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600조 국민연금' 어디로 가나?]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 “피라미드 인구구조·고성장·고금리 기반해 설계돼”
“30년 전 만든 국민연금… ‘환상’ 깨는 것이 개혁의 시작”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국민연금공단이 창립된 1987년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12.5%였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10%에 달했다. 인구구조 또한 완벽하게 피라미드 형태를 띠고 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매우 달라졌다. 2018년 경제성장률은 2.9%로 낮아졌고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1.5%대로 묶여 있다. 고령화로 인구구조도 역피라미드 형태로 뒤집어졌다. 지금 국민연금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은 ‘필연적 결과’란 얘기다.

홍성국(55) 혜안리서치 대표(전 미래에셋대우 사장)는 증권업계의 ‘미래학자’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국내 금융시장의 큰 흐름을 읽어 내는 통찰력이 남다르다. 그런 그가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가 있다. 국민연금이다. 최근 한국의 가장 뜨거운 이슈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노후 설계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2011년부터 대우증권 미래설계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미래설계의 정석’ 등의 저서를 펴내며 꾸준히 국민의 노후 자산 설계 분야에 관심을 가져 온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난 8월 14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홍 대표는 “1987년 당시 설계한 국민연금 제도를 2018년에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국민연금의 ‘큰 그림’을 다시 짜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연금의 수익률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보다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데요.

“국민연금의 수익률과 관련해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국민연금이 ‘테슬라’와 같은 회사에 투자한다고 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국민의 노후 자산을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이처럼 리스크가 높은 투자를 집행한다는 것을 국민은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수익률을 지금보다 높이기 위해서는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비율을 높여야 하는데, 이는 다시 말해 수익이 날 때는 더 ‘높은 수익’을 얻겠지만 반대로 손해가 발생했을 때는 반 토막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국민연금이 어느 정도까지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지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국민연금의 인력 이탈이 이 같은 투자 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보시나요.

“지금의 국민연금은 ‘어항 속의 금붕어’나 다름없습니다. 세계 그 어느 연기금도 한국처럼 ‘단기간의 수익률’에 집착하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연금의 투자 인력들이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자신의 역량을 펼치기 힘들 수밖에 없죠.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금과 같은 과도한 관심을 줄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최근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시기가 3년에서 4년 정도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보험료 인상과 같은 대안이 도움이 될까요.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고갈 시기’가 시작되는 지점을 계속 늦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니까요. 국민연금은 일종의 ‘사회 안전망’입니다.

보다 큰 틀에서 우리 사회의 사회 안전망 제도를 다시 짜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사학연금·공무원연금 등도 같이 손봐야 할 필요가 있고요, 또 건강보험과도 연계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 안전망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면 그 시작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 경제가 최대 호황을 누렸던 1987년에 탄생한 국민연금은 국민에게 매우 큰 혜택을 주도록 설계된 제도였습니다. 일종의 ‘국민연금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겁니다. 그런데 당시의 ‘피라미드 인구구조’를 기반으로 설계된 국민연금 제도가 ‘역피라미드 인구구조’를 갖춘 지금 이 시대에 더 이상 통용될 수는 없습니다.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됐고 고령화는 갈수록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 안전망을 설계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만 하는 절실한 문제예요. 어떻게 보면 국민이 갖고 있는 그 ‘환상’을 깨는 것이 그 출발점일 수 있겠죠.”

-‘국민연금에 대한 환상’을 깨는 것이 가능할까요.

“국민연금 제도의 개혁은 지금 당장의 문제가 아닌 미래의 문제입니다. 현재 연금을 수령 받는 세대가 아니라 나중에 이 연금을 수령 받게 될 우리의 ‘자녀·손주 세대’에 해당되는 문제죠. 국민연금은 세대 간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매우 폭발력이 큰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연금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 이면의 ‘세대 간의 갈등’과 ‘정치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니까요. 또 국민연금이라는 단편적인 하나의 제도만 놓고 볼 것이 아니라 한국의 ‘세법 전체’를 포괄적으로 바라봐야 하고요. 지금처럼 부분적인 개선안이 아니라 보다 ‘과감한 개혁안’이 나와야 합니다.”

-이처럼 포괄적인 수준의 개혁을 위해서는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합니다. 결국은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걸까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권에서 먼저 ‘통 큰’ 개혁안의 밑그림을 내놓고 선거로 이를 심판 받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라도 이런 문제가 제기된 게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하루 빨리 논의가 본격화되고 10년 뒤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치열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와 같은 선배 세대들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입니다.”

약력: 1963년생.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2006년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2011년 대우증권 미래설계연구소장. 2014년 KDB대우증권 사장. 2016년 미래에셋대우 사장. 2017년 혜안리서치 대표(현).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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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6호(2018.08.20 ~ 2018.08.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