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금리 인상’ vs ‘동결’ 놓고 주장 엇갈려…재정정책과 보조 맞춰 결정해야
자본 이탈에 시달리는 신흥국…기로에 선 한국은행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약 10년이 됐다. 1980년대 후반 블랙 먼데이(선진국 주식시장),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신흥국 통화시장), 2000년대 후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선진국 주택시장)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2010년대 후반 금융 위기 후보지로 신흥국 상품 시장이 지목돼 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이후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에 이어 이란·터키 등 중동 국가들이 잇달아 외자 이탈에 시달리면서 금융 위기 조짐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상황이 점차 악화되는 분위기다. 이들 국가 모두 상품 가격에 민감한 신흥국이다.


◆금리에 의존하는 대응법이 문제

지난 10년간 늘어난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시기에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이들 국가가 위기를 겪는 가장 큰 요인이다. 금리 차와 환차익을 겨냥해 움직이는 캐리 자금도 네거티브 트레이드 여건이 형성돼 달러계 자금을 중심으로 외자 이탈이 가세되고 있다.

신흥국의 미숙한 정책 대응도 문제다. 외자 이탈을 수반한 달러 부채 상환에 가장 적절한 대응책은 외화 보유 확충과 외자 조달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지난 3월 이후 금융 위기 조짐이 발생하거나 발생한 대부분의 신흥국은 금리 인상으로 대처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정책(기준)금리를 60%까지 올렸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외면한 대증적인 금리 인상은 실물 경기 침체와 추가 외자 이탈 간 ‘악순환 고리(vicious cycle)’를 형성시킨다. 20년 전 태국·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가 겪었던 외환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일부 신흥국은 이런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 예의 주시해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은 올해 안에 2000억 달러, 내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4000억 달러 이상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온다. 지난 3월과 6월 회의에서 두 차례 금리를 올린 Fed는 9월과 12월 회의에서 추가적으로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 외화 사정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대발산(GD : Great Divergence)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GD가 일어났던 1994년 이후 상황을 보면 독일 분데스방크(유럽중앙은행이 창립 전에는 유럽통화정책의 중심 역할)는 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당시 미국 경제도 견실했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테넷을 비롯한 정보기술(IT)이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 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달러 강세 시대가 전개됐다.

결국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 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 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발생(‘그린스펀 쇼크’라고 부른다)했다. 미국과 다른 국가 간 금리 차가 벌어지고 감세와 리쇼링 정책으로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구가하는 지금 상황과 비슷하다.

7월 말을 기준으로 IMF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지표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이 활용하는 외환상환계수로 신흥국 금융 위기 가능성을 점검해 보면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터키·파키스탄·이란·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높게 나온다. 브라질·인도네시아·멕시코·필리핀·스리랑카·방글라데시 등은 그다음 위험 국이다.


◆‘물가와 고용’ 항상 염두에 둬야

고위험 국가로 분류되는 중남미 국가들은 외채 위기로 학습 효과가 있는데다 미국과의 관계(베네수엘라 제외)도 비교적 괜찮다. 하지만 이란·터키 등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거나 협조하지 않는 국가들과 중국 편향적인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은 IMF의 구제금융 수혈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IMF의 최대 의결권을 미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흥국의 금융 위기가 지속되면서 한국도 금리 인상 문제를 놓고 그 어느 때보다 논쟁이 치열하다. 7월 금융통화회의 이후 일부 금통위 위원을 중심으로 금리 인상 필요성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비슷한 뉘앙스를 비추고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금리 인상 논쟁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 인상’과 ‘동결’을 주장하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금리 인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시각의 가장 큰 이유는 ‘외자 이탈 방지’다. 인상론자들은 한국과 미국 간 금리가 0.5%포인트 역전된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올해 안에 최대 1%포인트까지 벌어져 대규모 외자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해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1년 이상 추진해 왔지만 오히려 무너진 중산층까지 합류돼 더 두터워진 하위 계층일수록 가계 부채 부담이 크다. 이 상황에서 금리마저 올리면 거리로 내몰리는 신용 불량자가 외환 위기 때보다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목표에 충실하는 것이다. 명시 여부와 관계없이 각국 중앙은행 목표는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물가가 지속적으로 안정됨에 따라 고용 창출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경제성장·물가·고용·국제수지 등 4대 거시경제 분야 가운데 한국 경제는 고용 분야가 가장 좋지 않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신경을 쓰는 청년 일자리는 최악의 상황이다. 엄격한 실업률 개념을 적용하는 국제노동기구(ILO) 방식으로 재산출된 청년 실업률은 20%에 육박한다. 스페인과 맞먹는 수준이다.

외자 이탈 방지를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각도 이 점을 따져봐야 한다. 신흥국 금융 위기 사례를 보면 외자 이탈 방지의 최선책은 ‘금리 인상’보다 ‘외화 보유를 충분히 확보하는 방안’이다. 연구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외화보유액이 10억 달러 증가하면 신흥국이 위기를 겪을 확률이 평균 50bp(1bp=0.01%포인트)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처럼 외자 이탈에 따른 방어 능력이 갖춰진 여건에서 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고용 창출에 최우선순위를 둬 추진하고 있는 재정정책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스태프와 라인 간 갈등이 경기에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까지 엇박자가 나면 한국 경제는 ‘총체적 난국’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9호(2018.09.10 ~ 2018.09.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