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스마트 팩토리 시대의 교두보 역할로 ‘찜’…화낙·ABB 등 기존 강자도 경쟁적 출시


[한경비즈니스=진석용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산업용 로봇 시장에 의미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도입 이후 지금까지 60여 년간 산업용 로봇의 확산을 제약해 온 공정과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과 한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는 로봇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로봇들은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인간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특징을 부각하는 차원에서 협동 로봇(collaborative robot) 또는 협업 로봇이라고 불린다.
로봇 산업의 새로운 아이콘 ‘협동 로봇’
◆인간과 함께 일하는 로봇

1960년대부터 상용화된 산업용 로봇은 오늘날 로봇 분야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후지경제·국제로봇협회(IFR) 등에 따르면 2016년 약 13조원 수준을 기록했던 글로벌 시장이 2020년께에는 약 20조원대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타 로봇들에 비해 산업용 로봇이 유독 빨리 상용화된 이유는 생산성 향상이란 수요자의 요구를 충실하게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작업 속도와 작업 결과의 균질성 측면에서 산업용 로봇의 능력은 인간에 비해 훨씬 우수하다.

반면 산업용 로봇의 용도는 여전히 한정적이다. 산업용 로봇은 동작이 단순하면서 속도가 중요한 작업, 인간이 다루기에 너무 무겁거나 위험한 물건을 다루는 공정에 한해 투입되고 있다.

정밀하거나 복합적인 동작이 필요한 공정,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공정 등에는 산업용 로봇이 아직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산업용 로봇 시장의 성장성을 제한적이라고 보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존 산업용 로봇이 가졌던 공정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종류의 로봇들이 등장하고 있다. 인간과 한 공간에서 공동으로 작업하는 데 초점을 둔 새로운 유형의 산업용 로봇은 ‘협동 로봇(cobot : collaborative robot)’ 또는 ‘협업 로봇’, ‘코봇’이라고도 불린다.

협동 로봇 시장의 초창기에는 유니버설 로봇 등 소수 신생 기업들이 주도해 왔지만 유망성이 확인된 현재 화낙·ABB 등 산업용 로봇 시장을 과점적으로 지배해 온 글로벌 기업들도 속속 참여해 협동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협동 로봇은 인간과 한 공간에서 인간의 작업 수준과 작업 속도에 맞춰 작동할 수 있도록 로봇 사용자의 안전성 확보와 편의성 강화에 주안점을 두고 개발된 로봇이다.

그래서 협동 로봇은 기존 산업용 로봇과는 여러모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외견상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인간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 마련됐던 로봇 전용 공간을 설치할 필요가 없는(cage-free) 로봇이란 점이다.

협동 로봇은 전용 공간과 안전 펜스를 없앤 대신 레이저 커튼이나 비전 센서 등 다양한 센서를 적용해 인간이 로봇의 작동 반경에 들어오면 동작 속도를 늦추거나 정지하는 식으로 작동함으로써 인간 작업자의 안전을 꾀하고 있다.

또한 협동 로봇은 누구든지 쉽게 설치할 수 있고 작업의 융통성을 높일 수 있도록 로봇의 동작이나 작업 내용을 손쉽게 바꿀 수 있게 만들어졌다.
로봇 산업의 새로운 아이콘 ‘협동 로봇’
◆지능과 기구부의 고도화가 핵심

협동 로봇의 핵심 기술은 향상된 로봇 지능과 의도했던 작업 결과를 실제로 구현해 내는 우수한 하드웨어(기구부)라고 볼 수 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인간의 안전을 확보하는 동시에 다양한 작업 여건에 맞춰 융통성 있게 작업 내용을 바꿀 수 있으려면 기존 산업용 로봇보다 우수한 감지 능력과 판단력 및 학습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다양한 작업을 해내려면 △인간의 손과 같이 정교한 동작을 취할 수 있도록 보다 향상된 그리퍼(gripper) 등의 엔드 이펙터(end-effector) △인간의 팔처럼 유연하면서도 다양한 각도의 자세를 취할 수 있는 머니퓰레이터(manipulator) △적절한 힘을 구사하도록 제어할 수 있는 정교한 힘 센서 등과 같은 우수한 기구부도 필요하다.

이런 요소 기술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차세대 기술 중 하나가 빈 피킹(bin-picking)이다. 빈 피킹은 로봇이 무작위로 배열된 다양한 모양의 물체들을 식별해 각각의 요구 조건에 맞게 다루는 기술이므로 차세대 산업용 로봇이 반드시 갖춰야 할 기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로봇 시장의 후발 주자들과 선도 업체들은 제품의 개념이나 시장 접근 방식 등에서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유니버설 로봇이나 리싱크 로보틱스(rethink robotics) 등 후발 주자들은 기존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소외됐던 잠재 고객들에게 적합한 소형 협동 로봇 개발에 주력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아직까지 협동 로봇 시장은 신생 기업들이 주도하는 양상이다.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협동 로봇은 최초의 양산형 협동 로봇인 유니버설 로봇의 UR 시리즈다. 리싱크 로보틱스의 양팔 로봇 백스터(Baxter)는 돋보이는 외형 때문에 시장의 주목을 받은 바 있고 지금은 단점을 보완한 한팔 로봇 소이어(Sawyer)도 출시됐다.

국내에서는 한화테크윈(HCR-5)·두산로보틱스(M 시리즈)·오토파워(OPTi 05/10) 등이 경쟁적으로 협동 로봇을 개발, 출시하고 있다.

◆잠재적 수요에 대응하는 협동 로봇

협동 로봇의 수요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UR은 BMW·폭스바겐 등의 문짝 또 유리 본딩(bonding) 등 의장 공정이나 P&G의 포장 작업 등에 도입됐다. 소이어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발광다이오드(LED) 가로등 조립 공정에 투입됐다.

반면 산업용 로봇 시장의 선도 기업들은 기존 중소형 산업용 로봇의 지능과 안전성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ABB가 한 발 앞서 양팔 협동 로봇 유미(YuMi)를 출시한 바 있고 지금은 화낙·쿠카(KUKA)·가와사키·덴소·나치(Nachi)·스토블리(Staubli)·산교 등 많은 로봇 기업들도 연이어 협동 로봇을 공개하고 있다.

협동 로봇의 도입은 예전과 다른 파급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 로봇의 사용자 관점에서는 보다 향상된 비용 절감 효과를 도모할 수 있다.

기존 산업용 로봇에 필수적인 안전 펜스가 협동 로봇에는 필요 없으므로 그만큼 설비투자를 줄일 수 있다. 안전 펜스와 함께 로봇 전용 공간도 설치할 필요가 없어 공간 활용도도 대폭 높일 수 있다.

향상된 학습 능력을 갖춘 협동 로봇은 작업 전환도 신속하게 할 수 있어 운영비도 절감할 수 있다. 협동 로봇을 사용하게 되면 기존 산업용 로봇에 비해 설치비와 운영비를 모두 절감할 수 있다.

생산자 관점에서 협동 로봇은 산업용 로봇의 수요 기반을 한층 확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고 우려 때문에 로봇을 꺼리던 사용자, 로봇 전문가를 고용할 여력이 없는 자영업자, 로봇 전용 작업 공간을 마련하기 힘든 작은 공장을 가진 중소기업 등 기존 로봇으로는 대응할 수 없었던 잠재 수요에 대해 협동 로봇은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 로봇은 급격한 인건비 상승 문제를 겪거나 숙련된 노동력이 부족한 일부 신흥국, 자동화 수요는 크지만 비정형적이고 유형화·체계화돼 있지 않은 공정 때문에 로봇을 사용하지 못하는 여타 산업의 잠재 수요에도 부응할 수 있어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이처럼 협동 로봇은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매력적인 신제품이므로 향후 산업용 로봇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협동 로봇이 스마트 팩토리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로봇과 리싱크 로보틱스의 창업자인 로드니 브룩스 회장은 협동 로봇은 스마트 팩토리 도입을 원하는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동 로봇을 도입하면 전면적인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비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기존 공장의 스마트 팩토리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협동 로봇이 산업용 로봇 시장을 얼마나 변화시킬지는 로봇 산업계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박정원(왼쪽) 두산그룹 회장이 독일 뮌헨에서 6월 24일 열린 로봇·자동화 박람회 ‘오토매티카 2018’에서 두산로보틱스의 협동 로봇을 설명하고 있다.

한화테크윈의 산업용 협동 로봇‘HCR-5’.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8호(2018.09.03 ~ 2018.09.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