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AI·로봇 시대의 새 화두 ‘기본소득’이 뭐길래]
-AI 진화에 따른 소득 불평등 대안으로 주목…직접 파일럿 프로그램 운영도

[한경비즈니스= 이석원 벤처스퀘어 편집장]실리콘밸리는 왜 기본소득 실험에 관심을 둘까. 엘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CEO)는 2016년부터 기본소득의 정착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그가 기본소득에 관심을 둔 이유로 내세웠던 것은 자동화다. 머스크 CEO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을 통해 자동화·지능화 현상이 결국 20세기 동안 머물렀던 공장에서 벗어나 서비스 영역으로까지 확대된다면 기술 진보에 따른 변화의 일환으로 기본소득과 유사한 정책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그가 CEO를 맡고 있는 테슬라모터스는 오토파일럿이라고 불리는 반자율주행 모드를 지원한다. AI와 자동차가 결합되면 인간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율주행 차량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AI가 사람이나 물자를 수송해 주는 시대가 열린다면 택시와 트럭의 운전사는 직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앞으로 10년 안에 탄생할 자율주행 차량이 적어도 20년 내에는 운송 산업 전반에 구조 전환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이 분야에서 일하는 트럭 운전사 등 관련 노동자 중 12~15%가 실직할 위험이 있다.

이런 시대가 되면 운송 산업에서 사람의 역할은 운전이 아니라 무인 택시나 무인 트럭의 운행을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대처를 지시하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머스크 CEO는 결국 이처럼 디지털 지능과 공존 공생하기 위한 불가피한 개념 중 하나가 기본소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존 직업과 개념이 바뀌게 되면 레저를 즐길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되고 좋은 의미에선 일에 얽매이지 않는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2017년에도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 정부 서밋에서 AI 진화에 따른 자동화가 기본소득 도입의 촉진제가 될 것이라고 다시 강조한 바 있다.
‘기본소득’ 주창자 된 실리콘밸리 기업가들
(사진) 엘론 머스크(오른쪽) 테슬라모터스 CEO와 샘 알트만(왼쪽) 와이콤비네이터 CEO 등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은 미래 사회를 위해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고 오랫동안 말해왔다.

◆엘론 머스크, ‘슈퍼 AI’의 등장 이후 경고

어쨌든 머스크 CEO가 말하는 기본소득 등장의 가장 큰 이유는 기술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는 인간 수준을 넘어선 지능을 갖춘 슈퍼 AI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AI가 이 같은 속도로 발전한다면 한편에선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공적인 규제를 만드는 게 중요할 수 있다. 또 다른 면에서는 사회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AI는 지능형 자동화 시대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사회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될 수 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소득 최저 수준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기본소득 도입을 적극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기술혁신을 이끄는 리더들이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비슷하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CEO 역시 한 인터뷰에서 머스크 CEO와 마찬가지로 AI의 진화에 따라 소득 불평등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면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할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실험을 반복해 가면서 효과를 확인한 후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2년부터 우수 대학 졸업생의 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운영 중인 벤처포아메리카의 설립자인 앤드루 양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4월 미국 내 18~64세 성인 모두에게 월 1000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공약을 앞세워 2020년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양 설립자도 자동화에 따라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직접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접 실험 나선 와이콤비네이터

실로콘밸리를 대표하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의 샘 알트만 CEO 역시 기본소득 실험을 미국에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알트만 CEO는 앞으로 50년 뒤에는 과거 사람들이 굶주림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할 필요가 없어지면 사람들이 어디에 시간을 할애하게 될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 실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와이콤비네이터가 하는 일 자체도 어떤 면에선 기본소득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기업 미션 완수를 위한 지원에 조건을 붙이지 않고 자금을 일정 기간 제공하는 게 최소한의 돈, 기본소득을 제공해 인간 활동을 지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와이콤비네이터는 미국 오클랜드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수십 가구 정도를 대상으로 매달 1000~2000달러(대략 100만~200만원)를 제공한다. 올해부터 3~5년간 진행될 본격 실험에선 21~40세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2개 주에서 900명에게 3년간 매달 1000달러, 100명에게 5년간 매달 1000달러, 1800명에게 3년간 매달 50달러, 200명에게 5년간 매달 50달러를 제공한다.

알트만 CEO는 한 인터뷰에서 “일자리에 대한 정의는 항상 변한다”며 “75년마다 일자리 중 50%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수천 년 전에 봤다면 웃을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도시 스톡턴은 내년부터 기본소득 제도의 시험 운용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 도시는 SEED(Stockton Economic Empowerment Demonstration)라는 프로그램을 정부 지원하에 진행한다. 주민 중 1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매달 500달러, 연간 6000달러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예정이다.

스톡턴은 2012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재정 파탄 도시였다. 실업률도 7.3%로 미국 내 평균 4.3%를 웃돈다. 평균 연봉도 4만4797달러로 캘리포니아 평균 연봉 6만1181달러보다 낮다. 범죄율도 높다.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려는 이유는 이런 빈곤이나 불평등 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 방안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기존 복지제도 대신 기본소득을 도입하거나 혹은 기존 복지제도를 그냥 둔 채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 됐든 최소한의 소득 보장선, 즉 ‘기본소득’으로 빈곤층의 하락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와이콤비네이터 실험에서도 적용했듯이 이런 최소한의 선이 미국에선 월 1000달러 정도다.
‘기본소득’ 주창자 된 실리콘밸리 기업가들
◆재원 확보 숙제…‘로봇세’ 등 논의

기본소득 재원 확보와 관련해 저커버그 CEO가 2017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언급한 알래스카 현지 사회보장제도가 참고가 될 수 있다. 알래스카에는 ‘영구기금배당(Alaska permanent fund dividend)’이라고 불리는 기본소득 제도가 있다. 알래스카는 광물자원을 주요 수입원으로 삼지만 자원 고갈을 대비해 광물자원 수익 일부를 기금으로 적립한다. 알래스카 주민은 매년 1인당 1000달러 이상 이 기금을 통해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 저커버그 CEO 역시 이 제도를 혁신적인 접근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증세가 아닌 천연자원을 통한 제공이라는 점이다.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나 양 설립자 등이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던 로봇세 도입이나 이산화탄소 배출 등에 대한 다양한 과세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게이츠 설립자는 공장에서 5만 달러짜리 역할을 하는 노동자가 소득 중 일부를 세금으로 내고 있는 게 현재의 모습이라면 같은 작업을 하는 로봇도 비슷한 수준의 세금, 즉 ‘로봇세’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기업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는 기업은 로봇을 도입해 생산성을 더 높이고 노동자를 줄일 수 있는 만큼 이득이 있다고 말한다.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속도는 단번에 임계치를 넘어설 수 있다. 앞으로 20년 안에 창고·운전·청소 같은 직업군은 순식간에 의미를 잃는 직종이 될 수 있다. 자동화가 진행되면 의미를 잃을 노동자를 노인 간호나 보육 같은 공감 능력을 필요로 하거나 이해력이 필요한 분야 등 아직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업무로 전환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 같은 전환을 위해선 재정 확보를 위해서라도 과세가 필수라는 주장이다.

미국 내에서 기본소득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단순히 기술에 따른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자동화가 결국 일자리를 위협하기 때문이지만 이미 미국에선 상위 소득 10%가 하위 90%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일자리 위협은 이 같은 소득 불균형을 더 불러오고 결국 누적된 양극화 문제를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빈곤을 퇴치해야 부와 기술 진보를 지속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기본소득 실험은 실제 도입 여부를 떠나 도입에 따른 영향이나 올바른 방향성, 소득 불균형 해소 등 다양한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lswcap@venturesquar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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