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과 콘텐츠 기업이 일제히 OTT 플랫폼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국내 콘텐츠 시장에 대한 전망도 엇갈린다. 이미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점령한 동영상 서비스 시장에서 토종 OTT 기업의 설 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반면 국내 콘텐츠의 유통 판로가 넓어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공룡들의 각축전 사이에서 국내 1위 콘텐츠 기업 CJ ENM의 전략은 무엇일까. CJ ENM이 택한 무기는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다. 시대와 기술에 따라 변하는 플랫폼에 기대기보다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고 이를 플랫폼에 맞게 변환하겠다는 전략이다.
◆초격차 IP와 글로벌 사업 가속화
CJ ENM은 콘텐츠·지식재산권(IP)·유통·판권·커머스에서 수직 계열화를 이뤄낸 유일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콘텐츠 제작자이면서 tvN·M넷(net)·올리브(Olive) 등 다수의 채널 운영 사업을 하고 있고 디지털에서는 ‘티빙’이라는 자체 OTT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OTT 전쟁이 본격화됐지만 CJ ENM은 티빙을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내세우기보다 디지털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무료 플랫폼으로 전환했다.
CJ ENM이 2016년 CJ헬로로부터 티빙 영업권을 인수했을 당시만 해도 티빙은 구독료 수익 모델 기반의 프리미엄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했다. 이른바 ‘한국형 넷플릭스’를 겨냥한 최초의 서비스였다.
하지만 2017년 이후 티빙은 국내 실시간 방송을 무료화했다. 예상보다 글로벌 OTT 플랫폼의 투자와 가입자 증가가 컸기 때문이다. 티빙의 무료화 이후 2017년 월평균 순 방문자 수는 전년 대비 119% 증가했다. 이후 오히려 디지털 광고 매출이 늘었다.
지난 2월에는 CJ헬로 지분 53.9% 중 50%를 LG유플러스에 8000억원에 매각하고 콘텐츠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미디어 시장이 변화함에 따라 방송 플랫폼을 포기하는 대신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CJ ENM은 자체 플랫폼을 강화하는 대신 콘텐츠를 중심으로 글로벌 판로를 넓혀 나갔다. 해외 OTT·로컬 방송 채널 등에 판권을 개방하며 IP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CJ ENM 콘텐츠의 해외 수출은 전년 대비 70.9% 늘어 전체 매출을 견인했다. 드라마와 예능 위주로 해외 판권 판매 건수가 증가했고 해외 유통이 발생한 프로젝트 전반에서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의 합산 제작비 부담은 감소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드라마로는 드물게 430억원의 제작비가 소요된 대작으로 지상파 방송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규모였다. ‘미스터 션샤인’의 제작사이자 CJ ENM의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은 넷플릭스에 약 300억원을 받고 드라마 판권을 판매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 제작사는 제작비를 충당했고 ‘미스터 션샤인’은 약 190개국의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2016년 한국 예능 포맷 최초로 미국에 판매된 ‘꽃보다 할배’는 ‘베터 레이트 댄 네버(Better Late Than Never)’란 제목으로 NBC 프라임타임에 편성돼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랐고 총 10개국에 포맷을 판매했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남자친구’, ‘백일의 낭군님’,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100여 개국의 지상파·OTT 등에 방영권을 판매하는 성과를 거뒀다. 콘텐츠 수출 외에도 CJ ENM은 TV와 OTT를 통해 ‘tvN 아시아’, ‘tvN 무비스(Movies)’ 등 다양한 채널을 마련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개국한 세계 최초 해외 전용 한국 영화 전문 채널 ‘tvN 무비스’ 서비스 지역을 홍콩·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으로 확대해 운영 중이다.
또한 2009년부터 한류 채널 ‘tvN 아시아’를 운영하며 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시아 900만 가구로 송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스웨덴 방송 배급사 에코라이츠(Eccho rights)를 인수했다. 스웨덴·터키·스페인·필리핀 등에 진출해 있는 에코라이츠는 약 1만5000시간 분량의 배급권을 보유하고 있다. CJ ENM은 에코나이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유럽과 글로벌 시장에 콘텐츠·포맷 판매와 공동 제작을 추진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증권업계에서는 CJ ENM이 최근 스튜디오드래곤 지분을 시장에 내놓은 이유도 글로벌 플랫폼·콘텐츠 사업자와 협업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CJ ENM은 스튜디오드래곤 지분 71.33%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최근 경영권을 유지하는 선에서 보유 지분 중 10~20%를 매각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앞서 LG유플러스와 CJ헬로 간 인수 협상에서도 LG유플러스 측이 스튜디오드래곤의 지분 매입 의사를 보였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증권업계에서는 스튜디오드래곤이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와의 협업으로 올해 해외 매출 성장률을 30% 이상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연간 총 제작 편수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31편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박정엽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콘텐츠 메이커는 콘텐츠 경쟁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변하는 미디어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CJ ENM은 케이블PP·커머스사·영화배급사·음원유통사로서 양질의 콘텐츠를 다양한 포맷으로 제작할 뿐만 아니라 매 순간 미디어 플랫폼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시대 흐름에 부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판 디즈니’ 꿈꾼다
CJ에 외부 플랫폼 강화는 내부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어책이기도 하다. 지난해 국내 광고 시장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고 디지털 광고비가 TV와 라디오를 합친 방송 광고비를 추월했다.
지상파 TV 광고비가 매년 감소하는 반면 CJ ENM의 디지털 콘텐츠 전략은 순항하고 있다. CJ ENM은 유튜브 채널 운영, MCN 사업 등을 영위하며 동영상 광고 시장의 고성장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다.
전체 광고 시장의 저성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CJ ENM의 디지털 광고 매출액은 51.8% 성장했다. CJ ENM의 디지털 광고 수익은 주로 유튜브·OTT·MCN 등에서 발생한다. 현재 유튜브 내 CJ ENM 채널은 32개다. DIA TV를 제외하더라도 총 구독자 3500만 명, 누적 조회 수 210억 건에 달한다.
CJ ENM의 최종 목표는 ‘미디어 커머스’ 기업이다. ‘월트 디즈니’를 벤치마킹해 하나의 IP로 방송·영화·뮤지컬·음악·소비재 라이선싱 사업과 테마파크 사업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계획이다.
CJ는 미디어커머스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콘텐츠 기업인 CJ E&M과 홈쇼핑 업체 CJ오쇼핑을 합병했다.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 커머스 시장이 본격화되고 있는데 따른 결정이었다.
중국 전자 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사인 앰블린파트너스의 지분을 인수했고 아마존은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를 인수했다. CJ ENM은 판권 판매와 광고 등 일회성 수익에서 그치지 않고 콘텐츠를 다양한 시장과 연계해 지속적인 수익 창출원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미디어 커머스는 방송에 제품을 노출시키는 PPL(Product PLacement)과 달리 초기 기획 단계부터 협의가 이뤄진다. 미디어 커머스 시도를 위해 tvN 예능 ‘스페인하숙’에 등장한 그릇 브랜드 ‘오덴세’는 신제품 ‘얀테아츠’를 CJ오쇼핑 방송에서 론칭했다. CJ오쇼핑은 또 tvN 예능 프로그램 ‘커피프렌즈’ IP를 차용해 커피 상품을 구성했다.
CJ ENM은 미디어 커머스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분야별 디지털 콘텐츠 특화 스튜디오 9개를 설립했다. 디지털 콘텐츠 스튜디오 사업은 재미와 스토리를 담은 커머스 동영상이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되는 트렌드를 반영했다. 예능·뷰티·문화뿐만 아니라 비디오 커머스와 브랜디드 광고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CJ ENM 관계자는 “프리미엄 콘텐츠와 브랜드 상품 등의 자체 IP를 보유한 원천 콘텐츠를 계속 확대하고 모바일 라이브 커머스와 T커머스 등 콘텐츠 기반 채널 다각화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9호(2019.04.08 ~ 2019.04.14)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