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 ‘패션 강자’ 세정그룹의 첫 복합 유통사업
- “지역사회·소상공인과 상생으로 새 길 열었다”
‘용인이 들썩들썩’…동춘175,‘쉼’을 제공하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죽전대로 175번길 6.

7월 7일 개장된 후 주말 이틀 동안 방문자 수가 2만 명을 넘었고 7월 11일까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자발적 콘텐츠만 3만7000여 건이 넘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동춘175’가 자리한 곳이다.

아직 내비게이션과 네이버·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 지도에는 업데이트조차 이뤄지지 않아 기존 건물이었던 세정아울렛 용인팩토리점으로 표시된다.

이렇다 할 이정표도 눈에 띄지 않는다. 분당에서 에버랜드로 넘어가는 초당지하차도 부근 주요소 옆 골목길 앞에 조그마하게 달려 있는 이정표가 유일하다. 공장 건물과 나무에 가려져 있어 도로변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동춘175를 찾아가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사실상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주일도 안 돼 동춘175는 용인 지역에서 가장 핫한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이유는 뭘까. 동춘175가 사람들의 발길을 그러모으는 매력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7월 11일 찾아갔다.
‘용인이 들썩들썩’…동춘175,‘쉼’을 제공하다
◆ 800여 개 상품 모인 ‘동춘상회’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볕이 들면서 습기와 더위가 절정을 이룬 평일 오후였지만 동춘175에 마련된 250여 개의 주차 공간은 빈 곳을 찾기 어려웠다.

부지 면적 1만2852㎡(약 3888평)에 4층짜리 높은 동과 2층의 낮은 동이 ‘ㄱ’자로 연결된 복합 생활 쇼핑 공간 건물을 제외하곤 4층짜리 주차 타워가 전부인 이곳은 생각보다 큰 규모는 아니었다. 아마도 ‘복합 생활 쇼핑 공간’의 대명사 격이 된 스타필드(3만6000평)와 비교한 때문인 듯싶다.

“어떻게 이곳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것일까”라는 약간의 의아함과 실망감(?)이 들었지만 동춘175에 들어선 순간 “와”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런 느낌은 기자만 가진 것이 아닌 듯했다. 함께 방문한 사진기자 역시 기자와 같은 반응이었다. 비슷하게 입장한 방문객들 역시 “우와”라는 탄성을 내뱉었다.

낮은 동을 통해 들어간 동춘175는 원목이 주를 이룬 인테리어, 탁 트인 공간과 통유리창, 높은 천장 등이 어우러져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했다.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다.

건물 가운데 중간과 이를 둘러싼 판매대들은 거북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했고 동춘175의 전체적인 인테리어와 어울렸다. 오른쪽에 마련된 층층의 널찍한 원목 계단 의자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공간 곳곳에 마련된 의자와 탁자들은 방문객들에게 ‘쉼’이라는 여유를 선사했다.

본격적으로 동춘175가 가진 매력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첫발을 내디딘 낮은 동 중앙이다. 이곳은 ‘동춘상회’라는 마켓이 자리하고 있다. 콘셉트가 특이하다.

가구·명인명장·식품·잡화·생활·직물 등 67개 브랜드 800여 개의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아이템 중 기자가 알고 있는 브랜드는 ‘삼진어묵’이 유일했다.

살림이나 가구 등에 큰 관심이 없는 영향이 크겠지만 사실 이곳 제품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통 라인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주로 장인 정신을 이어오거나 2대, 3대가 이어온 전국의 각 지역 내 유명 상품들이다.

이런 상품을 발굴하고 입점시키기 위해 동춘175를 만든 세정그룹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래유통콘텐츠팀을 신설하고 동춘175에 걸맞은 브랜드 아이템을 찾기에 나섰다.

한초희 팀장과 팀원 3명은 전국에 있는 패션 외 모든 분야의 제품을 찾아 다녔다. 비영리단체인 마켓움과 협업하는 한편 직접 구매하고 테스트까지 거쳐 동춘상회에 입점할 아이템을 선정했다.

동춘상회가 국내 유통산업에 던진 메시지는 신선하다. 우수한 품질을 갖추고 있지만 마땅한 유통 라인을 갖추지 못해 뜨지 못했던 상품, 브랜드 이미지 작업을 추진하지 못해 상품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상품 등을 동춘상회가 해당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알리고 있다.

실제로 눈길을 끄는 상품은 ‘용인 백옥미’다. 흔히 경기미로 알려져 있지만 용인 특등급 쌀은 백옥미로 불려 왔다. 하지만 브랜드화하지 못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동춘상회는 용인시와 협업해 가장 우수한 백옥미를 선별하고 맛의 품질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진공포장 기법 등을 이용해 동춘상회만의 백옥미를 만들어 냈다.

이 밖에 ‘교아당’이라는 수제 강정도 동춘상회를 통해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쌀 조청과 물엿을 이용한 건강 간식 이라는 점이 부각되며 온라인상에서 육아 맘들의 입소문을 탄 제품이긴 하지만 동춘상회에 입점하며 오프라인 판매도 늘고 있다.
‘용인이 들썩들썩’…동춘175,‘쉼’을 제공하다
◆ 그룹 임직원이 함께 만든 ‘동춘175’

다른 장소를 둘러보기 위해 오른쪽 널찍한 원목 계단 의자 가운데 놓인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이동했다. 계단 의자에 앉아 있는 몇몇 방문객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저마다 책에 푹 빠져 있다.

이들이 보고 있는 책은 동춘175에 구비된 책들이다. 일부 책들은 동춘175에서 직접 구매해 비치해 놓았지만 대부분은 세정그룹 임직원들이 기증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결코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기증이었다고 한다.

임직원들은 옷만 만들어 팔던 세정그룹이 새로운 유통산업의 변화, 소비자 트렌드를 읽기 위한 회사의 방침에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주고 싶어 했다고 한다.

실제로 세정그룹 본사 직원에게 문의해 본 결과 세정그룹 총 직원 800여 명 중 동춘175에 직간접적인 아이디어 참여 및 디자인 설계 등에 1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서자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형 환편기가 자리했다. 지금의 세정그룹이 있도록 열심히 돌아가던 이 환편기는 경남 서창에서 올라왔다.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며 쓰임새가 다해 창고에 들어 있다가 이번 동춘175의 인테리어와 국내 섬유·의류 산업의 알리미 역할을 위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효과는 만점이다. 이날 이 환편기 앞에 서있던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를 엿들어 보니 엄마는 아이에게 환편기의 역할과 어떻게 옷이 만들어지는지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인테리어 효과도 만점이다. 언젠가 백화점을 둘러보다 재봉틀로 쇼윈도 인테리어를 한 해외 브랜드 올세인츠(ALLSAINTS) 매장이 참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동춘175에 설치된 환편기 역시 그에 못지않은 감동을 줬다.

동춘175에는 환편기 외에도 공간 곳곳에 직조·횡편기·패턴지·재단기·재봉틀·자수기 등이 자리해 있어 의류와 섬유산업의 역사를 볼 수 있도록 인테리어가 돼 있었다.

2층에서 ‘맛집’들이 자리한 곳으로 이동하는 통로는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였다. 편안한 소파가 곳곳에 놓여 있는데 모든 자리는 연인들이 차지했다. 약간은 눈꼴사나운(?) 이 통로를 지나면 드디어 맛집이 나온다. 종류는 많지 않다. 한식·중식·일식·분식 등 7개 브랜드다.

지역별 맛집, 유명 셰프 레스토랑 등이 주를 이루는데 동춘175에 알맞은 규모로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 층 내려가면 바로 유명 브런치 카페와 베이커리 가게가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용인이 들썩들썩’…동춘175,‘쉼’을 제공하다
◆ 사이즈별 옷 골라주는 ‘옷방’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4층의 높은 동이다. 높은 동은 1~3층이 쇼핑몰로 구성돼 있다. 세정그룹의 의류 브랜드 대부분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브랜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진 디자이너의 브랜드도 만날 수 있고 여타 다른 기업의 제품도 다수 판매되고 있다.
1층은 ‘웰메이드 2.0’ 제품, 즉 세정그룹의 대부분 브랜드(8개)가 이곳에 모였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 더해 최근 주목받는 디자이너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9개 브랜드를 입점시켜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이는 세정그룹의 새로운 도전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자사의 옷을 판매해 매출을 올리는 쇼핑 공간이 아닌 고객들에게 알맞은 옷을 골라주는 ‘옷방’으로의 변화다. 2층도 마찬가지다. 용인 인근에 골프장이 많아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자사 브랜드가 아닌 6개의 타사 골프웨어를 입점시켰다.

3층은 가장 큰 혁신을 보여주는 쇼핑 공간이다. 이곳은 아울렛 매장으로 꾸며졌는데, 세정그룹 8개 브랜드 이월 상품과 타사 3개 브랜드의 이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브랜드별 판매가 아닌 사이즈별 판매가 이뤄진다.

쉽게 말해 브랜드에 상관없이 90사이즈 티셔츠가 한 곳, 100사이즈 바지가 다른 한 곳에 쭉 나열되는 식이다. 이러한 판매 방식은 그동안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판매 방식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아울렛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판매 방식이다.

새로운 판매 방식에 대해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번거로움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보다 남성, 10~20대보다 30~40대들이 큰 호응을 보내고 있다.

이 건물 꼭대기 층인 4층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트램펄린 파크가 들어서 있다. 최대 입장 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하고 곳곳에 안전 요원을 배치해 안전사고의 위험을 최소화했다.

또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 역시 이곳을 이용할 수 있어 동춘175의 제1의 놀이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 ‘동춘175’ 이야기
- 그룹 모태 ‘동춘상회’에서 이름 빌려와


‘동춘175’는 부산에 본사를 둔 국내 대표 패션 기업 세정그룹이 경기도 용인에 연 복합 생활 쇼핑 공간이다. 부지 면적 1만2830㎡에 총면적 9240㎡ 규모로 ‘쉼이 있는 쇼핑 공간’이라는 콘셉트로 지난 7월 7일 문을 열었다.

‘동춘(東春)’은 세정의 모태인 ‘동춘상회’의 이름을 되살린 것이다. 동춘상회는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이 1968년 부산 중앙시장에서 처음 시작한 의류 도매상점 이름이다.

창업 당시 ‘동쪽에서 희망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동춘은 새로운 유통 플랫폼으로 ‘진정성’을 강조했던 사업 초창기 초심을 이어 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동춘175의 ‘175’는 동춘이 자리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죽전대로 175번길’을 뜻한다. 이곳은 1974년 세정의 1호 물류센터로 시작해 2009년부터 팩토리 아울렛이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기존 건물을 허물지 않고 공간 재생과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한 ‘업사이클링(upcycling)’을 통해 쇼핑·휴식·여가·외식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 생활 쇼핑 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

박 회장은 “동춘175는 세정의 오래된 물류센터 공간 업사이클링을 통해 새로운 활기를 띨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며 “환경과 사람을 생각하고 쉼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정그룹은 ‘동춘175’를 시작으로 차별화된 유통 플랫폼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라이프스타일 유통 그룹으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 비즈니스 제 1181호(2018.07.16 ~ 2018.07.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