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목적 없는 만남 대신 e메일로 소통…핵심 경영 이슈 토론장 ‘포커스 미팅’ 강화
현대카드가 임원 업무 보고를 없앤 이유
(사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임직원 대상 ‘타운홀 미팅’에서 격의 없이 대화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 칼럼=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돌의 노래 가사 맞히기. tvN에서 방송 중인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토요일’의 한 장면이다.

패널들은 번개처럼 지나가 버리는 가사를 맞혀 보겠다고 기를 쓰고 덤빈다. 하지만 어렵다. 이때 ‘유레카’를 외칠 때가 있다. 각각의 패널이 대충 들리는 대로 읊조린 내용을 듣고 맥락을 함께 유추해 가며 단어를 조합해 내는 순간이다. 성공의 열매는 전국 유명 시장의 맛집 음식 맛보기다.

하지만 실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시청자는 여기서 다른 것을 맛봐야 한다. 바로 ‘함께’의 힘이다. 어떤 패널은 본능에 충실하게 들리는 대로 말하고 또 다른 패널은 래퍼로서 운율을 맞춘다. 그리고 어떤 이는 가수가 속한 제작사의 ‘작사 문법’을 분석해 답을 유추해 낸다. 이러한 ‘합’이 잘 맞아갈 때 답을 찾을 수 있다.

TV에 빠져 재미있게 보다가 갑자기 생뚱맞은 의문이 들었다. 이런 ‘함께’의 힘이 왜 회사나 조직 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걸까.

대한상공회의소가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와 함께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회의와 관련된 일에 업무 시간의 39%를 쓴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 구성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회의는 정말 생산적”이라고 말한 이는 단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에서도 직장인의 57.6%가 ‘회의 문화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유가 뭘까. 왜 우리 조직에서는 연예인이 유명한 맛집 음식을 맛보는 것 같은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까.

◆‘진짜 필요한 회의’가 핵심

대부분의 조직은 ‘주간 회의’를 한다. 한 주 동안의 업무를 점검하고 해야 할 일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월말이 되면 ‘월례회의’가 열린다. 월 단위 마감이 필요해서다.

이것만 있으면 다행이다.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됐다면 내용 공유를 위한 회의를 소집한다. 임원의 전달 사항이 있다며 긴급회의가 또 열린다. 본부장 보고 자료를 만들었는데 팀장이 이해가 잘 안 된다며 내용 설명을 요청해 회의가 시작된다.

이 가운데 진짜 필요한 회의는 뭘까. 물론 모두 하면 좋다. 하지만 문제는 ‘하면 좋은’ 회의들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회의는 같이 모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왜 모이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이에 대한 답은 ‘집단지성’이 필요할 때만 모이는 것이다. 회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함께 모으는 목적일 때 의미가 있다.

현대카드는 부서별 업무 보고 중심으로 진행했던 임원 회의를 없앴다. 정례 업무 보고를 매달 e메일 보고로 대체한 것이다. 그 대신 회사 경영상 중요한 이슈를 중점적으로 토론하는 ‘포커스 미팅’을 매주 진행한다.

이처럼 회의를 없앤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자기 업무나 부서의 실적을 자랑하기 위해 없어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야 했던 회의용 보고 자료 작성을 위한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소소한 자랑 등 굳이 몰라도 되는 상대 부서의 업무 현황을 듣느라 귀한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셋째, 회사의 중요한 이슈를 보다 빠르게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리더는 걱정스럽게 묻는다. “하지만 주간 보고 회의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로 뭘 하는지 알아야 도와줄 수도 있고 그게 ‘팀’으로 일하는 목적이라고 보는데….” 충분히 의미 있는 지적이다. 최소한 1주일에 한 번 주간 보고 회의 때 다 같이 얼굴 보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다. 각자의 업무 공유는 필요한 사람끼리만 하면 된다. 구성원 개개인이 리더와 일대일로 하면 된다는 뜻이다.

기존 회의를 업무 중 생기는 문제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거래처가 단가 압박을 심하게 해 고민’이라거나 ‘마케팅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식의 이슈 중심의 회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모이면 좋다. 세상의 많은 새로운 것이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무엇을 위해 모여야 하는지. 목적 없는 만남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애빌린 패러독스’ 기억해야

‘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라는 말이 있다. 발단은 미국 텍사스 주의 한 가정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아빠가 말했다. “우리 애빌린에 가서 스테이크나 먹을까?” 딸이 생각한다. ‘더워 죽겠는데 애빌린까지 가야 해.’ 애빌린은 집에서 85km나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빠의 말에 아들이 맞장구친다. “그럴까요? 오랜만에 고기 좀 먹어볼까.” 그러자 엄마가 말한다. “가자 그럼. 저녁 하기도 귀찮은데.”

가족은 그렇게 애빌린으로 떠났다. 하지만 식사는 형편없었다. 그저 더웠다.

돌아오는 길, 긴 여행에 지쳐 모두가 침묵에 빠진 차에서 딸이 말한다. “오랜만에 외식하니 좋네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가 말한다. “그래? 난 별로였어. 너희들이 가고 싶다기에 가자고 한 것뿐이야.” 그러자 아들이 말한다. “가고 싶었다고요? 난 아빠가 가자고 하니까 그냥 맞장구친 것뿐인데.” 결국 아빠가 답한다. “난 다들 너무 심심해하기에 그냥 해 본 말이었어. 그런데 전부 찬성했잖아?”

결론적으로 이 가족 중 애빌린에서의 식사를 원했던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싫다고 말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던 외식을 해야만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 조직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수많은 회의 시간에 조직 구성원은 싫으면 싫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을까. ‘왜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책까지 있는 걸 보면 그리 쉬운 일 같지는 않다. 상사의 지시 사항이 잘 이해되지 않아도 다들 수긍하는 것 같으면 자신의 입도 닫아버리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답은 ‘소외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다들 그렇다고 하는데, 나만 굳이 아니라고 말해 이상한 사람 취급받지는 않을까’란 두려움에 입을 닫는 것이다. 하지만 조직에 이러한 상황은 치명적이다.

조직 행동 전문가 스티븐 로빈슨은 “기업에서 어떤 대안을 고민할 때 반대 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일 처리가 이뤄진다면 그 조직은 ‘집단 사고(group think)’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만장일치는 박수 받을 일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신호라는 뜻이다.

◆‘악마의 대변인’의 필요성

그러면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반대 의견을 말하라”고만 외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의지가 아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 방법은 ‘악마의 대변인’을 두는 것이다.

이 제도는 1500년대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인 반열에 오를 후보를 심사할 때 시작됐다. 의도적으로 그들의 성품이나 업적을 반박하도록 해 엄격한 심사가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로 ‘레드팀’을 운영하는 회사도 있다. 레드팀은 미군 모의 군사훈련에서 아군이 일부러 적군이 돼 공격해 보는 것을 빗대 만든 표현이다. 속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이번 제안의 단점’과 ‘프로젝트 수행 시 리스크’에 대해 일부러 강한 공격을 한다.

두 제도의 공통점은 회의 안건에 대한 ‘딴지꾼’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실제 업무 현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미리 걸러내는 효과가 있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 간의 회의는 편하다.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이 인위적으로라도 나오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는 일하러 모인 곳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생산성을 냈는지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생산성을 내지 못한 시간은 회사엔 ‘비용’이다.

회의도 마찬가지다. 비생산적인 결론 없는 회의에 불려 들어가 앉아 있는 사람들의 비용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지금처럼 그냥 부르는 회의나 일단 모이는 회의를 하고 싶을 때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