭시에서 ‘노키아의 그림자’를 보다
[한경비즈니스=최형욱 IT 칼럼니스트] 삼성전자의 갤럭시 S9이 출시된 이후 전작이었던 갤럭시 S8과 유사한 디자인과 사양 및 기능으로 실망을 나타내는 언론과 소비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망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 S8과 달리 소비자들의 실제 구매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이미 성숙기에 들어선 스마트폰 시장이나 스마트폰 자체가 과거처럼 1~2년 만에 교체할 만큼 성능이나 사양이 빠르게 뒤처지지 않는 것도 직접적인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갤럭시의 모습은 분명 이러한 시장이라는 외부 환경이 아닌 삼성전자 갤럭시 제품이나 이를 준비하는 내부적인 요소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소비자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스펙 경쟁을 피하겠다는 제품 개발의 대전제에는 공감이 가지만 이미 대부분의 기능이나 사양이 평준화된 시점에서 과연 이러한 안정적인 업그레이드 수준의 제품 출시가 시장에서 갤럭시의 지위를 유지해 줄지에 의문이 들게 한다.

특히 최근의 모습은 과거 노키아가 시장의 절대적 1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이라는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순간에 몰락했던 모습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 더욱 큰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안정만을 추구한 노키아, 결국 몰락

2009년 스마트폰 역사에 이정표를 남길 만한 제품이 등장한다. 바로 애플의 아이폰 3GS다. 사실 최초의 아이폰은 2007년 출시된 아이폰이다.

하지만 당시 전화기와 뮤직 플레이어의 기능 그리고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다는 콘셉트에 맞지 않게 2G 통신망을 지원했던 사양으로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 이듬해 출시된 3세대 통신망을 지원하는 아이폰 3G 역시 기대와 달리 스마트폰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사실 그 당시까지 스마트폰 시장은 블랙베리 제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심비안 운영체제가 탑재된 노키아의 일부 제품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스마트폰 시장의 큰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2009년 아이폰의 한국 시장 진출과 함께 휴대전화업계의 2위 제조사였던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2010년부터 시장에 출시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 간 치열한 싸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삼성전자가 발 빠른 대응으로 내부의 조직과 체질을 바꾸면서까지 스마트폰 시장에 올인, 대응할 때 당시 시장점유율 1위였던 노키아는 뭘 하고 있었을까.

당시 노키아는 시장 1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자체적으로 심비안이라는 운영체제를 보유함으로써 블랙베리와 함께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노키아는 이러한 양강 구도가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이러한 믿음 뒤에는 안정만을 추구하는 내부 조직의 수동적인 움직임이 한몫했다. 새로운 시도나 모험은 당시 임원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겐 불필요한 위험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에 잘못된 대응을 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불과 몇 년 후 마이크로소프트에 모바일 사업부를 매각하는 굴욕으로 나타나게 된다.

◆갤럭시는 아이폰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발표를 보면 최근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 중 하나는 바로 ‘소비자 가치를 최우선한다’는 내용이다. 불필요한 사양 경쟁이나 기능 경쟁보다 소비자들에게 꼭 필요한 성능과 기능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최근 갤럭시 S9이나 작년에 출시한 노트 8을 보면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새로운 시도나 모험에 가까운 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량생산과 판매를 위한 플래그십 제품인 갤럭시 S 시리즈나 노트 시리즈에 바로 적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부 지역이나 소규모 양산을 통한 파일럿 제품들은 얼마든지 시도해볼 만한 부분이다.

경쟁사 제품인 아이폰을 보면 출시 당시 아이폰 사양이 해당 연도의 최고 사양으로 평가 받지 않는다. 얼마 전 출시된 아이폰X도 디스플레이 해상도는 이제야 2K가 탑재됐고 후면 카메라는 수년째 12메가에 머물러 있다. 배터리나 램(RAM)같은 내장 메모리는 다른 스마트폰 업체 대비 현격히 떨어지는 사양이다.

하지만 애플은 자체적인 운영체제와 이를 통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하는 능력 그리고 이미 출시된 단말이라도 최소 3년은 최신 기능을 지원하도록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해 주고 있다.

이와 함께 맥북과의 연동을 통한 연속성 있는 작업 지원이나 애플워치·에어팟과 같은 제품 생태계는 결국 자체적인 운영체제와 여기에 최적화되게 설계된 하드웨어 제품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서비스도 한 번 시작하면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처음에는 보잘것없지만 결국에는 이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충분히 가치를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서비스로 탈바꿈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애플의 생태계를 느낀 소비자들은 지속적으로 애플 제품만 구매하는 하나의 팬덤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갤럭시는 이와 좀 다르다. 일단 안드로이드라는 구글의 운영체제를 빌려 쓰고 있다. 그리고 화웨이를 비롯해 샤오미·오포·비보·LG전자·소니 그리고 최근엔 노키아까지 갤럭시와 동일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다.

좋게 얘기하면 거대한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형성하고 그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일 수 있지만 반대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탑재된 제품 중 하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자체적인 갤럭시만의 생태계나 갤럭시만의 팬덤을 꾸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소비자들이 최근 갤럭시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고 있다. 동일한 운영체제를 탑재한 중국 스마트폰 제품들의 부상은 갤럭시로선 분명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다.
갤럭시에서 ‘노키아의 그림자’를 보다
◆중국발 도전, 5G와 폴더블이 대안일까

올해 4월 프랑스 파리에서 별도의 론칭 행사를 진행한 화웨이의 신제품 P20 프로는 후면 카메라가 3개인 트리플 카메라로 주목받았다.

지난해에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세서를 내장한 칩을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등 선행 기술의 적용이나 기술적인 완성도 면에서 과거 중국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샤오미를 비롯한 오포와 비보 같은 업체들 역시 베젤리스 스마트폰이나 디스플레이 내장형 지문 인식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등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거침없이 진행 중이다.

기본적으로 탑재되는 카메라는 이미 전면 듀얼이나 전면 20메가 고화소를 비롯해 후면 역시 이미지 합성을 통한 40메가 지원 등 다양한 시도를 진행 중이다.

사실 이러한 과감한 시도는 삼성전자의 전유물과도 같았다. 과거 노키아가 바 타입의 제품만 고집하던 시절에 컬러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폴더폰을 출시하기도 했고 반자동 슬라이드 폰을 출시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뮤직 전용 폰, 게임 전용 폰을 비롯해 권상우 폰이나 이효리 폰이라고 불린 디스플레이를 꺾고 뒤집는 캠코더 폰을 출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중에는 호평을 얻은 것도 있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진 제품들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내부적으로 뭐든 해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다양한 기술들을 다양한 제품에 적용하는 팔색조와 같은 기술 기업 이미지도 확보했다.

하지만 당시 그러한 모험 정신을 더 이상 갤럭시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은 시장 1위인 갤럭시의 뒤를 쫓는 중국 업체들에서 그러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2000년대 중·후반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뒤쫓을 때와 겹쳐지는 모습이다.

실제 중국 업체의 노력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최근 갤럭시가 받아든 성적표는 치명적인 수준이었다. 이들 기업은 과거 삼성전자가 그랬던 것처럼 자국 시장에서 힘을 키워 글로벌 시장으로 그 판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발 거센 도전에 아직까지 갤럭시의 방향성은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서비스나 소프트웨어 기능 부분에선 최근 발표된 갤럭시 S9의 AR이모지는 갤럭시 S9을 제외한 이전 전작들에 대한 업그레이드 논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기능 외에도 전작들의 최신 버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업그레이드조차 늦거나 아예 진행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수년째 매스컴을 통해 소문만 무성한 폴더블 스마트폰이나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출시 가능한 5G 제품 등은 실제 프로토타입 등의 방향성이 아직까지 모호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애플의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가장 흔하게 나오는 얘기는 ‘혁신’이다. 지금까지의 혁신은 거의 없던 시장을 새롭게 만드는 수준의 의미를 가졌다. 최근에는 눈에 보이는 제품 자체의 하드웨어 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서비스와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서도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의 만족은 실패하더라도 시도해 보는 과감한 모험과 그러한 행위들을 통해 얻어진 값진 경험 그리고 종국엔 이러한 경험을 최종 제품에 최적화해 녹여 내는 기술력이 아닐까. 지금의 갤럭시에 이전의 과감한 모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