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Y축으로의 분석은 ‘분류’일 뿐…경쟁자가 모르는 ‘새로운 변수’를 찾아야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경영학 책에는 두개의 기준으로 X축과 Y축을 만들어 현상을 분석하는 ‘2×2 차트’가 많이 나온다. 사업의 성장성과 경쟁력을 기준으로 여러 사업을 비교해 보는 ‘BCG 매트릭스’가 대표적이다.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사업이 준비돼 있는지, 돈을 벌고 있는 기존 사업들로 이런 미래 사업을 어떻게 뒷받침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는 방법이다.
하지만 경영학 기법이 다 그렇듯이 간단한 차트의 뒤에는 매우 민감한 가정들이 숨어 있다. 잘못 사용하면 독(毒)이 돼 버린다. 성장률이나 사업 규모만 보고 회사의 핵심적 가치를 담고 있는 사업을 소홀히 해 다른 사업까지 망가뜨리기도 하고 사업의 성장 전망이나 경쟁력을 잘못 이해해 엉뚱한 결론을 내릴 때도 있다.
◆‘BCG 매트릭스’에 숨은 가정들 은 전략 경영 관련 컨설팅 보고서에서 흔히 쓰이는 BCG 매트릭스다. 회사가 가진 여러 사업을 성장률과 상대 시장점유율의 두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다. 성장률은 낮아졌지만 현재 시장에서의 경쟁 입지가 여전히 좋아 돈을 벌어주고 있는 사업부(캐시카우)의 힘을 바탕으로 성장률은 높지만 아직 시장 입지가 약한 사업부(퀘스천 마크)를 키워 보자는 생각이 담겨 있다.
회사의 모든 사업이 성장률이 높고 시장 입지도 좋은 스타들만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경쟁자가 나오거나 새로운 사업 모델이 생겨 시장 입지가 위축될 수 있다. 사업이 속한 산업이나 부문이 진부해져 성장률이 낮아질 수도 있다. 따라서 성장률과 시장 입지가 좋지 않은 사업부가 되면 해당 사업을 정리하거나 다른 회사에 매각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다양한 사업 사이의 균형을 살펴보고 미래를 위한 자원 배분을 구상해 보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50년 가까이 꾸준히 쓰이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특정 사업부의 성장률은 연 5%인데 관련 업계의 성장률은 10%라면 어느 쪽을 기준으로 잡아야 할까. 업계의 성장률을 기준으로 삼고 해당 사업부가 저조한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반대로 해당 사업부가 나름의 독창적 사업 모델로 업계 전반보다 훨씬 높은 성장률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면 일단 사업부의 성장률을 기준으로 잡아 다른 사업부와 비교하고 그 지속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 해당 사업부의 성장률과 업계 전반의 성장률을 같이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상대 시장점유율은 해당 사업부의 ‘상대적 경쟁력’을 측정해 본 지표의 하나일 뿐이고 사실은 경쟁력이 아니라 사업 모델과 전략의 차이가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A 회사의 제품이 1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해보자. 90% 점유율의 사업자에게 눌려 사는 10% 사업자일 수도 있지만 최고급 명품의 지위를 위해 시장 노출을 제한하는 희소성 마케팅을 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같은 10%라고 해도 90%의 사업자에게 밀리고 있을 때와 무수히 많은 1%대 점유율의 사업자들에 비해 월등한 입지를 가졌다면 상황이 다르다. 따라서 주로 2위 사업자와 비교한 상대 시장점유율을 계산하는데, 이런 상대평가 지표를 숫자만 놓고 해석하면 엉뚱한 결론을 내기 쉽다.
BCG 매트릭스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률이 높아졌다가 낮아져 정체기에 이른다는 ‘제품 수명 주기’의 가정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사업 초기에 성장률이 낮았다고 해서 시간이 흐를수록 무작정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성장률이 높다고 해서 곧 정체기가 온다고 할 수도 없다.
현실에서는 안정적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는 사업도 있고 사업 모델을 적절히 진화시켜 오히려 다시 회춘하는 사례도 있다.
사업의 다양한 측면을 성장성과 경쟁력 2개의 기준으로만 분류하는 것이 간결하고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무수히 많은 중요한 요인을 생각에서 배제하는 면이 있다. 성장성과 경쟁력 두 개를 보더라도 그 측정 지표의 속사정을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하면 엉뚱한 결론을 내기 십상이다. 결국 경영 기법은 사업의 구체적 현실을 알지 못하고 책에서 본 그대로 흉내만 내서는 사업을 망치게 된다.
◆새로운 변수를 찾는 매트릭스 분석 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 스포츠 용품 회사가 보유한 여러 사업부들의 성장률과 경쟁 입지(상대 시장점유율)를 BCG 매트릭스를 이용해 분석해 본 결과다. 원의 크기는 각 해당 사업부의 매출 규모를 의미한다.
이 회사에서 가장 큰 매출 규모를 유지하면서 안정적 성장률과 경쟁 입지를 갖고 있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입는 티셔츠나 운동화 등을 다루는 ‘라이프스타일’ 부문이다. 반면 실제 스포츠 경기나 훈련에 사용하는 운동 용품이나 의류·신발을 판매하는 ‘하드코어 스포츠 용품’ 부문은 성장률이 정체됐고 매출 규모도 예전처럼 크지 않다.
더구나 회사는 골프 용품과 의류의 성장을 기대하고 유명 골프 선수를 모델로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의 관점에서 이 회사의 경영전략은 나름 합리적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많은매출을 기록하는 라이프스타일 부문의 요구가 광고나 판촉 프로그램에도 더 강하게 반영되고 스포츠 이벤트나 스포츠 스타에 대한 후원 계약과 광고는 그 비중이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 오류가 숨어 있다. BCG 매트릭스에는 사업들 사이의 연결 관계가 반영돼 있지 않다.
라이프스타일 부문의 안정적 성장률과 경쟁 입지는 사실 하드코어 스포츠 용품의 브랜드 정체성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체성이 약해지면 이 회사의 티셔츠나 운동화는 거리 패션에서 흔히 쓰이는 평범한 옷이나 신발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영악한 경쟁자가 그 틈을 파고들어 하드코어 스포츠 용품의 입지를 허물어뜨리면 회사는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을 잃고 나아가 돈이 되는 라이프스타일 부문의 입지도 잃게 된다. 이는 세계 스포츠 용품과 의류의 경쟁 구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의 양상이다. 핵심 역량을 이루는 ‘코어 제품’의 입지에 타격을 입는 셈이다.
현실의 경영에서 높은 성장률과 시장 입지를 가진 라이프스타일 사업부에게 그 성과가 브랜드 정체성과 코어 제품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경영자들이 일정한 임기 동안 최대의 성과를 내 자기 몸값과 성과 보수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사를 옮겨 다니는 상황에서 라이프스타일 담당자가 선뜻 양보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최고경영자(CEO)로서는 이런 사업부문 사이의 연결 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설득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사업 전반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내부의 정치적 관계 때문에 쉽게 되돌릴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반대로 브랜드 정체성, 혹은 코어 제품의 입지가 너무 강해 실제로 경쟁력을 상실했거나 관련 사업에 주는 가치가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자원을 투입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른바 ‘퇴출 장벽’이 생기는 것인데, 역시 CEO의 면밀한 분석과 결단·설득이 필요한 부분이다.
두 개의 변수를 정해 X축과 Y축으로 삼고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요즘에는 초등학교 수학책에도 나오지만 수학적으로나 현실 경영의 해석에서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수학책에 나오는 X축과 Y축은 서로 직각으로 교차되는데, 두 개의 축을 구성하는 변수가 서로 독립적이라는 가정을 담고 있다. 만약 X축과 Y축을 구성하는 변수들이 독립적이지 않고 극단적으로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면, 쉽게 말해 지능과 IQ처럼 거의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했다면 두 개의 변수 혹은 축은 사실 하나에 불과하게 된다.
또한 비교적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면 어떻게 될까. BCG 매트릭스와 같이 2개의 축으로 4개의 분면을 나누는 일은 의미가 없게 된다. 상관관계 때문에 2개의 분면으로 측정치가 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의 나이를 X축, 키를 Y축으로 삼아 4개의 분면을 나누면 ‘학년이 높으면 키가 크다’는 상관관계는 볼 수 있지만 분류 자체의 의미는 떨어지게 된다.
경영학 책에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은 변수들을 놓고 함부로 ‘2×2 매트릭스’를 그리는 사례가 많다. 개인의 관계 지향적 성향과 과업 지향적 성향을 두 개의 축으로 놓고 유형 분류를 하는 것이다. 만약 관계 지향성이 과업 지향성에 영향을 줄 수 있거나 인간관계 능력 등 다른 변수가 이들 두 변수를 함께 지배한다면 이런 분류는 무의미해진다.
BCG 매트릭스에서 다루는 ‘성장률과 경쟁 입지’는 비교적 독립성이 담보되는 것이지만 일부 교과서나 인터넷 정보에 나오는 것처럼 상대 시장점유율이 아닌 일반적 점유율 통계를 사용하면 해당 사업부의 성장률과 같은 추세를 보일 수도 있다. 이때는 분류가 아닌 상관 분석이 되므로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에 적합하지 않다.
경영전략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렇게 남들 다 아는 변수로 해보는 ‘분류 작업’이 아니라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변수’를 찾아 분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음반 제작자는 가수를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고 전략을 마련할까. 1980년대 말까지 업계는 노래 실력과 외모를 기준으로 가수를 선발해 대중에게 ‘잘난 가수의 좋은 노래’로 마케팅을 폈다. 훌륭한 외모에 나름 그럴듯한 학력이나 배경을 더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 우스꽝스러운 외모에 신나고 재미있는(그러나 절대 훌륭하지 않은) 노래를 하는 ‘이박사’ 등의 가수가 성공하더니 한때 청순 여배우 고(故) 김자옥 씨가 코믹한 캐릭터로 나와 재미있는 노래를 해 히트를 쳤다. 남들 다 생각하는 노래 실력과 외모가 아닌 재미라는 새로운 변수를 찾아낸 것이다.
◆신사업을 위한 지원, 타당한가?
BCG 매트릭스는 여러 개의 사업부를 성장률과 경쟁 입지를 기준으로 분류해 미래에도 꾸준한 성장이 가능할지 살펴본다. 나아가 미래의 성장을 담보할 사업에 자원을 배분하는데 사용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근본적 질문이 나온다. 지금 성장률이 높다고 계속 높을 것이란 보장이 없고 경쟁 입지가 반드시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경영자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지만 투자자들은 그런 새로운 사업을 이미 잘하고 있는 회사가 많은 만큼 거기에 투자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분식집 경영자가 매장 구석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성장률이 높은 커피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겠다고 하면 분식집에 투자한 사람들은 투자금을 돌려 달라고 할 것이다. 상장된 분식집이면 주식을 팔 수도 있다.
경영학 책에서는 BCG 매트릭스를 다루면서 성장률 높은 사업에 대한 자원 재배분을 당연하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엄연히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구축, 특히 주요 사업에 대한 투자는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정말로 성장성이 높고 경쟁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그 가능성을 설득해야 한다. 경영전략의 기법들은 그 속에 담긴 생각들을 정확히 살피지 않으면 그럴듯한 말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데 쓰이기 딱 좋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4호(2018.12.24 ~ 2018.12.3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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