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스토리의 힘’…투자자 사로잡은 펀딩 아이템은?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획일화된 가치를 대량으로 소비하던 시대는 끝났다. 소비자는 이제 브랜드보다 생산자에게 집중하고 상품이 탄생하는 과정에 귀를 기울인다.
크라우드 펀딩의 성장은 이런 패러다임과도 맞물린다. 유명하지 않더라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진정성을 내세우는 생산자의 스토리를 믿고 투자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자신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를 만든다. 와디즈·텀블벅·카카오메이커스 등 주요 크라우드 펀딩 업체들의 펀딩 트렌드 ‘키워드 10’은 무엇일까.
◆1 호모 컨비니언스
와디즈가 뽑은 소비 트렌드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류, ‘호모 컨비니언스’다. 작년 한 해 펀딩 플랫폼에는 일상 속 작은 불편함을 해소해 준 제품과 서비스가 주목받았다.
와디즈에서는 여행갈 때 입는 옷을 모티브로 등장한 편한 바지 고고팬츠가 약 2억6000만원의 펀딩액을 모았다.
이 밖에 속옷을 입지 않아도 티가 나지 않는 티셔츠, 세탁기 친화적인 원단으로 제작된 바지 등 진화된 옷으로 일상에서 겪던 크고 작은 불편에서 탈피할 수 있는 제품이 주목받았다. 6번의 펀딩을 진행한 코르크 스피커는 울림통 없이 빈 병에 꽂을 수 있게 만든 제품이다. 무게는 줄었지만 성량과 음질이 뛰어나 1억4000만원의 펀딩을 받았다.
또한 치약 없이 물과 빛만으로 입속 세균을 없애는 솔라데이 광촉매 칫솔, 라이터 없이 버튼만으로 점화 되는 루모스 캔들, 씹어서 헹구기만 하면되는 고체 치약 등 누군가의 불편함을 없애주는 아이디어들이 빛을 발했다.
카카오메이커스에서 가장 많은 누적 판매액을 기록한 제품은 통째로 세탁하는 기능성 베개다. 베개 세탁 시 솜과 커버를 분리하는 불편함을 덜어 1년간 약 1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또한 김서림 방지 안경 클리너 ‘루이’는 카카오메이커스에서만 총 3만1181개가 팔렸다.
◆2 원터치 푸드 몇 년 전부터 가정간편식(HMR)과 건강간편식 등 간단하게 끼니와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식품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간편함이 더 진화했다. 펼치기만 하면 완성되는 원터치 텐트만큼 별다른 조리 없이 뜯어서 먹기만 하면 된다.
간편하지만 대충 먹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각종 영양소를 골고루 챙겨 넣었고 맛까지 놓치지 않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국산 최고급 콩으로 만든 ‘콩콩볼 인절미’는 동량 대비 닭가슴살보다 더 많은 단백질 함유량과 적은 칼로리를 내세우며 펀딩액 6000만원을 달성했다. 이 밖에 바 하나에 단백질·탄수화물·칼슘·철분·비타민을 모두 넣어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만든 ‘퓨처엑스’, 물에 담갔다 빼기만 하면 완성되는 ‘수비드 닭가슴살 등 간편하지만 든든하게 한 끼를 완성하는 음식이 인기를 끌었다.
◆3 행필품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잘 먹고 잘 자는 일이 건강과 행복을 위한 1순위다. 소비자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찾은 행필품(행복 필수품)은 프리미엄 음식과 숙면을 돕는 제품이었다. 와디즈에서는 식당보다 2배 이상 저렴한 가격에 참치를 내놓은 ‘인생참치회’가 2억원의 펀딩을 받았다.
또한 연어·하몽·보리굴비 등 1인 가구가 집에서 쉽게 즐기기 힘들었던 음식이 인기를 끌었다. ‘한 통 다 먹어도 240칼로리’라는 카피를 내건 라라스윗은 디저트를 먹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던 소비자들의 불안을 달래주며 1억5000만원의 펀딩액을 모았다. 숙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최적의 숙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토퍼·매트리스·베개·이불 프로젝트가 2018년 특히 각광받았다. LB호텔침대가 대표 사례다.
국내외 유명 브랜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조사가 유통비와 광고비를 뺀 가격에 와디즈에서 펀딩을 시작했다. 총 1억6400만원의 펀딩액을 달성했고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200건이 넘는 앙코르 펀딩 요청을 받고 있다.
수면을 돕는 음료와 꿀잠을 유도하는 패치, 빛과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귀마개 안대 등도 인기를 얻었다.
◆4 일기도 책이 되는 1인 출판
크라우드 펀딩으로 1인 출판의 시대가 다가왔다. 지난해 텀블벅을 통해 출간된 책만 687건에 달한다. 이후 출간으로 이어지면서 크라우드 펀딩이 출판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서점가에 에세이 열풍을 이끌며 독립 출판 최대 성공 사례가 됐다. ‘동이귀괴물집’, ‘검은사전’을 집필한 물고기머리 작가는 ‘악마’와 ‘괴물’이라는 자신의 관심 분야로 도감을 3억원 가까이 펀딩에 성공했다.
이 밖에 20년간 수집한 북한 디자인 책 ‘메이드 인 조선’ 등 다양한 1인 창작자들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출판물이 크라우드 펀딩 출판의 매력이다.
◆5 우리 동네 콘텐츠
2018년은 지역에 작지만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킨 창작자들이 주목받은 한 해다. 로컬 비즈니스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지역과 동네 콘텐츠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동네 창작자들은 익숙한 줄 알았던 동네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 가치를 탄생시킨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다자요’다. 다자요는 제주도 출신 대표가 제주도 빈집을 무상으로 빌려 리모델링해 숙박 시설로 이용하는 업체다.
폐가를 무상으로 빌리는 대신 모든 비용을 다자요에서 내고 10년간 숙박 시설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집주인에게 권리를 양도받았다. 와디즈에서 증권형 펀딩으로 사업 자금을 조달했고 채권형과 주식형 펀딩을 통해 약 5억4000만원을 모았다. 도시 문화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는 연남동의 크리에이터를 위한 공유 라운지 ‘연남장’의 투자형 펀딩을 통해 1억7000만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꾸준히 동네를 위한 공간과 상품을 만들고 문화 콘텐츠를 통해 전달해 온 만큼 펀딩도 목표 금액의 116%를 달성하며 성공했다.
텀블벅에서도 로컬 문화의 가치를 알고 누릴 수 있는 콘텐츠가 자주 포착됐다. 한 지역을 천천히 탐사하는 ‘231매거진’은 ‘제주 탑동과 원도심’ 편으로 창간을 알렸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동네 책방들이 선보인 인생책 기획전도 많은 호응을 받았다.
◆6 지구환경수비대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의 공격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일회용 제품을 대체하는 제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와디즈에서 일회용 컵을 대신할 한손에 쏙 들어오는 머그컵은 6900만원의 펀딩액을 달성했다. 종이 빨대를 대신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빨대, 알루미늄 포일을 대체할 친환경 실리콘 랩 등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자 하는 관심이 상품으로 이어졌다.
◆7 럭셔리 펫팸족
크라우드 펀딩에서 반려인을 사로잡은 제품은 대체로 고가였다. 지난해 와디즈 리워드형 펀딩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모집한 프로젝트 역시 반려동물을 위한 상품이다.
반려동물에게 간식을 제공하고 놀아주는 인공지능 피트니스 로봇 ‘바램 펫 피트니스 로봇’은 약 6억4000만원을 모집했다. 고양이를 위한 반려동물 정수기 ‘두잇 워터팟’은 약 4억8000만원을 모집하며 반려동물 시장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뿐만 아니라 목욕 후 드라이어에 놀라 도망가는 반려동물을 위한 드라이룸·캣토이·그루밍 브러시 등 단순한 반려동물 용품에서 더 나아가 반려동물의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제품들이 크게 주목받았다.
텀블벅에서는 반려동물 용품뿐만 아니라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과 태도를 담은 책이 목표액의 200%, 900%까지 펀딩에 성공하며 반려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8 뷰티 꿀템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아름다움을 위한 뷰티 제품도 아이디어로 무장했다. 카카오메이커스에서 출시 후 4만6000개를 팔아치운 ‘비타민 샤워필터’가 대표적이다. 피부와 머릿결을 위해 수돗물에 포함된 중금속·녹물·염소를 제거하고 비타민을 더한 샤워기 필터다.
또한 특허 받은 신발 밑창을 깔고 서있기만 해도 다리 스트레칭이 되는 기능성 신발, 물 없이 씹어 먹을 수 있는 콜라겐 큐브 등 건강한 아름다움을 위한 제품도 각광받았다. 와디즈에서는 유리스킨이라는 신생 브랜드가 미백 크림 하나로 총 3억원의 펀딩액을 모집했다. 이 크림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오토파지 이론으로 만들어 낸 특허 물질(멜로제로)로 기미를 제거해 주는 기능성 화장품이다.
황인범 와디즈 이사는 “기술력을 가진 화장품 제조 업체와 바이오 회사에서 B2C 비즈니스를 보다 쉽게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앞으로 크라우드 펀딩에서 기능성 화장품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9 홈캉스
아무리 좋은 곳을 여행하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집이 최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여름은 유난히 덥고 겨울은 삼한사미(3일은 추위, 4일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신조어)가 이어지면서 집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홈캉스’족이 늘고 있다.
홈캉스족은 집에서 휴식만 취하지 않는다. 운동이나 취미 활동도 집에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제품이 크라우드 펀딩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와디즈에 ‘홈트’를 검색하면 다양한 제품이 등장한다. 운동기구를 VR 피트니스 장비로 바꿔주는 ‘VR피트(Fit)’는 펀딩 종료일이 10일이나 남았음에도 이미 목표 금액의 500% 이상을 달성했다.
매달 전 세계 작가의 작품을 문 앞에까지 배송해 주는 그림 정기 구독 서비스 ‘핀즐’은 5000만원 이상의 펀딩액을 모집했다. 카펫이나 매트리스에 묻은 오염까지 지워주는 물청소기는 1억3000만원, 노르딕 침구는 1억2000만원의 펀딩액을 달성하며 홈캉스족의 소비력을 보여줬다.
◆10 소확행(소비자들의 확실한 행동) 크라우드 펀딩은 신생 벤처기업의 자금 조달 채널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기업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제품을 출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상품 하나에만 초점을 맞춰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고 소비자들의 수요를 예측하는 테스트베드가 되기 때문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사내벤처인 FLIP(플립)은 지난해 실험적으로 구스다운(거위털) 패딩을 생산하면서 의류 소재 선정과 생산 과정 등을 공개했다. 그러자 16만원대의 패딩으로 2억5000만원의 펀딩액을 달성했다.
첫 펀딩이 성공하자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대표 브랜드와 플립의 협업 제품도 와디즈를 통해 공개됐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대표 브랜드인 보브와 스튜디오톰보이 모두 트렌치코트라는 동일한 품목으로 디자인을 달리해 와디즈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을 이끄는 두 패션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성과 테스트를 받는 셈이다. 식품 기업 대상웰라이프는 식사 대용 기능 식품 ‘마이밀’을 와디즈에 선공개하며 최대 45% 할인된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제공했다.
기존 중증 환자들을 위한 식사 대용 기능 식품을 B2C로 풀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첫 펀딩으로 모인 금액은 1700만원. 와디즈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식품 스타트업이 1억6000만원까지 펀딩한 것에 비해 10배 적은 펀딩액이다.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B2C의 역량이 스타트업과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대상웰라이프는 내부적으로 상품 기획력을 다듬고 칼로리를 낮춰 다이어트 대용으로 먹을 수 있게끔 상품을 업그레이드해 새롭게 펀딩을 시작했다.
1차에서 후기가 좋았던 소비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2차 펀딩에서는 5000만원 가까이 모았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확실한 피드백과 시장 반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의 크라우드 펀딩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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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1호(2019.02.11 ~ 2019.02.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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