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2019 제주포럼, 새로운 ‘아시아의 시대’를 위한 준비]-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의 저자 마틴 자크 케임브리지대 선임연구원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패권 국가로서 ‘중국의 부상’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틴 자크 케임브리지대 선임연구원 겸 칭화대 명예교수는 10년 전 ‘중국의 부상’을 예견했다. 그의 저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를 통해서다. 전 세계적으로 15개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다소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성공적인 세계화’는 ‘성공적인 서구화’를 의미했다. 하지만 서구와 전혀 다른 문명에 뿌리를 둔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된다면 이 세계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5월 30일 마틴 자크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아시아 회복 탄력적 평화를 향하여 : 협력과 통합’이라는 주제로 열린 ‘2019 제주포럼’의 특별 세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한경비즈니스가 자크 선임연구원을 단독으로 만나 미·중 무역 분쟁이 글로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길을 찾아 나가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인터뷰는 특별 세션을 마친 뒤 포럼이 열린 제주국제컨벤션 센터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신냉전의 시작, 세계는 '중국'과 '미국' 두 진영으로 나뉜다"
-정확히 10년 전, 새로운 패권 국가로서 ‘중국의 부상’과 기존 패권 국가인 미국과의 갈등 가능성을 전망했습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화=서구화’란 공식이 매우 공고한 시기였습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서구의 경제 시스템을 따라야 하고 정치적으로도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죠.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중국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중국이 미국처럼 바뀌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의 길을 열어줬어요.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은 모두 틀렸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당시 왜 ‘중국의 부상’을 보지 못했나요. “개인적으로는 2006년부터 2008년 중국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강한 확신이 들었어요. 중국은 해마다 10% 이상씩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었고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모든 면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서구 세계는 왜 이 같은 중국의 부상을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근본적으로는 유럽과 미국과 같은 서구 세계가 중국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서구의 패러다임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서구의 관점’으로 중국을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중국을 이해하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죠. 결과적으로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중국의 성장을 지켜보며 예측과 가장 달랐던 점이 있나요. “지난 10년간 중국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놀랐던 것은 ‘변화의 속도’입니다. 특히 기술적 부분은 매우 놀랍습니다. 5년 전만 해도 중국의 기술이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발전하고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나 또한 중국을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텐센트·알리바바·화웨이 등 중국은 이미 기술적 부분에서도 미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은 기술적 부분에서도 미국을 넘어서게 될 겁니다.”

-미국은 중국이 기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으로부터 ‘기술 도둑질’을 한다고 비판하며 날 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 전쟁은 본질적으로 ‘기술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화웨이 사태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죠. 세계의 패권을 두고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전쟁에서 ‘기술적 우위’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에 대해 일종의 공포감을 갖고 있는 이유죠. 그런데 조금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중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지금의 중국과 같은 방식으로 기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심지어 미국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기술을 발전시켜 왔으며 한국과 대만 등이 대표적으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발전해 온 나라들이에요. 처음에는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빌려오고(borrow), 베끼고(copy), 복제품을 만들며(imitate) 자신들의 기술을 조금씩 발전시키고 자신들만의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겁니다. 지금 중국은 개발도상국들이 대부분 거치는 발전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얘깁니다. 다만 중국은 대만이나 한국과 비교해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그 영향이 훨씬 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방식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게 없습니다.”
-중국이 실리콘밸리를 넘어서는 게 가능할까요. “중국은 이미 경제적인 규모면에서 미국을 넘어섰습니다. 머지않아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미국과 경쟁하는 분야가 늘어날 것이고요. ‘혁신’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이 실리콘밸리와 경쟁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중국은 실리콘밸리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혁신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국의 변화는 경제적인 부분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경제적인 발전이 지금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 낸 기반이 된 것은 분명하죠.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인 성장에 따른 근본적인 변화는 중국인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에요. 단지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교육·의료·사고방식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졌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 결과입니다. 텐센트·알리바바와 같은 중국의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이와 같은 변화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미국의 패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에 의해 도전을 받은 게 이번이 첫 사례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일본도 1980년대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결국 미국과 ‘플라자 합의’를 맺었습니다. 지금의 중국은 당시의 일본과 결과가 다를 것으로 보나요.

“미국이 전 세계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이에 대항하는 세력으로서 일본과 중국의 상황이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국가의 근본적인 차이는 ‘미국’과의 관계입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현재도 미국의 우방 국가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일본과 비교하면 미국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죠. 당시 ‘플라자 합의’와 비슷한 합의가 중국과 미국 사이에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합의가 이뤄지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아마 과거 일본과 미국이 맺었던 ‘플라자 합의’와는 여러 의미로 다른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지금으로서는 무역 전쟁이 언제 끝날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만 보더라도 이미 무역 전쟁은 이미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피해를 주고 있죠. 글로벌 무역은 상당히 복잡한 공급 사슬에 의해 여러 나라들이 연계돼 있고 미·중 무역 전쟁은 특히 이 부분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요. 많은 국가들이 이런 상황에 따라 타격을 받을 것이고요. 한국 또한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부정적 영향이 커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지난 10년간 중국은 한국에도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였으니까요.”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한국 기업들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한국은 어떤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인구를 지닌 나라의 부상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고 미국과 중국을 양 축으로 한 일종의 ‘신냉전’ 시대가 올 겁니다. 물론 과거 ‘미국·소련’ 시대의 ‘신냉전’과는 다를 겁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세계가 양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근본적으로 미국과 다른 ‘문명’에 뿌리를 둔 국가라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태평양·아시아 지역의 사고에 영향을 받는 진영과 미국·유럽 등 서구의 사고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진영으로 나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와 같은 큰 흐름에서 현재의 상황(단계)을 분석하면 미국이 예전과 달리 중국과 거리를 둠으로써 중국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가운데서 영리하게 균형을 잘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매우 민첩하고 영리하게 경제 발전을 이뤄 온 나라입니다. 한국은 빠르게 변화에 적응해 나가면서 기술이 놀랍게 발전했고 세계경제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될수록 모두에게 어려운 상황일 수 있지만 한국은 이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그랬듯이 잘 헤쳐 나갈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현재 한국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지금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패권 경쟁으로 인한 ‘신냉전’ 시대의 초입에 있습니다. 한국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된 세계에서 이들 나라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더욱 가깝지만 정치적으로는 미국에 더 가깝습니다. 이런 상황은 한국이 양분된 세계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앞으로 매우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입니다. 둘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중국 경제가 성장할수록 아시아 지역 국가들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만약 한국이 이런 두 패권 국가의 사이에서 신중하게 균형을 잘 잡아나가기만 한다면 그 사이에서 한국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의 부상은 한국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중국이 경제성장을 지속할수록 중국뿐만 아니라 전체 아시아 지역 또한 필연적으로 변화를 겪게 될 겁니다. 아시아 국가들도 중국과 함께 성장할 여지가 큽니다. 글로벌 경제의 패권이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는 겁니다. 이는 분명 한국과 같은 나라들에도 ‘기회’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는 북한과 남한의 경제협력의 길이 열리는 겁니다.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가 잘 해결되고 남북의 경협이 본격화된다면 한국은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수혜를 보게 될 테고요. 이와 함께 미국에 정치적으로 덜 의존하게 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성장이 지속되면서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통해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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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