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미·중 갈등 이어지면서 ‘세계 가치사슬’ 약화…유럽도 통합에서 분열로 전환
2018년 ‘빅 체인지’ 일어난 세계 경제·금융 시장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매년 이맘때면 으레 쓰는 용어이긴 하지만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무술년 한 해도 마무리돼 간다. 한마디로 모든 분야에 걸쳐 ‘큰 변화(big change)’가 일어난 해다.

각국 간 틈이 벌어진 상황에서 세계경제 양 대국 간 갈등이 지속됐다. 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최고통수권자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등 통화정책 수장도 교체됐다.

◆금융시장 폭락 맞은 중국

경제 분야에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2009년 2분기부터 지속돼 온 세계 경기 회복세가 꺾이기 시작한 점을 들 수 있다. 미·중 간 통상 마찰이 2년 가깝게 지속되면서 세계 가치사슬(GVC)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주요인이다. GVC는 ‘기업 간 무역(Inter Firm Trade)’과 ‘기업 내 무역(Intra Firm Trade)’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한다.

GVC 약화 현상은 세계경제 앞날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1990년대 이후 세계 교역 증가율과 GVC 간 상관계수를 추정해 보면 0.85에 이를 만큼 높다. 특히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교역 탄성치(세계교역증가율÷세계경제성장률)에서 GVC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이후 10년 동안 지속돼 왔던 세계 경기 장기 호황 국면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은행·국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통화기금(IMF) 등 세계 3대 예측 기관은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글로벌 증시가 추세적으로 하락 국면으로 돌아서고 있다.

미·중 마찰의 주범인 당사국도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의 성장 국면이 기대됐던 미국 경제는 다음 회복국면으로 미루거나 영원히 기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분기 4.2%를 정점으로 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국과의 통상 마찰이 길어지면서 미국 경제도 부메랑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경제가 문제다. 올 들어 상하이지수는 30% 가깝게 급락했다. 지난 2월 초 달러당 6.2위안대까지 올라갔던 위안화 가치가 연말을 앞두고 6.9위안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상반기 성장률 목표(6.5~7%)를 지켰던 실물 경기도 4분기에는 6.2%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만큼 심상치 않다.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 금융 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유럽도 ‘통합’보다 ‘균열’이 더 심해진 한 해다. 한동안 잠잠했던 이탈리아가 예산안을 놓고 유럽연합(EU)과 조정에 실패함에 따라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데자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길게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통합의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지 않을까 우려가 확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로 위기 1.0’에 이어 ‘유로 위기 2.0’이다.

EU와 유로 랜드는 초기에 각국 7개국, 11개국으로 출발해 그동안 ‘확대(enlargement)’ 단계를 거쳐 현재 28개국(영국 탈퇴 때 27개국), 19개국 체제로 확립됐다. 하지만 2년 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시작으로 작년에는 극우 세력, 지난 3월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약진하면서 균열 조짐이 지속되고 있다.

EU집행위원회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를 종합해 보면 회원국은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보다 유럽 통합 앞날과 EU, 유로 랜드 존속 여부에 대해 더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회원국별로는 핵심국(good apples)보다 비핵심국(bad apples) 국민일수록 더 비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흥국, 진짜 위기는 내년 될 수도

신흥국의 금융 위기 조짐도 올해를 정리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1980년대 후반 선진국 주식시장(블랙 먼데이), 1990년대 후반 신흥국 통화 시장(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대 후반 선진국 주택 시장(서브 파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2010년대 후반에는 금융 위기 후보지로 신흥국 상품 시장이 지목돼 왔다.

지난 3월 이후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에 이어 이란·터키 등 중동 국가가 잇달아 외자 이탈에 시달리면서 재현되고 있는 금융 위기 조짐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내년을 앞두고 아르헨티나에 이어 파키스탄이 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오히려 악화되는 분위기다. 모두 상품 가격에 민감한 신흥국이다.

지난 10년 동안 늘어난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시기에 Fed의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금리 차와 환차익을 겨냥해 이동되는 캐리 자금도 네거티브 트레이드 여건이 형성돼 달러계 자금을 중심으로 외자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다.

신흥국의 미숙한 정책 대응도 문제다. 외자 이탈을 수반한 달러 부채 상환에 가장 적절한 대책은 외환 보유 확충과 외자 조달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지난 3월 이후 금융 위기 조짐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신흥국은 금리 인상으로 대처해 오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정책(기준)금리를 60%까지 올렸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외면한 금리 인상은 실물 경기 침체와 추가 외자 이탈 간 ‘악순환 고리(vicious cycle)’를 형성시킨다. 20년 전 태국과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배경이다. 벌써 일부 신흥국은 이런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 예의 주시해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은 내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4000억 달러 이상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올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세 차례 금리를 올린 Fed가 올해 마지막 12월 회의에서 금리를 올린 후 내년에도 세 차례 정도 금리를 더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의 외화 사정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신흥국에서 과연 금융 위기가 발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이 활용하는 외환 상환계수 등으로 신흥국 금융 위기 가능성을 점검해 보면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터키·파키스탄·이란·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높게 나온다. 브라질·인도네시아·멕시코·필리핀·스리랑카·방글라데시 등은 그다음 위험국이다.

금융 위기 발생 고위험국으로 분류되는 중남미 국가는 외채 위기로 학습 효과가 있는데다 미국과의 관계(베네수엘라 제외)도 괜찮다. 하지만 이란처럼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거나 중국의 일대일로(신실크로드 전략) 계획에 과도하게 참여하는 파키스탄 등과 같은 국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더라도 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IMF의 최대 의결권을 미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4호(2018.12.24 ~ 2018.12.3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