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의 본업인 철강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다. 리튬은 전기차나 노트북의 배터리 등에 포함되는 2차전지를 만드는 데 필수 원료로 쓰이는 소재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포스코의 비철강 부문 강화를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정우 회장 ‘비철강 매출이 철강 넘어서야’
비철강 부문 강화는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포스코의 최대 과제다. 비(非)엔지니어 출신이면서 그간 그룹 내에서 신사업 발굴 등을 도맡아 온 최 회장이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된 것도 철강 이외의 새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포스코 안팎의 요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에너지 소재 분야에서 글로벌 톱 티어(일류 기업)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며 “2030년까지 포스코의 에너지 소재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고 연간 15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포스코의 중·장기 전략을 구체적인 수치까지 공개하며 내놓은 것이다.
포스코는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68년 연결 매출 500조원 달성을 꿈꾸고 있다. 매출 비율은 철강 40%(200조원), 비철강 60%(300조원)로 설정하고 있다. 포스코가 이런 사업 구조를 그리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글로벌 철강 시장의 녹록하지 않은 환경 때문이다.
포스코의 주력 사업인 철강은 약 10년 전부터 중국발 공급과잉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주요 20개국(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 33개국이 참여해 출범한 철강 글로벌 포럼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세계 철강 공급과잉 물량은 약 7억3000만 톤 수준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세계 철강 생산량은 16억 톤 정도인데 이 중 45%가 활용되지 못하고 쌓여 있는 셈이다. 중국이 매년 전 세계 철강의 50%에 달하는 8억 톤 정도의 물량을 쏟아내고 있어 공급과잉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설비 감축 등 철강업계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등의 감축 계획을 내놓고 있어 이전보다 사정이 나아지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게다가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철강 보호무역주의가 유럽 등 세계 각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시장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물론 포스코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밑바탕으로 업계를 주도하고 있어 현재의 시장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 매출의 80%가 철강에서 나올 정도로 ‘철강 의존도’가 높은 만큼 만에 하나라도 지금보다 급격하게 경영 환경이 어려워진다면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간 포스코가 50년을 넘어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철강만으로는 무리라는 의견이 안팎에서 꾸준하게 제기돼 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최 회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포스코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새 먹거리는 신소재 분야다. 이 중에서도 포스코는 최근 미래 산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2차전지인 ‘리튬이온전지’ 소재 분야를 키워 새로운 캐시카우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리튬이온전지는 노트북과 스마트폰은 물론 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이다.
특히 최근에는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속도를 낼 기미를 보이면서 해들 거듭할수록 리튬이온전지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전지 소재의 중요성 역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전기차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배터리 성능이 앞으로 더욱 개선될 필요가 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바로 배터리의 핵심 소재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정적 리튬 확보에 성공
사실 포스코도 이 같은 리튬이온전지의 성장성에 주목해 관련 시장에 이미 2010년에 진출했다. 리튬이온전지는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로 구성되는데 이 4가지 소재가 전체 생산원가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소재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산업이다.
그간 꾸준하게 노력한 끝에 포스코는 원재료인 리튬 확보를 비롯해 양극재·음극재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최 회장은 그 바통을 이어받아 해당 분야에서 그룹 차원의 역량을 더욱 집중적으로 쏟아부어 본격적으로 사업의 덩치를 키워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포스코가 최 회장 취임 이후 단행한 첫 대규모 투자 역시 이 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호주의 자원 개발 업체인 갤럭시리소스가 보유한 아르헨티나 리튬 염호에 대한 광산권 매매계약을 2억8000만 달러(약 3120억원)에 인수했다. 이번에 포스코가 광권을 확보한 염호는 아르헨티나 북서부에 자리한 ‘옴브레 무에르토’ 호수 북측 부분이다. 면적은 약 1만7500ha다. 서울시 전체 면적의 30% 정도에 해당하는 광활한 규모에서 20년간 매년 2만5000톤의 리튬을 생산할 수 있는 염수를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리튬 총 공급량은 약 21만 톤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물론 아쉽게도 당장 생산이 가능하지는 않다. 연내 광권 인수를 마무리한 뒤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염호에 리튬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공장 건설까지 걸리는 시간 등을 모두 더하면 대략 2021년부터 리튬을 본격 생산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특히 이번 염호 확보는 포스코가 오랜 시간 공들인 끝에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포스코는 2010년 리튬 사업에 진출한 지 약 8년 만에야 염호 확보에 성공했다.
남미 국가들 중 아르헨티나·칠레·볼리비아는 리튬 매장량이 풍부한 좋은 조건의 염호가 집중됐다. 이른바 ‘리튬 삼각지’로 불린다. 글로벌 주요 리튬 공급 생산 업체들 모두 해당 지역에 있는 염호에 하나둘 자리 잡고 리튬을 생산해 지금까지도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이에 포스코도 리튬 삼각지역에 있는 염호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여 왔다. 하지만 염수에서 리튬을 뽑아내는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데는 성공했음에도 염호 확보에는 매번 고배를 마시며 쓴맛을 봤다.
리튬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면서 중국을 비롯한 여러 개발 업체들이 같은 지역의 염호 확보에 달려들었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기 때문이다.
결국 포스코는 다른 방법으로 리튬을 추출해 생산하기로 결정한다. 폐기 처리되는 2차전지로부터 인산리튬을 추출해 리튬을 생산하는 기술과 함께 광석인 리튬정광으로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그동안 이를 통해 리튬을 뽑아내 왔다. 이 때문에 올해 2월에는 호주 자원 개발 업체인 필바라미네랄스로와 연간 3만 톤의 리튬을 생산할 수 있는 분량의 리튬정광을 장기 구매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러던 가운데 마침내 오랜 숙원이었던 염호 확보에 성공하며 보다 안정적으로 리튬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염호 확보에 성공하면서 2021년부터 연간 5만5000톤의 리튬을 생산할 수 있을 전망”이라며 “원료 수급 상황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리튬을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안정적인 리튬 확보를 통해 포스코가 갖게 되는 이점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는 리튬으로부터 시작되는 전기차 가치 사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함과 동시에 각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전기차 가치 사슬은 리튬-양극재·음극재-배터리-전기차로 이어진다. 포스코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각각 포스코ESM과 포스코켐텍에서 생산하고 있는 만큼 사업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 등 추가 신성장 동력 물색
특히 양극재는 2차전지 소재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포스코의 자회사인 포스코ESM은 현재 구미에 연산 1만2000톤, 광양에 연산 5만 톤 규모의 양극재 생산 기지 구축을 목표로 증설을 진행 중이다.
광양공장이 계획대로 2022년 완공되면 포스코의 총 양극재 생산 가능 물량은 국내에서만 연간 6만2000톤에 이르게 된다. 이는 전기차 약 100만 대분의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해외까지 포함하면 생산 가능량은 더 늘어난다. 포스코는 중국 화유코발트와도 전구체·양극재 생산 법인을 합작 설립해 2020년 하반기부터 4600톤 규모의 생산 라인을 가동할 예정이다.
삼성SDI와도 합작법인을 만들어 칠레에서 2021년 하반기부터 연간 3200톤 규모의 전기차용 고용량 양극재 생산 라인을 가동할 예정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2030년 약 30만 톤의 양극재 생산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음극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코켐텍이 생산 기술을 보유했다. 음극재는 IT 기기 등 소형 전지에서부터 전기자동차용 대용량 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에 적용된다. 포스코는 음극재를 생산해 주요 전지사에 공급하고 있는데 보다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늘려 나간다는 구상이다.
포스코켐텍은 올해부터 세종시 전의산업단지 내 음극소재사업소에 2차전지 음극재 공장을 증설하고 내년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현재 포스코켐텍은 연산 1만6000톤 규모의 생산 체제를 갖고 있는데 증설이 완료되면 3만5000톤으로 증가하게 된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생산 설비를 더욱 늘려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연산 4만 톤 이상의 설비 구축을 계획 중이다.
한편 포스코는 에너지 소재 외에도 바이오를 비롯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다양한 신성장 동력을 추가로 모색 중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에너지 소재 외에는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지만 어떤 사업이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을지 물색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 회장은 취임 100일째를 맞는 11월 포스코의 개혁 과제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이때 추가로 신사업에 대한 구상을 내놓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돋보기
본업인 철강 부문에서도 결코 뒤처질 수 없다.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에너지 소재’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비용이 필수인데 철강 산업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줘야 가능한 일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올해 3월 펴낸 ‘글로벌 철강사의 사업 다각화 추진 사례와 교훈’ 보고서를 통해 그간 글로벌 철강 업체의 사업 다각화 실패 및 성공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그룹 내 확실한 ‘캐시카우’ 사업이 있고 기업 경영 자원에 여유가 있을 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포스코는 본업인 철강에서의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향후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술력에 기반한 고급화·차별화 전략을 이어 나갈 방침이다. 중국산 철강 물량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간 포스코가 계속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월드 프리미엄(WP) 제품이 있다.
㎟당 100㎏ 이상의 하중을 견디는 초고강도 강판(기가스틸), 섭씨 영하 196도의 온도에서도 견딜 수 있어 액화천연가스(LNG)의 저장·이송에 적합한 고망간강 등 WP 제품 판매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수익성 향상을 견인했다. WP 판매량은 2014년 1000만 톤에서 지난해 1700만 톤으로 급증했고 판매 비율도 절반을 넘어섰다.
포스코가 고유 기술로 자체 개발한 제철 공법 파이넥스(FINEX) 역시 어려운 철강 업황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파이넥스 공법은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포스코가 3000억원 이상의 연구·개발(R&D)비를 투자해 완성했다.
포스코는 파이넥스 공법을 처음 상용화한 설비를 2007년 4월 10일 가동해 '쇳물은 용광로에서 생산된다’는 철강 산업의 기술 패러다임 자체를 바꿨다. 원료의 예비 처리 공정을 생략하고 값싼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을 바로 사용하기 때문에 동급 일반 용광로 대비 투자비와 생산원가를 85%까지 절감할 수 있다.
향후에도 포스코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 경쟁력을 보다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제품 개발과 원가절감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R&D)에 지속적으로 매진할 방침이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8호(2018.09.03 ~ 2018.09.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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