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미국 앰팩 인수 이어 SK바이오팜 상장 가속도…1993년부터 ‘뚝심투자’
탄력 받는 최태원 SK 회장의 ‘제약·바이오 야망’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SK그룹이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SK그룹 지주회사인 SK(주)는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 전례가 없는 글로벌 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 미국 제약·바이오 기업 앰팩(AMPAC Fine Chemicals) 인수를 결정한 것이다. 인수 금액은 약 7000억~80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M&A 사상 최대 규모다.


최태원 SK 회장은 원료 의약품 수탁생산· 개발(CDMO)을 담당하는 SK바이오텍과 신약 개발을 맡고 있는 SK바이오팜을 바탕으로 제약·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운다는 목표다.


◆유럽 이어 미국에 생산 기지 구축


SK(주)는 7월 12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제약·바이오 CDMO인 앰팩의 지분 100% 인수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SK는 지난해 유럽의 고부가가치 원료 의약품 생산 시설을 인수한 데 이어 글로벌 최대 제약·바이오 시장인 미국에 본격 진출함으로써 세계 최대 CDMO 도약을 눈앞에 두게 됐다.


인구 고령화 추세에 따라 글로벌 제약 시장은 연평균 4%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선두권 CDMO들은 연 16% 이상 고속 성장 중이다. 대규모 생산 시설을 보유하지 못한 신생 제약 업체는 물론 대형 제약사들마저 의약품 생산을 전문 CDMO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앰팩은 199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된 기업이다. 미국 내 3곳의 생산 시설에서 항암제와 중추신경계·심혈관질환 치료제 등에 쓰이는 원료 의약품을 생산한다. 임직원 수는 약 500명으로, 연 15% 이상의 성장세를 유지 중이다.


앰팩은 특히 글로벌 제약사들과 20년 이상 장기간에 걸친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블록버스터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의약품 원료에 대한 단독·우선 공급자 지위를 확보하는 등 미국에서 10위 안에 드는 우량 CDMO라는 게 SK의 설명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다수의 글로벌 CDMO와 사모펀드가 고수익·고성장세를 유지 중인 앰팩 인수에 관심을 보여 왔지만 앰팩은 결국 제약·바이오에 지속 투자하고 있는 SK와의 시너지를 택했다”고 말했다.
탄력 받는 최태원 SK 회장의 ‘제약·바이오 야망’
업계는 이번 인수가 SK의 제약·바이오산업을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SK의 아시아·유럽 의약품 생산 역량과 앰팩 간 시너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SK(주)의 100% 자회사인 SK바이오텍은 고부가가치 원료 의약품을 생산해 글로벌 제약사에 수출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 아일랜드에서 총 40만 리터급의 원료 의약품을 생산 중이다. 앰팩의 생산 규모를 고려하면 2020년 이후 생산 규모가 글로벌 최대인 160만 리터급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SK(주) 관계자는 “앰팩의 생산 시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검사관의 교육 장소로 활용할 정도로 최고 수준의 생산관리 역량을 보유한 곳”이라며 “이번 인수를 통해 원료 의약품의 제품 안전성과 고객 신뢰를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 내에서 소비되는 의약품은 자국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기조의 생산 규제에도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톱 CDMO로 도약하는 SK바이오텍


SK바이오텍은 1998년부터 원료 의약품을 생산해 글로벌 제약사에 수출해 왔다. 현재 노바티스·BMS·화이자·로슈 등 글로벌 메이저 제약사에 당뇨·간염 치료제에 쓰이는 원료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


SK바이오텍은 지난해 10월 세종 공장을 준공, 기존 대전 대덕단지(16만 리터)를 포함해 총생산 규모를 32만 리터로 늘렸다. SK바이오텍 세종 공장은 ‘저온 연속 반응 공정’을 국내 최초로 적용한 곳이다.


연속 반응 공정은 긴 파이프에 물질을 흘려보내는 과정에서 화학반응을 통해 원하는 물질을 만들어 내는 공법이다. 안전성 확보는 물론 폐기물도 최소화할 수 있어 글로벌 CDMO들이 앞다퉈 도입하려는 기술로 꼽힌다. 세계적으로 양산화 성공 사례가 드문 고난도 기술이다.


SK바이오텍은 2007년 세종 공장에서 연속 반응 공정 양산화에 성공한 뒤 2014년 세계 최초로 FDA의 인증을 받았다. 1970년대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시절 석유화학 공정에 활용하던 기술을 의약품 생산에 적용한 것이다.
탄력 받는 최태원 SK 회장의 ‘제약·바이오 야망’
SK바이오텍은 현재 세종 공장 증설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20년까지 연간 생산 규모를 64만 리터로 4배 이상 늘려 국내 최대 규모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SK바이오텍은 지난해 6월 BMS의 아일랜드 스워즈 원료 의약품 공장을 통째로 인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워즈 공장은 BMS가 생산하는 합성 신약 제조 과정 중 난이도가 가장 높은 공정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유럽 본토에 대규모 생산 설비를 직접 보유한 곳은 SK바이오텍이 유일하다.


SK(주) 관계자는 “SK바이오텍의 한국·유럽 생산 시설과 앰팩의 연구·개발(R&D), 생산, 마케팅·판매 ‘삼각편대’를 활용해 글로벌 사업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갈 것”이라며 “2022년 기업 가치 10조원 규모의 글로벌 선두 CDMO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신약 출시 앞둔 SK바이오팜


SK(주)는 신약 개발 사업을 중점 육성하기 위해 2011년 4월 ‘라이프 사이언스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SK바이오팜을 출범시켰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간질)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신약 허가(NDA)를 연내 FDA에 신청할 계획이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의 막바지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국내 기업 중 기술수출 없이 글로벌 임상 3상을 독자적으로 진행한 첫 사례다. 세노바메이트가 FDA 승인을 받으면 생산은 SK바이오텍이 맡게 된다.
탄력 받는 최태원 SK 회장의 ‘제약·바이오 야망’
SK바이오팜은 미국 법인에 마케팅 조직을 설립하고 업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채용함으로써 글로벌 판매·마케팅에도 시동을 걸었다. 세노바메이트의 연매출은 핵심 시장인 미국에서만 1조원 이상으로 예측된다. 통상 특허가 만료되는 10여 년의 기간 동안 모든 관련 수익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12월 21일 미국 재즈와 공동 개발 중인 수면 장애 치료제 ‘솔리암페톨’의 FDA 신약 승인 신청을 완료하기도 했다. 이 신약은 이르면 내년 초 미국 시판이 가능할 전망이다.


SK바이오팜은 2011년 솔리암페톨의 임상 1상을 완료한 뒤 미국 제약사 재즈에 기술수출했고 공동 개발을 통해 지난해 임상 3상을 마무리했다. 수면 장애 치료제 시장 선도 의약품인 ‘자이렘’을 판매하는 재즈는 솔리암페톨을 후속작으로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자이렘은 수면 장애 치료제 시장에서 매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솔리암페톨은 수면 장애 환자 88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 주간 졸림증을 현저히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의 주관적 졸림 정도도 자이렘 대비 2배 이상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SK바이오팜의 설명이다.


솔리암페톨이 FDA 승인을 받으면 SK바이오팜은 미국 판권을 보유한 재즈로부터 로열티를 받고 일본·중국 등 아시아 12개국에서 제품을 직접 판매하게 된다.


SK(주)는 SK바이오팜의 상장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당초 목표였던 미국 나스닥 직상장은 물론 한국 유가증권시장 입성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내부 조율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탄력 받는 최태원 SK 회장의 ‘제약·바이오 야망’
한편 최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28) 씨는 지난해 6월 SK바이오팜에 입사해 실무 경력을 쌓고 있다. 최 씨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시카고대 뇌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SK는 1993년부터 최태원 회장의 의지 아래 당장의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제약·바이오 사업에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SK(주) 관계자는 “SK의 제약·바이오 사업은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삼성 vs SK, 서로 다른 ‘제약·바이오 투자 전략’


SK(주)의 궁극적 목표는 ‘글로벌 FIPCO’다. FIPCO(Fully Integrated Pharma Company)는 연구·개발(R&D)뿐만 아니라 생산과 판매·마케팅까지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종합 제약사를 뜻한다.


신약 하나로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미국 화이자나 노바티스 같은 글로벌 FIPCO로의 성장은 국내 제약사에 전례가 없는 도전이다. 이러한 도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20년 이상 축적된 SK의 자체 R&D 역량이다.


국내에서는 5대 대기업 중 삼성·SK·LG 등 3곳이 제약·바이오 부문을 차세대 먹거리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SK는 특히 R&D와 생산 담당 회사를 각각 따로 두고 있는 삼성과 비교되곤 한다.


삼성의 제약·바이오 사업은 R&D를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2012년 설립)와 생산 부문을 맡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11년 설립)가 이끈다. 하지만 두 대기업의 사업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SK는 화학 의약품이 주력인 반면 삼성은 바이오 의약품 사업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 의약품은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 약을 뜻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약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바이오 의약품은 사람 또는 기타 생물체에서 유래하는 세포·단백질·유전자 등을 원료로 제조한 의약품이다. 성분에 따라 생물학적 제제, 단백질 의약품, 항체 의약품, 세포 치료제 및 유전자 치료제 등으로 구분한다.


SK가 신약으로 글로벌 시장을 노크하는 것과 달리 삼성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로 몸집을 키워 온 부분도 차이점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면역질환 치료제 ‘엔브렐’·‘레미케이드’·‘휴미라’, 항암제 ‘허셉틴’, 당뇨치료제 ‘란투스’ 등 5종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 완료했다. 지난해 8월 일본 다케다제약이 발굴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넘겨받아 바이오 신약(급성 췌장염 치료제)을 공동 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지만 주력 사업은 여전히 바이오시밀러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3호(2018.07.30 ~ 2018.08.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