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인프라 갖춰 있고 유엔 제재 해당 안 돼…‘제2의 개성공단’ 추진 방안도
남북 경협,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0순위’

(사진) 파주시 접경 지역에서 비무장지대 너머로 개성공단 일대가 보이고 있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평가가 엇갈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만남 그 자체에 의미를 뒀던 시각은 ‘성공작’이라고 보는 반면 완전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CVID) 합의를 기대했던 시각은 ‘실패작’이라고 깎아내린다.

어떤 평가든 앞으로 남북한 관계를 포함한 국제 정세가 크게 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정상회담은 계속 열릴 가능성이 높다. 이번 회담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주도력이나 성과적인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추가 협상을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둘러싼 ‘수 싸움’ 치열


의제도 CVID뿐만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반출, 북·미 수교, 평양 내 미국 대사관 설치 등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다. 미국 국민의 의식도 부담이다. 갤럽이 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북한을 꼽았던 응답자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년 후 재선을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정치·외교적 역량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도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 북한의 경제 사정은 어렵다. 특히 김 위원장을 비롯한 권력층 유지에 필요한 외화 가득원이 취약해졌다. 작년 수출은 직전 연도 대비 36.8% 감소한 가운데 전체 수출의 85%를 웃도는 대중국 수출은 50% 넘게 급감했다.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재원인 북한에 대한 투자도 작년 하반기부터 사실상 봉쇄됐다.
남북 경협,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0순위’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국가 핵 무력 완성’과 ‘경제 발전’이라는 이원적 전략(two track)을 추구했던 북한으로서는 전자를 토대로 협상력을 높여 생존과 발전을 위한 제재 완화의 필요성이 더 증대됐다.

앞으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될 국제 정세에서 주변국도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치열한 수 싸움에 적극 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3월 초 북·미 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처음 알려진 이후 제삼자적 시각을 견지해 온 중국이 두 차례에 걸친 북·중 정상회담 이후 적극적인 자세로 변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한국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과 중국 간 기득권 싸움에서 우려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하는 점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신흥 강대국이 급부상하면서 기존 강대국이 느끼는 두려움으로 전쟁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2015년 9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언급한 이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이미 이 함정에 빠져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시각도 많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 첫해 추구했던 달러 약세에 맞서 시진핑 정부는 위안화 약세로 맞대응하는 과정에서 ‘환율 전쟁’ 위기에 몰렸다. 올 들어 ‘관세 전쟁’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한 단계 높아지다가 최근에는 미래 기술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첨단 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운명이 크게 엇갈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세기 이후 일본이 급부상함에 따라 당시 강대국이었던 중국(청일전쟁)·러시아(러일전쟁)·미국(태평양전쟁)과 전쟁을 잇달아 치르는 과정에서 ‘일본 식민지 시대’와 ‘남북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비극이 태어났다.

◆국민 공감대 전제로 긴 호흡 가져야


국제 관계는 냉혹하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한국에 절실한 것은 ‘중재자 역할’이다. 다른 하나는 남북 관계(경제협력과 통일)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다. 독일보다 무려 25년이 길다.

의욕만 앞세워 성급하게 체제부터 통일을 추진한다면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체제를 유지한 상황에서 예술·체육·문화 행사 등을 통해 남북 관계(특히 인식 차)를 개선할 수 있는 사전 정지 작업이 필요하다.

사전 정지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경제협력 단계에 들어간다. 일단 폐쇄됐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부터 재개할 필요가 있다. 상당한 인프라가 진척돼 있는 데다 유엔 제재로부터 자유로워 지금 당장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주와 경기 북부 지역에 제2의 개성공단을 추진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비핵화 문제 해결을 전제로 도로·철도·통신 시설뿐만 아니라 동서독 통합 과정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항만 등에 걸쳐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는 작업이 다음 단계다. 북한의 시설을 재정비해 사용될 수 있지만 남한 기준에 맞춰 신설하는 쪽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SOC가 확충되면 그 기반 위에 생산요소와 북한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물자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에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 북한은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고 남한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이 단계의 성공 여부가 이후 남북 관계 진전과 속도를 결정할 수 있는 변수다.

경제적 측면에서 최종 단계는 화폐를 통일하는 작업이다. 핵심은 남북 화폐 간 교환 비율을 설정하는 문제다. 독일의 예처럼 화폐 교환 비율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북한 주민과 남한 국민의 명암이 크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동서독 통합 때에는 동독 화폐를 현실 가치보다 높은 수준으로 교환하도록 합의해 동독 국민이 크게 혜택을 봤다.

경제협력 성과가 가시화되면 다음 단계는 체제를 통일하는 작업이다. 한반도 전역에 적용될 수 있는 통일헌법 제정과 국민 동의를 거쳐 정치적으로 통합돼야 한다. 남북 협력과 통일의 마지막 과정은 사회 통합이다. 남한의 ‘국민’과 북한의 ‘인민’이 ‘한민족’이라는 뿌리를 되찾아야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 달성될 수 있다.

70년이 넘는 분단 기간을 감안하면 모두 쉽지 않은 과제다. 국민 공감대를 전제로 긴 호흡을 갖고 남북과 주변국과의 관계를 풀어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