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2019 제주포럼, 새로운 ‘아시아의 시대’를 위한 준비]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상생 방안 찾아야…지나친 ‘정치적 개입’은 독 될 수도
확산되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참여 필요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는 지금 자본시장에서 가장 ‘핫’한 주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주주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집사의 의결권’ 문제는 국제적인 화두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국내 자본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5월 31일 여의도 금융 투자업계의 ‘별’들이 제주도에 모였다. 한경비즈니스가 주최하는 ‘제주 애널리스트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포럼에는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 등 금융 투자업계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해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과 금융시장의 변화’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이 갖고 있는 고민과 논쟁을 요약·정리해 소개한다.


◆임성윤 달톤인베스트먼트 연구원
“국민연금, 기업의 배당뿐만 아니라 자사주 매입·소각도 강조해야”


미국계 투자회사인 달톤인베스트먼트의 임성윤 연구원은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임 연구원은 가장 먼저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현주소에 대해 짚었다. 지난 7년간(2012년 1월~2018년 12월)의 누적 총주주 수익률을 비교하면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성과가 저조했다. 대부분 국가들의 배당수익률이 30%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배당수익률은 매우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기업 가치는 큰 움직임이 없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각 지수별 5년(2013년~2017년) 평균 주가순자산배율(PBR)’을 보면 한국은 PBR 1배로 이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와 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증시의 PBR은 0.8배 수준으로 하락했다.
확산되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참여 필요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국내 기업들은 제조업의 비율이 높고 투자도 많이 이뤄지는 편이다. 특히 연구·개발(R&D)과 같은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다. 그렇다면 ‘투자 대비 효율’이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MSCI 각 지수별 5년(2013~2017년)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비교해 보면 한국 기업들의 ROE는 글로벌 기준에 비해 상당히 낮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7% 정도다. 이에 비해 미국과 중국은 12~14% 수준이다.


국내 기업들의 자본 효율은 왜 이렇게 낮게 나타나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원인을 짚을 수 있다. 첫째, 기업을 경영하는 데 위험을 부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투자 대비 효율성’에 대한 명확한 계산보다 총수의 직관에 의해 투자가 이뤄지는 곳이 많다. 둘째, 주주 환원율이 낮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와 관련해 배당성향을 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자사주 매입 비율이 낮다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MSCI 각 지수별 7년(2011~2017년) 평균 총주주 환원율(순이익 대비)을 살펴보면 미국은 자사주 매입을 포함해 90%에 달한다. 한국은 18% 수준이다. 외국인 투자자들로선 주가가 이렇게 싸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사주 매입을 고려할 텐데 한국 기업들은 하지 않는다. 한국 기업들이 아무리 주주 친화적으로 한다고 해도 외국인 투자자들로선 의구심이 든다. 이와 같은 상황이 전반적으로 국내 주식시장의 현황이고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한 이유다.


이와 같은 내용을 기반으로 국민연금에 제안하자면 글로벌 수준에 부합하도록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특히 자본의 배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투자 기업들의 배당수익률을 중심으로 보고 있는데,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대해서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김홍석 메리츠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한국 기업들, 점차 주주 중심 경영에 눈 뜨는 중”


김홍석 메리츠자산운용 본부장은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시각을 대표해 스튜어드십 코드의 현황과 한계를 짚었다. 메리츠자산운용은 시장 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운용사로 꼽힌다. 펀드매니저는 기본적으로 고객의 자산을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기본이다. 이를 위해 ‘좋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좋은 회사’를 선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재무적인 성과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들의 비재무적인 요소들이 기업들의 경영 성과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ESG)와 같은 ‘비재무적인 요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국제적으로 수탁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강조되는 배경이다.
확산되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참여 필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들은 먼저 세부적인 투자 원칙을 설정하고 이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또 투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업들과 소통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이와 관련한 내용들에 대해서도 모든 투자자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게 돼 있다. 실무자에게는 추가적인 업무가 많이 늘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위해 이와 같은 부분들에 맞춰 많은 변화를 겪어 나가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수탁자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운용사에서 기업들의 정보에 대해 하나하나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한 작업들을 처리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인력이나 인프라 부분에서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의결권 자문사와 같은 외부 기관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만 외부 기관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보냈는데 우리가 내부적으로 회의를 거쳐 ‘찬성’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다. 이때도 물론 분명하게 그 이유가 명시돼야 한다. 메리츠자산운용이 투자한 기업들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비율은 국내 다른 자산운용사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눈여겨볼 것은 2015년부터 최근까지 비교해 볼 때 반대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로 최근 기업들 역시 주총에 안건을 올리거나 주주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예전보다는 상당히 소액주주들이나 기관투자가들의 의견에 신경을 많이 쓰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절대적인 수준으로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삼성전자를 필두로 많은 기업들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주주와 소액주주가 ‘윈-윈’할 수 있는 인센티브 시스템들을 같이 만들어 간다면 국내 자본시장이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전망한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
“한국식 지배구조에 대한 치열한 고민 필요한 때”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과 확산에 따라 의결권 자문사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의결권 자문사의 관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확산되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참여 필요
안 본부장은 먼저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영국 등과 비교했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국내 기업들은 미국·영국의 기업들과 비슷한 지배구조 체제를 가지고 있다. 맨 위에 경영진이 있고 그 밑에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이사회가 있으며 이사회를 견제할 수 있는 감사위원회가 있다. 미국은 경영진과 이사회가 분리돼 있기 때문에 ‘견제 기능’이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경영진이 곧 주주고 이사회다. 이 때문에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적 원인이 있는 것이다. 몇 백년의 자본시장 역사를 거쳐 지배구조 모델을 만들어 온 미국·영국 등에 비해 한국의 자본시장 역사는 50년이다. 이처럼 미국과 한국의 시장은 역사적 배경 등이 매우 다른데, 이 제도를 한국에 그대로 들여와 쓰고 있다. 이제는 한국식 지배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지난 4년간 대기업 집단 소속 계열사들의 이사회 내 상정 안건은 600건 정도다. 그런데 이 중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낸 것은 0.2%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에서 ‘내부 통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국내 사외이사들의 경력을 보면 대부분 같은 직종에 집중돼 있다. 국내 기업 사외이사의 25%가 감독기관·사법부·장차관 출신이다. 사외이사들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의미가 있다. 실제로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생각보다 폭넓게 진행되는 중이고 이와 관련해 제도나 법률들도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자산운용사 등 투자 기관은 5월 24일을 기준으로 96개다.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의 자금을 위탁 운용하고 있는 기관들은 대부분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의결권 자문사에 자문하고 있다. 이와 같은 큰 흐름으로 볼 때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스튜어드십 코드로 투자 기관에 '이거해라' 식의 네비게이터 돼선 안돼"


이미 국내 자본시장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필요하지만 이와 같은 열풍에 휘말려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확산되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참여 필요
박 교수는 먼저 투자를 위임한 사람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어떤 제도나 장치를 고민할 때 ‘확실한 근거’가 아닌 ‘막연한 경향’에 기대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착한 투자’를 하는 기업이 실질적으로 재무적 성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를 많이 인용한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그러한 경향이 있지만 앞으로 조금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박 교수는 미국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창업자를 예로 들었다. ‘테라노스 스캔들’로 사기꾼으로 전락한 엘리자베스 홈즈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만 해도 ‘착한 경영’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막말 논란과 기행 등으로 비난을 받은 적이 많았다. 다시 말해 ‘착한 투자’와 ‘경영 성과’의 상관관계는 이처럼 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않으면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전문성’의 문제라기보다 ‘상식’의 문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투자 기관이 정치와 여론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명확한 가드레일을 제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투자 기관이 기업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식의 내비게이터가 돼선 안 된다.


현재 국민연금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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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참여 필요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