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Ⅱ]
-13조8000억원 채권 발행하며 국제 금융시장 데뷔…기업 성장 통해 ‘국가 개조 플랜’ 돌입
‘지상 최대 메가 컴퍼니’ 사우디 아람코의 변신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사우디 아람코가 4월 10일 120억 달러(약 13조8000억원) 규모의 달러 표시 채권 발행을 마무리하며 국제 금융시장에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충격의 원인은 상상을 초월한 사우디 아람코의 영업이익 때문이었다.

사우디 아람코(이하 아람코)는 그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거인이었다. 아람코는 지분의 100%를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왕실이 가지고 있는 비상장 회사다. 사우디는 아람코에서 나오는 세금·배당·로열티 등을 통해 국가 재정의 67%를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아람코의 재무 정보는 국가 비밀에 준하는 수준으로 보안이 유지됐다.

그런데 아람코는 4월 1일 최초로 달러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470쪽짜리 투자 설명서를 내놓았다. 86년 만에 공개된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무려 2240억 달러(약 254조원)에 달했다. 그간 세계 1위로 꼽히던 애플(818억 달러)의 2.7배다. 2위 삼성전자(776억 달러), 3위 로열더치쉘(533억 달러)의 이익을 모두 더한 것보다 많다.

막대한 영업이익에 전 세계 투자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아람코 채권을 사겠다고 몰려든 자금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역대 최대인 1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폭발적인 인기에 아람코는 당초 100억 달러 규모로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었지만 20억 달러나 발행 규모를 늘렸다.

세계 원유 생산량의 13%를 담당하는 아람코의 본사는 사우디 동부의 다란에 있다. 직원 수는 7만여 명 수준이다. 아람코는 1933년 사우디 정부와 미국 스탠더드오일이 함께 설립했다. 스탠더드오일은 ‘석유왕’ 록펠러가 세운 회사다. 설립 후 아람코는 사우디 지역 내의 대형 유전을 차례로 개발해 짧은 시간에 세계 최대의 산유 회사로 성장했다. 아람코의 급성장은 미국계 국제 석유본의 발전과 미국의 중동 내 지위 향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도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가까운 이유다.

이후 중동 지역에서 국유화 바람이 불면서 1974년부터 스탠더드오일 등이 가지고 있던 지분을 사우디 정부가 매입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사우디 정부가 아람코의 주식 100%를 취득하며 완전한 국유화를 달성했다.
‘지상 최대 메가 컴퍼니’ 사우디 아람코의 변신
◆빈 살만 왕세자가 변화 주도

아람코는 현재까지도 사우디에 매장된 2665억 배럴의 원유를 독점 생산한다. 사우디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곳은 아람코 외엔 없다. 사우디의 원유 매장량은 베네수엘라(3009억 배럴)에 이어 둘째로 많다. ‘슈퍼 메이저’라고 불리는 민간 사업자 브리티시페트롤륨(BP)·엑슨모빌·로열더치쉘·토털·쉐브론의 보유량 합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298조 제곱피트에 달하는 천연가스는 덤이다.

아람코는 막대한 원유 생산량을 기반으로 생산원가를 확실히 낮췄다. 아람코의 원유 생산원가는 배럴당 2.8달러다. 슈퍼 메이저의 생산 단가가 배럴당 11~14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20%에 불과하다. 채권 발행 주간사회사인 JP모간과 모건스탠리는 “대규모 유전이 모여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프라와 물류 시너지 효과가 큰 데다 원유 고갈률도 낮아 생산 단가를 경쟁력 있게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람코의 사업부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원유와 가스를 탐사하고 생산하는 ‘업스트림’이고 다른 하나는 캐낸 원유를 정제하고 석유화학제품을 만들어 유통하는 ‘다운스트림’이다. 이 중 업스트림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영업이익 기준 업스트림 대 다운스트림의 비율은 98 대 2다.

베일 속 아람코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의지 때문이다. 이번 채권 발행도 빈 살만 왕세자의 작품이라는 분석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를 세계 최강의 산유국에서 다변화된 경제 체제를 갖춘 선진국으로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는 이를 실현할 플랜으로 ‘비전 2030’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을 고용하고 새로 오픈한 홍해 리조트에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고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민간 의료보험과 교육 시스템도 준비 중이다.
결국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사우디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아람코의 성장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아람코의 성장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중·장기적으로 100달러 이상 고유가 시대에 대한 기대가 약해지고 석유에 대한 ‘수요 피크’ 논란도 본격화한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사우디의 2017년 경제성장률은 거의 0%다. 이는 곧 아람코의 성장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세계의 정부들은 탄소 배출 감축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석유 소비보다 재생에너지 소비 속도가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또 아람코의 영향력은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셰일가스 붐으로 과거에 비해 약화된 상황이다. 미국은 2018년 8월 하루 평균 1134만6000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1973년 이후 45년 만에 러시아와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이 때문에 아람코는 두 가지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나는 다운스트림 부문의 확대, 다른 하나는 기업공개(IPO)나 채권 발행 등을 통한 자본 조달이다. 둘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다.

아람코는 2021년을 목표로 IPO를 추진 중이다. 아람코는 상장 과정에서 약 2조 달러(약 2270조원)를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기업 가치 추정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2018년으로 예상했던 IPO를 2021년으로 연기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최대 1조5000억원으로 추정했다. 이 때문에 올해 먼저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며 국제 금융시장의 반응을 본 것이다.

아람코는 이번 채권 발행을 통해 사우디 최대 화학 기업인 사빅(SABIC)의 지분 70%를 사우디 국부펀드 공공투자펀드(PIF)로부터 사들일 예정이다. 사우디 리야드 주식시장에 상장된 사빅은 시가총액이 777억 달러다. 즉 아람코는 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 돈으로 사빅 지분을 매입하며 국부펀드는 매각 자금을 갖고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아람코의 사빅 인수는 다운스트림 부문 강화 계획과도 맞물려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6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아람코를 석유·가스 회사에서 에너지 산업 회사로 탈바꿈시켜 다양한 신사업으로 투자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람코는 올 들어 정유와 화학 분야에 조 단위의 투자 계획을 잇달아 쏟아내며 관련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아람코는 앞으로 10년간 화학과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 5000억 달러(약 569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지상 최대 메가 컴퍼니’ 사우디 아람코의 변신
‘지상 최대 메가 컴퍼니’ 사우디 아람코의 변신
◆정유·화학 경쟁력 대폭 강화 중

아람코가 가진 정유와 화학 경쟁력은 막강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람코의 배럴당 원유 생산원가는 2.8달러에 불과하다. 4월 25일 기준 두바이유의 배럴당 가격은 71.20달러다. 다른 정유 기업에 비해 훨씬 큰 폭의 마진을 붙일 수 있다.

또 석유 정제 시 나오는 나프타를 원료로 다양한 화학제품을 만들면 수익률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 블룸버그는 “아람코는 단지 원유를 뽑아내 이익을 얻는 게 아니라 휘발유·디젤·플라스틱 등 다른 상품까지 확대하려고 한다”며 “원유 판로를 확실히 묶어두는 이중 역할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람코는 지금도 정유 부문에서 세계 4위의 생산능력을 가졌다. 아람코가 생산하는 원유의 3분의 1 정도가 사우디 국내와 전 세계에 세워진 자회사, 조인트벤처 정유사로 들어가 석유제품 생산에 쓰이고 있다.

아람코의 정유사는 사우디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한국·일본·중국에 진출해 있다. 북미 단일 최대 정유사를 보유한 모티바를 인수했고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 기업인 페트로나스가 추진 중인 대규모 정제·석유화학 프로젝트에도 투자했다.

올해 말 사우디와 말레이시아 등에서 아람코가 투자한 새 정유사가 가동에 들어가면 내년에는 아람코 생산 원유의 절반인 하루 560만 배럴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2030년까지 이를 2배로 늘려 하루 1000만 배럴의 석유제품 생산 네트워크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컨설팅 회사 우드매킨지는 “2030년 아람코는 생산하는 원유보다 많은 원유를 소비하게 되면서 가장 큰 정유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람코는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아람코는 인수한 사빅과 2025년까지 대규모 석유화학 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아람코가 미국의 다우케미컬과 함께 세운 사다라케미컬은 26개 플랜트가 2017년 가동에 들어가 고부가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아람코의 영역 확대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아람코는 한국에서도 장악력을 확대하고 있다. 아람코는 4월 22일 현대중공업지주가 보유 중인 현대오일뱅크 주식 17.0%를 1조3759억원에 매입, 2대 주주에 올랐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지주의 지분율은 74.1%가 됐다. 또한 아람코가 추후 주식 매입 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하면 지분율을 최대 19.9%까지 늘릴 수 있다.

아람코는 또 국내 3위 정유사인 에쓰오일의 지분을 61.52% 보유, 최대 주주다. 앞서 1991년 쌍용양회가 보유했던 쌍용정유 지분 35%를 인수했고 IMF 외환 위기 때 쌍용그룹이 어려움에 처하면서 지분을 늘렸다. 2000년에는 쌍용정유에서 에쓰오일로 사명을 바꿨다.

아람코는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2015년 사우디 국영 석유화학 기업인 사빅과 합작해 울산에 넥슬렌 생산을 위한 ‘사빅 SK넥슬렌컴퍼니’를 설립했다.

아람코의 전략 변화는 한국을 비롯해 글로벌 석유 메이저를 긴장시키고 있다. 손지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가장 저렴하게 원유를 생산하는 아람코가 (정유·석유화학까지) 수직 계열화를 통해 생산비용을 줄인다면 공급과잉에 시달리는 한국의 정유나 석유화학 회사에는 반가운 소식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아람코의 행보에 대해 서구 라이벌 오일 메이저가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상 최대 메가 컴퍼니’ 사우디 아람코의 변신
(사진)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지역에 들어선 주아이마 플랜트.

[돋보기]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비전 2030 프로젝트
-조국의 미래를 재설계하겠다는 ‘미스터 에브리싱(Mr.Everything)’
‘지상 최대 메가 컴퍼니’ 사우디 아람코의 변신
아람코의 사업 확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고 있다. 1985년 태어난 그는 2017년 아버지 살만 국왕으로부터 왕위 계승권을 받은 이후 사우디를 좌지우지하는 실권자가 됐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사우디의 미스터 에브리싱(Mr.Everything)’이 됐다. 그는 현 살만 국왕 슬하의 13남매 중 일곱째다,

원래 사우디의 왕위 계승은 ‘형제 계승’을 원칙으로 한다. 현 국왕인 살만 국왕도 2015년 형 압둘라 국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아버지 살만 국왕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개혁은 빈 살만 왕세자의 몫이었다. 그는 정부 내 요직인 경제개발위원장과 국방장관 등을 맡았다. 아람코 이사회 의장인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산업에너지·광물부(옛 석유부) 장관 역시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결국 2017년 6월 21일 아버지 살만 국왕이 제1왕세자 겸 내무장관인 조카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폐하고 친아들 빈 살만을 왕세자로 봉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왕위 계승에서 세대교체는 물론이거니와 사우디 최초의 부자 상속까지 확정지었다.

그는 왕세자 책봉 후 초강경 반(反)부패 운동을 주도, 부정부패 혐의가 있는 사우디 왕족들을 호텔에 가두고 왕족들의 재산을 국고에 환수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왕세자 자신의 개혁과 집권에 반대하거나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을 제압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에 앞서 빈 살만 왕세자는 2016년 사우디 경제를 현대적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담은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비전 2030의 핵심은 7000억 달러(약 810조원)를 들여 석유 의존 경제인 사우디를 첨단 기술과 투자 중심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에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의 변화까지 담고 있다.

비전 2030 프로젝트에서 5000억 달러는 ‘중동판 실리콘밸리’인 미래 신도시 네옴(NEOM) 건설비다. 2025년 완공 예정인 네옴은 독자적인 조세·노동법·사법제도를 갖추고 미래 첨단 기술 도시로 육성된다. 네옴은 사우디 북서부 홍해 인근의 사막지대에 서울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2만6500㎢ 규모로 건설될 계획이다. 네옴에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만 사용되며 경비·배달 등 단순 반복 작업과 노인·유아 돌보기 등은 로봇이 대신한다. 자율주행차와 무인 드론이 운행되고 무선 초고속 인터넷이 사용된다. 사우디 정부는 이 도시를 거점으로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같은 신기술, 3D 프린팅과 로봇 등 첨단 제조업, 약학 등 바이오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또한 이 도시의 에너지를 충당할 원전과 태양광발전 인프라도 건설할 예정이다. 사우디 원전 프로젝트는 2030년까지 1.4GW 원전 2기 건설, 2040년까지 원전 16기 건설이 목표로 총사업 규모는 100조원 수준이다. 최근 사우디는 200억 달러를 들여 1.4GW급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 태양광발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8년 3월 뉴욕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만나 2030년까지 총 200G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건설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에 합의했다. 1단계 공사에서는 50억 달러(약 5조원)를 투입해 발전 규모 7.2GW의 태양광발전소 두 곳을 먼저 건설한다. 공사비 50억 달러 중 10억 달러는 소프트뱅크가 조성한 1000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로, 나머지 40억 달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라며 성공을 자신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