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옥우석의 경제돋보기] ‘레몬 시장’과 개혁의 역설
[옥우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필자는 현 정부가 공권력 남용, 부정 채용 등 과거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잘못된 관행들을 청산하고자 하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실적 쌓기 등의 동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무분별한 처벌을 경계해야 한다. 혹 만에 하나라도 현재의 정치적 ‘바람’에 휩쓸려 개혁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을 시도했던 이들이 함께 처벌 받는 일이 발생한다면 외관상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일치하지만 형식만 요란할 뿐 실익이 없는 무사안일주의적인 행정행위만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를 ‘개혁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상황을 경제학에서 말하는 ‘레몬 시장’에 빗대 설명할 수 있다. 레몬 시장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품질은 엉망인 ‘빛 좋은 개살구’만 남은 시장을 서양 학자들이 칭하는 말이다. 이 이론은 제품의 품질이 다양한데 소비자가 개별 제품의 품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면 평균보다 품질이 나쁜 제품만 시장에 남게 되고 결국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예측한다.

예를 들어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가 구매하려는 중고차에 대한 고장이나 사고에 대한 이력 등 품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하자. 공급된 중고차 중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품질이 나쁜 차도 있고 새 차나 다름없이 관리가 잘된 차도 있다고 하자. 그러면 소비자는 품질이 나쁜 자동차를 구매할 위험에 대비해 공급된 차들의 평균적인 품질을 기준으로 가격을 지급하려고 할 것이다.

이때 모든 중고차에 적용되는 가격이 평균 품질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공급자들은 자신이 공급하는 자동차 품질을 잘 알고 있으므로 적용 가격 이상의 품질을 가진 중고차는 공급하지 않는다. 결국 나쁜 품질의 중고차만 시장에 남게 되는 것이다. 레몬 시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면 시장은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개발하고 그도 부족하면 정부가 시장을 형성해 주기도 한다.

정확히 말해 시장은 아니지만 행정이나 정치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행정 업무를 수행할 때 공직자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보상(가격)은 승진이나 감사 조치 등 해당 업무의 결과 발생할 수 있는 편익과 비용에 의해 종합적으로 결정된다. 편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면 보상이 클 것으로,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면 보상이 작을 것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다. 행정행위는 좋은 행정(공익에 기여하는 적극적인 행위들)도 있고 나쁜 행정(무난하지만 개인의 영달에 도움이 되는 행위들)도 있다.

그런데 일반 대중은 이를 구분하기 위한 정보가 부족하다. 과거 오랫동안 지속해 왔던 부조리를 청산할 때 여론은 과거 행위들에 대한 평균적인 이미지를 기준으로 처벌의 기준을 정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처벌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좋은 행정과 나쁜 행정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이고 과도하게 적용된다면 결국 공직자들은 자신의 행정행위로부터 개인적으로 얻는 보상(가격)이 작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좋은 행정행위들은 줄어들게 되고 나쁜 행정행위들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처벌의 기준이 모호하면 행정행위에 대한 보상은 더 작아지게 된다.

과거 권력을 사유화해 일부 집단이나 정파의 이득만 챙겼던 행위들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조급하고 외면적 성과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개혁적이고 적극적인 행정행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개혁의 슬로건은 요란하지만 막상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행정의 뒷받침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 정부가 개혁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직자들에 대한 처벌에서 ‘적폐’와 ‘적극적 행정’을 신중하고 철저하게 구별해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4호(2019.03.04 ~ 2019.03.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