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 ‘새로운 금융 금맥’ 동남아 금융벨트를 가다③ NH농협은행]
-2016년 소액 대출 현지법인 설립…농업 대출 '애그리론' 인기

[한경비즈니스=양곤(미얀마)=정채희 기자] NH농협은행(이하 농협은행)은 해외 진출의 후발 주자다. 2012년 ‘신경분리’ 이후에야 해외 진출이 가능했다.

농협은행은 한국에서 쌓은 ‘농업 특화 서민금융’을 강점으로 살려 농업 비중이 높은 동남아 지역에서 앞서간다는 전략이다. 미얀마는 이러한 전략의 중심 국가다. 농협은행이 첫 해외법인을 세운 곳은 바로 미얀마다. 8월 17일 농협 최초의 해외 현지법인 ‘농협파이낸스미얀마’를 찾았다.

미얀마 농촌 파고드는 '농업금융'의 힘

◆최대 400명, 현지 고객으로 북새통

한바탕 퍼붓던 빗줄기가 그치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전 10시. 미얀마 양곤시 신시가지 핀론로드에 자리한 소액 대출 회사(MFI) 농협파이낸스미얀마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아이를 업은 여인부터 주름살 많은 지긋한 노인까지 미얀마 현지인들로 1층 객장이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졌다.

“오늘이 마침 대출 실행 날이에요. 우리 영업 사원들이 유치한 고객들이 대출금을 직접 받아가는 날이죠.” 김종희 농협파이낸스미얀마 법인장은 매주 금요일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라고 말했다. 소액 대출을 받으려고 적게는 100에서 많게는 400명이 몰려든다.

상업은행에서 일반 고객의 여수신 서비스가 가능한 한국과 달리 미얀마는 상업은행이 기업의 여수신 서비스를 맡고 MFI가 서민 대출을 담당한다. 은행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다 보니 돈 빌릴 곳이 없는 서민들을 위해 글로벌 비정부기구(NGO)가 MFI 형식으로 서민금융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MFI는 담보대출 없이 신용 대출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신용 보강 차원에서 연대보증을 받고 대출해 준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도 대출자 5명이 서로 보증(인적연대보증)하는 신용 대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이날 온 200여 명의 고객들은 시 외곽에 자리한 마을 주민들로, 대출을 희망하는 이들이 다섯 명씩 짝을 지어 방문했다. 지점 점포가 사라지고 비대면 채널이 대세가 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미얀마 농촌 파고드는 '농업금융'의 힘
본점 4층에서 대출 안내가 시작됐다. 현지 직원은 이자와 상환일, 그 외에 고객이 알아야 할 정보를 설명했다. 그의 옆 책상에는 고객의 사진과 신상 정보, 상환일 그리고 각자의 대출금이 담긴 문서가 5개씩 다발로 묶여 있었다. 김 법인장은 “5명이 상호 연대보증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봉투도 5개씩 묶여 있다”며 “1명이 갚지 못하면 나머지가 갚아야 하는 시스템이어서 미얀마의 연체율은 1% 미만으로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양곤시 외곽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이이레이(33) 씨는 연 30%가 넘는 고금리 때문에 대출은 생각지도 못하다가 지인의 소개를 받고 농협파이낸스미얀마를 찾았다. 이이레이 씨는 “대출금리 조건이 다른 곳보다 좋다”며 “직원도 친절하고 서비스도 더 낫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서민 대상 대출금리는 매우 높은 편이다. 일반 MFI의 금리는 연 30%(월 2.5%)이지만 사금융은 월 10%로 연 120%가 넘는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 역시 다른 MFI처럼 연 30%의 금리를 채택하고 있지만 농업 관련 대출은 24%로 우대하는 차별화 정책을 쓰고 있다. 강신우 농협파이낸스미얀마 부법인장은 “농협만의 특성을 살려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다”며 “특히 농업관련 대출은 ‘애그리론’이라고 해서 일반 금리보다 낮게 받고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농촌 파고드는 '농업금융'의 힘
◆농업 비율 36.1%, ‘농협금융’ 잠재력 충분

농협은행의 미얀마 진출은 2016년에 이뤄졌다. 농협은 2012년 3월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으로 분할해 지금의 1중앙회·2지주사(경제·금융) 체제로 바뀐 후에야 해외 지점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후발 주자여서 시장 개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농협은행은 ‘농협’만의 강점이 통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장소 선정에 공을 들였다.

“이미 다른 금융사들이 여럿 진출해 포화 상태인 나라가 많았어요. 여러 곳을 물색하다가 금융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높고 진입 장벽도 낮았던 미얀마를 선택했습니다.” 강신우 부법인장은 “농업 국가라는 점에서 농협은행의 정체성에도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미얀마는 서비스업(41.6%) 다음으로 농업(36.1%)의 비율이 높은 나라다. 해외시장 개척이란 미션을 가진 농협은행이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인 셈이다. 금융 산업의 성장 가능성도 높았다. 인구수 5148만 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 1374달러, 실질경제성장률 6.7%로 성장 잠재력도 충분했다.
미얀마 농촌 파고드는 '농업금융'의 힘
사업 모델로는 MFI를 선택했다. 시장 진입이 쉬운 서민 대상 소액금융 사업으로 농업금융의 강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다. 강 부법인장은 “미얀마는 금융회사 이용률이 매우 낮은 편인데다 실질적인 서민금융회사 역할을 MFI가 하고 있었다”며 “앞으로 MFI의 성장 여력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기준으로 미얀마 MFI 고객 수는 346만 명(추정치), 전체 인구의 약 4.3% 수준이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는 2016년 12월 문을 열고 이듬해 1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영업 시작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첫 대출이 이뤄졌다. 미얀마 내 MFI 수는 170여 개, 이 중 한국계 금융회사가 11개에 달한다.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본 국내외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미얀마에 둥지를 틀었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는 후발 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공격적인 영업을 이어 갔다. 농업 관련 대출에 한해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서비스 혜택을 늘렸다. 또 채널 확장 전략을 통해 소액 대출 시장에서 영토를 빠르게 늘렸다. 현재 양곤 주(웻)에만 9개 지점이 영업 중이다.

현재 직원 수는 181명인데 김 법인장과 강 부법인장을 제외한 179명 모두가 현지인이다. 김 법인장은 “영업이 현지인 대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모두 미얀마 사람들로 구성했다”며 “대출 후 사후 점검 서비스(해피콜) 등 한국식 고객 존중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農心)’을 잡으면서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본점 1곳에서만 1주에 많게는 400여 명의 고객들이 농협파이낸스미얀마를 찾고 있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의 7월 말 기준 고객 수는 3만4200명, 대출 잔액은 71억4000차트(한화 약 56억원)다. 건당 대출 금액은 30만~50만원으로 소액이다.

◆올해 흑자 전환 예상…지점망도 늘려

영업 2년 차에 들어선 농협파이낸스미얀마의 올해 목표는 ‘흑자 전환’이다. 강 부법인장은 “지난 5월부터 월간 단위로 이익이 나기 시작했다”며 “올해 9월 말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파이낸스미얀마는 농협만의 차별화 전략을 바탕으로 미얀마 농업 금융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다. 주요 전략은 두 가지다. 먼저 농기계 할부금융 등의 특화 상품 출시다.

김 법인장은 “농협에는 농우바이오$농협사료$농협케미컬과 같은 농업 관련 계열사들이 많다”며 “향후 계열사들과 협의해 미얀마의 농업 성장을 발전시키고 우리도 성장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네트워크도 강화할 계획이다. 미얀마의 경제 중심지인 양곤 주를 넘어 에야와디 주로 지점망을 확장한다. 올해 에야와디 주에 모두 5개 지점이 문을 연다. 중$장기적인 목표는 전국망 구축이다.

‘농협’ 특유의 사명감도 있다. 한국에서 다진 ‘농업금융’을 토대로 미얀마의 성장에 일조한다는 포부다. 김 법인장은 “1961년에 설립된 농협은 한국의 고리채 개선과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여해 왔다”며 “한국에서 쌓아 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얀마의 금융 환경과 농업 생산성에 기여하며 상생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농촌 파고드는 '농업금융'의 힘
(약력) 1970년생. 경기대 경영학과 졸업. 카이스트 경영대 금융공학 MBA 졸업. 1998년 농협중앙회 입사. 2006년 농협은행 자금운용부 근무. 2011년 농협은행 자금부 근무. 2016년 농협파이낸스미얀마 법인장(현). /사진=정채희 기자

◆[인터뷰] 김종희 농협파이낸스미얀마 법인장

농협은행 최초의 해외법인을 이끄는 선봉장은 김종희 농협파이낸스미얀마 법인장이다. 김 법인장은 1998년 농협중앙회에 입사 후 농협은행 자금운용부와 자금부를 거친 그룹 내 대표적인 ‘재무통’이다. 2016년 현지법인 설립부터 2018년 흑자 전환 추진까지 농협파이낸스미얀마를 성공으로 이끌고 있다. 8월 17일 현지 본점에서 김 법인장을 만나 초대 현지법인장으로서의 전략과 뒷이야기에 대해 들었다.

-시스템이 독특하다.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금융 산업은 한국의 1970년대 수준이다. 영업 사원이 마을에 가서 우리 회사를 소개하고 대출 상품은 무엇이며 이자율과 상환 절차 등을 설명하면 마을 주민들 중 대출을 희망하는 이들이 서로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모아 신용 대출로 대출을 받는 식이다. 우리에게는 낯선 옛 모습이다.”

-리스크는 없나.

“미얀마는 은행과 달리 소액 대출 회사(MFI)에 따르는 규제가 많지 않은 편이다. 은행은 외국계 은행이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만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영업 범위를 축소했지만 MFI는 로컬과 외국계 금융사 간 차별하는 부분이 없다. 서민금융회사가 없어 미얀마 정부에서도 MFI 시장을 좀 더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대출 한도는 1인당 1000만 차트로 정해져 있다. 또 영업 구역 허가나 지점 신청 허가가 조금 더 까다로워지고 있는 것 같다.”

-현지 영업이 힘들지 않나.

“속도를 맞추는 게 가장 힘들었다. 미얀마는 연방공화국으로 허가 받은 영업 구역에서만 영업이 가능한데 주의 허가를 받고 또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중앙정부 회의가 원래대로라면 2개월에 한 번씩 열려야 하지만 어떤 때에는 4개월, 6개월에 한 번씩 열려 그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당초 법인의 계획대로라면 이미 올해 초 에야와디 주에 지점을 신규 개설해 영업을 시작해야 했지만 하반기로 미뤄지게 됐다. 법 시행령도 체계적이지 않다. 문서 하나로 시스템이 바뀐다. 그렇다 보니 공무원도 모르고 법무법인도 모르는 일이 부지기수다. 하나하나 물어보고 크로스 체크해 처리해야 한다.”

-모바일을 활용한 핀테크는 시기상조인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아직까지는 리스크가 굉장히 크다. 모바일로 소액 대출 영업을 한다면 신용 평가가 중요한데, 미얀마는 아직 신용 평가 회사가 없고 신용 조회 시스템도 없다.”

-은행 전환 계획은 없나.

“상업은행과 MFI를 감독하는 중앙 기관이 다르다. 따라서 은행으로 전환하는 것은 현 상태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아직까지 미얀마에서는 외국계 기업이 은행업으로 영업하기에 썩 좋은 환경이 아니다. 규제가 풀리면 검토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 고려 단계가 아니다.”

-MFI 인수$합병(M&A) 계획은 없나.

“아직 미얀마 법체계가 M&A에 대한 규정들이 명확하게 준비돼 있지 않아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모든 시장이 다 그렇듯이 미얀마 내 MFI 역시 큰 곳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우리도 열심히 사업을 키울 것이다.”

-최근 캄보디아에 농협은행 현지법인 2호가 탄생했다.

“최초의 해외법인으로서 모범적인 해외 사례가 될 수 있도록 사업과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게 우리의 일차적인 과제다. 9월 12일 농협은행이 캄보디아 프놈펜에 현지 해외법인인 ‘농협파이낸스캄보디아’를 공식 출범했는데, 미얀마에서의 경험들이 프놈펜 현지법인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poof34@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1호(2018.09.17 ~ 2018.09.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