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산업 1위’ KDI 최정표 원장
- “소득 주도 성장 비판은 성급, 경제정책 3~4년 지나야 효과”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 경제·산업 분야 최고의 싱크탱크다. 한경비즈니스가 실시한 ‘2019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며 7년 연속 경제·산업 부문 최고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KDI는 국가 정책 연구 기관으로 지난 48년 동안 국내 경제·산업의 길잡이 역할을 해 왔다. 특히 한국 경제가 고비에 처할 때마다 파괴력 있는 어젠다를 제시하며 경제 담론을 이끌어 왔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의 앞날이 녹록하지 않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KDI의 활약이 절실한 상황이다. 세종시에 있는 KDI에서 2월 20일 최정표(66) 원장을 만나 앞으로 한국경제와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 100대 싱크탱크 조사에서 7년 연속 1위에 올랐는데요.
“우리 KDI의 우수한 연구진이 많이 노력해 준 덕분이지요. 그리고 48년간 이어온 역사와 전통, 우수한 연구 환경, KDI에 대한 사회적 신뢰성, 국제적 명성 등 이런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 워낙 독보적이어서 국내에는 경쟁 연구소가 없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은 글로벌 싱크탱크들과 해야죠. 사실 KDI는 설립 당시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를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지금도 쫓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고요. 브루킹스연구소는 세계 최고인 만큼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KDI는 국내 연구소 중 유일하게 브루킹스연구소와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등 교류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브루킹스연구소 수준으로 올라가야겠죠.”
▶ 취임한 지 10개월 정도 됐는데 어떤 부문에 중점을 두시고 운영하셨나요.
“선진국형 연구 기관으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 가장 많이 신경을 썼습니다. 과거에는 우리 연구 기관이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경제개발 방안을 주로 연구했지만 저는 미래 지속 가능한 성장 그리고 선진국형 경제·산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이미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선 선진국입니다. 국민을 위한 수준 높은 삶, 안전하고 공평한 사회, 높은 문화 수준이 뒷받침되는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선진국형 경제·산업 모델은 무엇입니까.
“이건 아직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겁니다. 일단 4월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발표할 예정이긴 한데 미리 말씀드릴게요. 일자리 문제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사실 한국의 현재 고용지표는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바로 주력 산업이었던 제조업의 구조조정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1월만 해도 취업자 수가 17만 명이나 감소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흡수해 줄 산업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해결책은 선진국형 산업구조, 즉 서비스산업의 육성입니다. 지난해부터 KDI 박사 10여 명으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7대 서비스산업에 대해 집중 분석했습니다. 7대 산업은 문화·예술, 관광·레저, 보육·육아, 간병·요양, 평생교육, 환경산업, 보건·의료입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꼭 필요한 산업이죠. 국민의 삶의 질, 사회 안전망, 복지 등 기본이 돼야 할 산업이에요. 하지만 한국은 소득수준에 비해 상당히 낙후돼 있습니다. 선진국의 서비스업 고용 비율은 한국보다 10% 이상 높은 상황이고 고용 창출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 서비스산업 외에도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나 신연료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산업도 육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이죠. 그뿐만 아니라 제조업도 꾸준히 개발해 하이테크 기술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왜 꼭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하느냐면 바로 시간의 문제입니다. 한국의 일자리는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서비스산업은 약간의 투자와 정책만 있다면 단기간에 바로 추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나 하이테크 제조 산업은 오랜 기간 연구·개발을 해야만 하죠. 물론 이런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중·장기적인 비전이죠.”
▶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죠. 특히 서민들이 힘들죠. 부의 분배가 상위층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상위 30대 그룹이 차지하는 경제 비율이 70%가 넘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들 기업에 속한 사람들은 소득수준이 높고 여기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틀을 깨야 하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이는 기업 생태계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한국의 기업 생태계는 대표적인 수직·수평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수평 구조는 경쟁사들끼리 경쟁하는 구조인데 상위 기업들이 담합을 통해 이익을 독점하고 있죠. 수직 구조는 대기업 밑으로 들어가는 하도급 구조인데 갑질과 불공정 거래로 대기업들만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깨야 하는데 기득권들은 이를 놓치려고 하지 않죠.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지금 KDI에서 이 문제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서민들이 어렵다 보니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네요. 정치적 싸움이 끼어들어 그래요.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해 평가를 절하하는 것이죠. 지금 정부는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경제정책은 최소 3~4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지금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을 두고 마치 이 정책이 소득 주도 정책의 전부인 듯 공격하는데 이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외에도 많은 복지정책이 복합적으로 시행되면 많은 것이 바뀔 것입니다.
실제로 선진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은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이 최하위권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죠. 10년 전입니다. 당시 한국에서 주5일제 근무를 시행했어요.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 일하지 않는 기업, 은행 업무 공백 등의 어려움을 예를 들며 나라가 망할 듯이 반발했죠. 하지만 지금 보세요. 지금 토요일 출근하라면 누가 출근할까요.”
▶ 경제성장률은 몇 년째 2%대 저성장입니다. 어려운 것 아닌가요.
“맞아요. 2.5% 저성장 기조를 보이고 있죠. 저출산·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고성장은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면서 산업구조를 바꾸고 있는 지금은 2.5% 성장도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과거 10%대 고동성장기를 생각하면서 ‘위기’라고 이야기하지요. 선진국이랄 수 있는 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모두가 1~2%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률에 집착하면 부작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
▶ 저성장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는요.
“장기화 가능성이 높죠. 이것도 예를 들어보죠.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쉽게 사람으로 살펴보죠. 사람은 성장기가 있습니다. 20대를 넘어서면 10대 때처럼 성장할 것을 기대하면 안 되잖아요. 3만 달러 시대, 선진국에 진입한 이상 이제는 경제성장률에 집착하면 안 돼요. 다른 것을 살펴야죠. 바로 국민의 복지, 사회 안정망 같은 것이요. 적절한 부의 분배가 이뤄지는 경제·산업구조를 만들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미 유럽의 많은 선진국들이 그렇게 했죠.”
▶ KDI가 앞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2년 후면 KDI가 만들어진 지 50주년 됩니다. 이 말은 곧 한국 경제와 50년을 함께해 왔다는 것이죠. 50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 3만 달러 시대를 열었으니 이제 앞으로의 50년을 준비해야죠. 이 준비를 저는 ‘한국 경제 5.0’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제대로 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 50주년 위원회라는 TF팀을 만들어 미래의 한국 경제와 KDI의 발전 방향 계획도 준비 중입니다.”
cwy@hankyung.com
[커버 스토리 기사 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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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표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3호(2019.02.25 ~ 2019.03.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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