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부문 1위 정태영(59) 현대카드 부회장은 국내 스타 경영인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경영 철학을 표출하고 디자인 경영, 문화 마케팅을 주도하며 금융계 ‘혁신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정 부회장은 2003년 현대카드 사장에 오른 뒤 현대카드를 업계 상위권으로 키워냈다. 2003년 정 부회장이 취임 당시 시장 점유율 1.7%로 업계 꼴찌였던 현대카드는 2017년 기준 점유율 13.1%, 업계 2위로 부상했다. 지난해에는 삼성카드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정 부회장은 종로학원을 세운 정경진 씨의 장남이다. 1985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딸 정명이 당시 현대커머셜 고문과 결혼해 현대가의 사위가 됐다. 2015년엔 현대카드 성장을 이끈 성과를 인정받아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디자인 경영’과 ‘문화 마케팅’으로 혁신
정 부회장은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혁신을 꾀했다. 2003년 5월 포인트 마케팅과 차별화된 혜택을 선보인 ‘현대카드M’이 탄생했다. 현대카드M은 출시 후 1년 만에 회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신용카드 단일 브랜드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800여만 명이 가입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 디자인 경영을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했다. 당시 금융회사를 떠올리면 느껴지는 보수적인 분위기와 반대로 디자인을 근간으로 한 경영을 펼쳤다. 현대카드는 고객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기업 전용 서체를 기획하고 기존 카드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는 차별화된 카드 디자인을 선보였다.
카드업계에서 처음으로 카드 옆면에 색을 넣거나 등급에 따라 다양한 색을 도입했다. 또 카드를 가로가 아닌 세로로 디자인했다. 디자인으로 차별화한 현대카드는 소비자에게 ‘트렌드를 이끄는 기업’으로 각인됐다.
새로운 디자인이 대중에게 큰 호응을 받으면서 현대카드의 이미지가 상승했고 색깔별로 현대카드를 수집하는 마니아 층이 형성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이 기획한 문화 마케팅도 큰 성과를 거뒀다. 그 중심에 2007년 시작된 ‘현대카드 슈퍼 콘서트’가 있다. 슈퍼 콘서트는 폴 매카트니, 아리아나 그란데, 콜드플레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들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켰다.
2011년부터 시작된 ‘컬처 프로젝트’도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독특한 이벤트를 기획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 왔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스며들며 ‘업’의 영역을 넓혀 왔다.
또한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공간 마케팅’을 선도하며 브랜드 마케팅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정 부회장은 디자인·트래블·뮤직·쿠킹 등 소비자들의 취향과 관심, 트렌드를 분석해 기획한 공간 ‘라이브러리’를 선보였다. 이 같은 시도는 큰 호응을 얻으면서 많은 충성 고객을 보유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기존 기업 문화를 타파하며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행보도 선보였다. 승진 연한을 기존 4~5년에서 2년으로 낮추고 승진 심사도 1회에서 3회로 확대했다. 연차와 상관없이 실력을 평가해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취지였다. PPT 금지와 애자일 오피스, 점심시간 폐지, 단정한 캐주얼을 입을 수 있게 한 ‘뉴 오피스 룩’ 등도 정 부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디지털화로 반전 노려 하지만 마케팅 혁신이 경영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슈퍼 콘서트 등 문화 마케팅의 파급효과에 비해 작년 실적은 부진하다. 이를 두고 ‘부업’은 잘되는 데 ‘본업’이 안 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현대카드의 지난해 3분기 기준 당기순이익은 전년 3분기 대비 28.75% 감소한 1296억1400만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32.53% 감소해 1633억9100만원에 그쳤다. 반면 영업비용은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 영업비용 2조236억원을 지출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1조8976억원 대비 6.22% 증가한 수치다. 한국신용평가도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신용 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실적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인원 감축도 단행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정 부회장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경영 체질 개선 컨설팅 작업을 통해 총 400명의 인력을 축소해야 한다는 결과를제시받았다. 감축 규모는 현대카드에서 200명, 현대캐피탈과 현대커머셜에서 각각 1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디지털 고도화’를 선택했다. 삼성페이·카카오페이 등 모바일 결제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고 정부가 카드 수수료를 인하하는 등 카드업계에 놓인 대내외적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 현대카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DNA를 조직 문화 전반에 장착해 시장 환경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IBM THINK 2019'에서 현대카드 디지털 전략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과거 브랜딩과 마케팅, 디자인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브랜딩과 마케팅만으로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4년 전부터 디지털로의 대규모 전환을 시작했고 이제 음악이나 디자인이 아닌 AI와 블록체인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맞춤화된 시간에 맞춤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맞춤형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하이브리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업무에 적용한 포털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포털을 ‘빅데이터 플랫폼’ 기반으로 구축하고 일선 업무에 적용해 개인 사업자 등 고객에게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또한 2017년 IBM의 AI 서비스 ‘왓슨’을 적용한 챗봇 ‘버디’를 도입하는 등 디지털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사업 진출에도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삼성카드가 18년 동안 독점 제휴해 온 코스트코와 10년간 독점 계약을 따냈다. 코스트코의 연간 신용카드 결제액은 3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만큼 현대카드가 고정 수익원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카드가 코스트코 결제 카드로 선정되기까지 정 부회장의 역할이 매우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부회장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 파격적 수준의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현대카드가 10년 만에 내놓은 새 프리미엄 카드 ‘더 그린’은 작년 8월 출시 후 최근까지 판매량이 3만5000장을 돌파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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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4호(2019.03.04 ~ 2019.03.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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