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적 SNS 한 줄에 생존까지 위협…전문가들 “대응 방식 바꿔야”
점점 대담해지는 ‘블랙 컨슈머’...기업·자영업자의 눈물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영역에서 사업을 하는 업체들이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가장 고민하는 것은 바로 ‘고객’이다. 작은 불편에 대한 목소리도 귀담아듣고 즉시 개선해야 고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고객을 모신다’라는 표현에서도 나타나듯이 고객을 왕처럼 대우하지 않는 곳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이를 악용한 소비자, 이른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갈수록 노골적이면서 대담해지는 블랙 컨슈머의 횡포에 업체들은 규모에 관계없이 골머리를 심하게 앓는다. 특히 이들 때문에 실제로 피해를 보고도 블랙 컨슈머로 몰리는 선의의 피해자들까지 발생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전엔 ‘내가 누군지 알아’였다면 요즘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나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는 말이 가장 무섭죠.” 한 식품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블랙 컨슈머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빠르게 정보가 확산되는 시대여서 더욱 대응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SNS나 인터넷 카페 등에 한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좋지 않은 얘기가 돌기라도 하면 해당 업체는 비상이 걸린다. 해명할 겨를도 없이 정보는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나쁜 소문에 기업 이미지가 추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상황이 이러니 기업들은 최대한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갈수록 대범해지는 요구와 수법

블랙 컨슈머는 이런 사실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갈수록 황당하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례들이 늘어나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의류 매장 업체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한 고객이 한 달 전 구매한 재킷이 작다며 교환을 요구했다. 사용한 흔적도 있고 구매한 시점도 오래돼 교환하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매장 내에서 고성을 지르며 영업에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결국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고객은 다시 한 달 정도 후 매장을 찾아와 이번에는 사이즈가 크다며 아예 환불해 달라고 떼를 썼다. 참다 못한 업체 측은 결국 소비자분쟁조정원에 심의를 넣겠다고 말하자 그제야 고객은 제품을 들고 매장을 떠났다.

한 대형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A 씨가 최근 접수한 블랙 컨슈머 피해 사례는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백화점에서 신발을 구매한 한 30대 여성 고객의 얘기다. 이 여성은 신발을 구매한 매장을 찾아와 한 달 만에 멀쩡했던 허리에 디스크가 생겼다며 환불해 달라고 했다. 게다가 건강 악화로 정신적인 피해까지 생겼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장 직원이 신발 상태를 수차례 확인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고 하자 고객이 계속 신발 때문에 병이 생겼고 회사 생활에도 악영향을 줬다며 매장에서 고성과 울음 터뜨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결국 매장 직원은 정확히 진료 받고 문제를 파악한 뒤 보상할 테니 함께 병원에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여성 고객의 태도가 갑자기 싹 바뀌었다.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홀연히 매장을 떠났다. 다행히(?) 그 여성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전직 백화점 매장 관리 직원인 B 씨에 따르면 이 정도는 ‘양반’에 속한다. B 씨는 “상당수의 블랙 컨슈머들은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결국 ‘교통비’ 명목의 금전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1만원 정도의 상품권이나 현금을 쥐여 주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설명했다.

블랙 컨슈머로부터 안전한 ‘무풍지대’는 사실상 없다. 소비자와 맞닿아 있는 영역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대전화나 TV를 만드는 제조업은 물론 항공업계에도 블랙 컨슈머는 골칫거리다.

이에 따라 야기되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업체들은 ‘생산성 저하’가 가장 큰 문제라고 꼽는다. “온갖 불편한 언행을 들으면서 교환·수리·환불을 요구하는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그날 하루 일할 욕구도 안 생기고 기운이 빠지기 마련이죠. 일할 맛이 안 납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당한 소비자도 자칫하면 오해받아

서비스나 상품에 문제가 있어 실제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도 자칫 블랙 컨슈머로 오해받을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삼성전자의 사례를 예로 들 수 있다. 배터리 문제가 불거지며 2016년 갤럭시 노트7 리콜을 발표한 뒤 보상을 노린 블랙 컨슈머들이 활개를 쳤다.

전자레인지에 스마트폰을 넣은 뒤 스마트폰이 폭발됐다며 시위한 이도 등장해 실제 피해를 본 고객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특히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블랙 컨슈머로 인해 입는 피해가 더욱 심각할 수 있어 우려된다. 나쁜 소문 하나에도 회사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점점 대담해지는 ‘블랙 컨슈머’...기업·자영업자의 눈물
블랙 컨슈머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최근 한 케이크 업체에서 이 같은 사례로 들 수 일이 일어났다. 한 소비자가 대형 백화점 내 입점한 업체에서 케이크를 구매했는데 애벌레 형태의 이물질이 나온 것이다.

즉시 해당 구매처를 찾아가 따졌지만 업체로부터 “해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 분개한 소비자는 이를 일부 언론에 알렸다. 결국 사건은 온라인으로 퍼졌고 업체 이름까지 공개됐다. 백화점 측은 관련 케이크 제품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추후 전문 분석업체에서 확인한 결과 해당 물질은 벌레가 아니었다. 케이크 재료 일부가 뭉쳐 애벌레 모양을 한 것이었다.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해당 업체의 매출은 타격을 입었고 이미지 또한 나빠졌다.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어 블랙 컨슈머가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규모가 작은 업체에서는 이를 수용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대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자체적인 응대 시스템을 구축하며 블랙 컨슈머에 대응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빤한 거짓말로 억지 주장을 펼치면 처벌이 가능하지만 많은 블랙 컨슈머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요. 따라서 과장을 섞어 피해를 봤다며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온라인에 부정적인 글을 올리죠. 이것이 바로 기업이 블랙 컨슈머를 대하기 가장 어려운 원인이에요. 발생한 사건에 대한 ‘명백한 허위’를 입증해야 하는데 과장이 들어갔을 경우 이것이 쉽지 않아요. 또 단순히 과장 정도에 불과하면 죄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권성은 법무법인 전문 변호사의 진단이다.

가령 과장된 사실이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이후 상황은 쉽지 않다. 블랙 컨슈머에게 배상 받기 위해선 손해액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 또한 어려운 실정이다.

권 변호사는 “블랙 컨슈머로 인해 회사나 업체가 입은 손해가 얼마인지 정확히 계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블랙 컨슈머가 악성 민원을 제기해도 무마하려는 곳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블랙 컨슈머들은 앞으로 더욱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그 수가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점차 고객 서비스를 중시하면서 교환이나 환불에 대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들어주는 추세”라며 “이런 상황을 악용한 블랙 컨슈머들의 무리한 요구나 폭언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라인에서 무용담처럼 퍼지고 있는 각종 후기들도 새로운 블랙 컨슈머를 만들어 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간단한 검색만 해도 고장 난 스마트폰을 무상으로 수리했거나 특정 업체의 상품을 교환한 경험을 쓴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확인되지 않은 후기들을 검색하고 찾아와 ‘왜 나는 안 해주느냐’는 식의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고객 만족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돼”

블랙 컨슈머를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마냥 두고 볼 수만도 없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업체들 역시 대응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블랙 컨슈머 이렇게 대응하라’의 저자이기도 한 박종태 한국감정노동인증원 원장은 다양한 기업들을 방문하며 감정노동자 문제와 관련한 강연을 펼치고 있다.

그는 자연스럽게 업체별로 마련된 블랙 컨슈머 관련 가이드라인을 접할 기회가 많다. 이를 보며 그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업체들이 고객 만족(CS)의 관점에서 블랙 컨슈머에 접근하는 부분이다.

박 원장은 “고객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저자세로 블랙 컨슈머들을 대하고 있다”며 “그러면 잘못된 시그널을 전달해 사태가 더욱 커지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가령 블랙 컨슈머가 매장 직원에게 “당신이라면 어떡할 거야”라고 다그치면 매장 직원들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라는 답변을 하기 마련이다. 이런 말을 하면 블랙 컨슈머들은 결국 나한테 보상해 준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직원을 더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점점 대담해지는 ‘블랙 컨슈머’...기업·자영업자의 눈물
물론 기업들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악성 민원이 접수됐을 때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부터가 모호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박 원장은 “내부적으로도 그간 벌어진 다양한 사건들을 모으고 체계화해 블랙 컨슈머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비스 통일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나쁜 목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의도가 아니었지만 업체 간의 서비스 격차로 블랙 컨슈머로 변질되는 경우도 많다”고 강조했다.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교환이나 환불에 대해 특별한 이유 없이 허용하지 않는 업체들이 상당수라는 얘기다.

허 교수는 “당연히 다른 곳에서는 해주는데 왜 여기서는 안 해주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며 “이런 업체들은 내부 방침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선량한 소비자들이 블랙 컨슈머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돋보기


블랙 컨슈머는 생산·유통업체들의 제품에 대한 악성 민원을 제기하며 반품이나 고발, 무리한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는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소비자를 지칭한다.

그런데 블랙(black)과 소비자(consumer)가 더해져 만들어진 블랙 컨슈머란 단어는 사실 한국에서만 쓰이는 단어다. 아무 생각 없이 이 단어를 외국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힐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비윤리적 소비자(unethical consumer)’, 또는 ‘나쁜 소비자(bad consumer)’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들이 지적돼 아예 블랙 컨슈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다만 일부 업계와 공공기관 등에서는 블랙 컨슈머라는 표현을 되도록 지양하고 있다. ‘악성민원인’, ‘문제행동 소비자’와 같은 우리말로 순화된 단어들을 대신 사용하는 곳들도 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