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동남아 금융벨트를 가다, 은행들의 신남방 전략]
-높은 경제성장률·부족한 금융 인프라 등 새 성장 무대로 딱 맞는 ‘신남방’ 지역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국내 영업망 강화, 국내시장에서의 차별화도 더 이상 해답은 아니다. 전통적 핵심 수익원인 예대마진은 갈수록 줄어든다. 은행업도 계속 내수산업에 머물러선 더 이상 미래가 없다.

해외시장 개척이 은행권의 절박한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최근 동남아시아가 주목받고 있다. 6억3000만 명의 거대한 인구와 연평균 5%가 넘는 성장률을 자랑하는 동남아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다.

한경비즈니스가 캄보디아·미얀마·베트남·인도네시아 등 4개국에 직접 날아가 국내 6개 은행(우리은행·KB국민은행·NH농협은행·신한은행·KEB하나은행·IBK기업은행)의 신남방 전략을 현지 취재했다. ‘새로운 금융 금맥, 동남아 금융 벨트’의 현주소를 6회에 걸쳐 소개한다.
동남아 시장 ‘정조준’한 한국 은행들
◆범아시아 지역 '리딩 뱅크' 부상 기회

은행들이 동남아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저성장과 금융시장의 포화 현상 등으로 갈수록 먹거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내시장을 넘어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동남아 시장에서 제2의 성장 동력을 찾는다는 전략이다.

국내 은행들은 풍부한 자금력과 대외 신인도를 바탕으로 해외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더욱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며 범아시아 지역 은행의 ‘리딩 뱅크’로 부상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신남방(아세안+인도)정책’까지 더해지며 은행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으로 국내 12개 주요 은행의 해외 점포는 총 39개국에 185개가 진출해 있다.

해외 진출 초기에는 북미나 유럽 등 주요 금융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출했지만 2011년을 전후로 아시아 신흥국에 해외 점포를 더 많이 개설했다. 185개의 해외 점포 중 아시아 지역이 129개로 전체의 69.7%를 차지한다. 유럽은 11.9%(22개), 북미는 11.4%(21개)다.

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곳이 있다. 한국의 제2 교역 상대이자 투자처인 ‘아세안’이다.
아세안 공동체 10개국 중 국내 은행의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은 곳은 단연 베트남이다.

국내 12개 은행의 해외 점포만 총 19개로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IBK기업·NH농협은행 등 6대 주요 은행 모두가 현지법인이나 지점·사무소 형태로 하노이와 호찌민에 둥지를 틀었다.

이 중 1993년 한국 은행 최초로 호찌민에 대표 사무소를 개설한 신한은행은 2017년 ANZ은행 베트남 리테일 부문을 인수하며 명실 공히 베트남 내 외국계 은행(순이익 기준) 1위로 올라섰다. 호찌민을 비롯해 남부에만 18개, 북부에 12개 지점을 여는 등 총 30개의 점포망으로 베트남 전역에 뻗친 압도적인 채널망이 강점이다.

베트남에 이어 미얀마에도 주요 은행 6개사 모두가 뿌리를 내렸다. 한국계 은행의 총 점포 수만 13개다. 과거 군사정권이었던 미얀마는 정부가 민간으로 이양된 이후 정세가 안정되면서 국내 은행의 진출이 급증했다.

신한은행이 유일하게 상업은행으로 진출했고 이를 제외한 5개 주요 은행은 소액 대출 회사(MFI) 형태로 진출했다. 특히 2016년 12월 문을 연 농협파이낸스미얀마는 NH농협은행의 최초의 해외 자회사로, 농협만의 차별화 전략을 바탕으로 미얀마 농업금융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한국계 은행의 격전지다. 인도네시아 금융 당국이 외국 은행의 자국 은행 M&A 규제를 완화하면서 2016년부터 은행을 중심으로 진출이 확대됐다.

현재 신한·KEB하나·우리은행 등 3개사가 현지법인을 개소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중 KEB하나은행은 2018년 7월 현지 금융 전문지 인베스터가 뽑은 ‘2018년 최우수 은행’ 1위에 선정되는 성과를 올렸다.

캄보디아는 최근 국내 은행의 진출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다. 지난해 말까지 12개 은행 중 5개 은행이 6개소를 냈지만 올 들어서만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이 잇따라 현지법인을 인수하며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2014년 현지법인 인수로 첫 진출에 나선 뒤 올해 둘째 M&A에 나설 만큼 캄보디아 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동남아 시장 ‘정조준’한 한국 은행들
◆‘젊은’ 아세안, NIM 비율도 군침

은행들이 동남아 지역을 제2의 성장 동력으로 선택한 이유는 아세안의 높은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아세안 공동체의 인구수는 약 6억3000만 명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은 세계 3위다.

국내총생산(GDP)은 약 2조5000억 달러로 미국과 중국 등 G2와 일본·독일·프랑스·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 이어 7위권 규모(EU와 같은 지역공동체 제외)다.

아세안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약 5%로 앞으로도 지속 상승세를 이어 갈 전망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17년 기준 3.1%란 점에 비교하면 거의 배에 달할 만큼 신흥국으로서의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

한국을 비롯해 주요 선진국들이 ‘고령화’돼 가고 있는 반면 아세안의 시장은 ‘젊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아세안 인구의 60%가 35세 이하인 젊은 시장으로, 중산층 인구가 2020년 4억 명으로 예상돼 10년 새 2배나 증가하는 등 내수 시장이 지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저임금, 풍부한 천연자원, 후발 신흥국으로서의 개혁·개방까지 합쳐지면서 아세안 공동체는 글로벌 기업들의 ‘미래의 텃밭’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한국에 아세안은 중국에 이어 둘째 교역 상대이자 제2의 해외투자 대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아세안의 경제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세안과 인도를 묶어 한국의 핵심 경제 파트너로 삼고 ‘신남방(아세안+인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해 관계를 주변 4개국(미국·중국·러시아·일본) 수준으로 발전시키자는 전략 정책이다.

정책적 분야에는 교통·통신·방위 사업을 비롯해 ‘금융’이 묶여 있다. 정부는 이들 분야에서 한·아세안 간의 교역량을 2020년까지 한·중 교역량인 2000억 달러 규모로 늘리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아세안 시장의 금융 환경도 국내 은행들의 동남아 진출을 부추기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대부분 은행업이 성숙하지 않아 상업은행이 아닌 MFI가 서민금융을 장악하고 있다.

또 은행 이용자 수도 많지 않다. 예컨대 캄보디아는 국민의 은행 이용률이 22%에 달할 만큼 낮다. 그 대신 모바일 침투율이 96%로 국내 은행이 비대면 시장에서 승부수를 걸어볼 만하다.

◆중·장기적 시각으로 ‘신뢰’ 확보해야

높은 기대 수익률 역시 국내 은행의 군침을 흘리게 하는 요소다. 동남아 시장은 시장의 순이자마진(NIM)이 국내보다 2배 이상 높다. 싱가포르계 글로벌 은행인 DBS뱅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인도네시아의 NIM 추정치는 무려 6.90%다.

잠재력만큼이나 주의해야 할 것도 많다. 은행들이 진출을 희망하는 아시아 신흥국 상당수는 외국계 자본에 대한 지분 보유 한도 규제로 현지 은행의 M&A를 통한 점포망 확대가 불가능하다.

특히 태국의 사례를 주목할 만하다. 태국은 동남아 중심에 자리한 아세안의 전략적 요충지로 외국인 투자 비율이 높지만 국내 6대 주요 은행의 점포는 단 한 곳도 찾아볼 수 없다.

태국 금융 당국의 높은 규제 문턱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국내 은행에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 구 외환은행을 시작으로 국내 은행이 태국에 잇달아 지점을 설치했다가 외환위기가 터지자 2000년 전후로 모두 철수하면서 아직까지 신규 인가를 받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해외 진출은 해외 감독 당국과 해외 고객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중·장기적 비전을 갖고 꾸준하게 추진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일시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중·장기적 시각으로 면허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과당경쟁도 문제다. 국내 금융시장의 포화로 해외에 진출했지만 1개 국가에 다수의 은행이 진출하면서 오히려 수익이 악화될 수도 있다. 은행들의 국가별 분산 진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의 한정된 자본과 단일국가 진입을 위한 높은 고정비용을 고려할 때 해외 영업은 1~2개의 국가를 선택해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일찌감치 현지 정부 관료, 경제계 인사와 접촉해 원조 지원을 약속하는 등 현지 네트워크를 강화함으로써 일본계 은행의 진출에 일조하고 있다.

예컨대 미얀마는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금융 라이선스 허가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일본계 은행은 정부 지원으로 우호적인 은행 이미지를 확보한 덕분에 다른 국가들보다 쉽게 문턱을 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초기 진입 시 주요 국가별로 형성돼 있는 네트워크를 통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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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8호(2018.09.03 ~ 2018.09.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