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등 파고 견디며 반백년 성장 이어 가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식품업계의 역사를 얘기할 때 1969년은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의미 있는 해다. 현재 국내 식품업계를 이끌고 있는 4곳의 대기업이 바로 50년 전인 1969년 탄생했기 때문이다.
동원그룹·오뚜기·한국야쿠르트·매일유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1973년·1978년)와 19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1998년) 위기, 2000년대 글로벌 금융 위기(2008년)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며 올해 마침내 50회 생일을 맞이했다.
이를 버티지 못하고 그간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지며 사라졌기에 이들 4개 기업이 걸어온 50년의 역사는 의미가 더욱 값질 수밖에 없다. 1969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5%를 기록하며 건국 이후 가장 급격한 발전을 이뤄 낸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소득이 늘어나는 등 ‘한강의 기적’이라는 초고속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해이기도 하다.
식문화에도 점차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배부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 먹을까’를 고민하며 식품을 소비하는 시대가 서서히 다가오는 조짐이 일고 있었다.
이때 설립된 오뚜기·야쿠르트·매일유업·동원 등 4개 기업은 그동안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템을 시장에 선보이며 국내 식품업계를 서서히 장악해 나갔다.
◆1.전에 없던 아이템으로 승부하다
당시 시장을 들여다보면 기존 식품 기업들이 내놓은 제품들은 다양한 맛을 추구하기보다 라면·과자·빵 등 생존을 위한 먹거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뚜기가 던진 승부수는 다소 의외였다. 1969년 즉석 분말 카레 제품인 ‘오뚜기 카레’를 국내에 내놓으며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인도 전통 음식인 카레는 1940년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특유의 강한 냄새와 생소한 맛 때문에 대중화에 실패했다.
이를 파악한 오뚜기는 한국식 카레를 개발해 대중화에 뛰어들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 매콤한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겨냥한 카레 제품을 만들고 시장을 파고들었다.
카레 외에 스프·케첩·마요네즈 등도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뚜기는 당시에 낯설었던 외국 식품들을 자체적으로 생산해 판매해 주목받으며 빠르게 이름을 알려 나갔다.
한국야쿠르트도 1971년 국내 최초의 유산균 발효유 제품을 출시하며 식품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국내 발효유의 상징이자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셔봤을 ‘야쿠르트’를 통해서다. ‘작은 한 병에 건강의 소중함을 담았다’고 제품을 홍보하며 발효유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건강식품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무했던 시절 야쿠르트는 ‘건강’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차별화된 행보를 펼쳤다.
음료의 범주를 맛에서 건강까지 확대한 기념비적인 제품이 바로 야쿠르트였던 셈이다.
야쿠르트는 발매 첫해 760만 개 판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90억 병이 팔리며 식음료 업계 단일 품목 최다 판매량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그 덕분에 야쿠르트는 국내를 대표하는 건강식품 기업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됐다.
매일유업은 오뚜기나 야쿠르트와 시작이 다소 달랐다. 이미 서울우유·남양유업 등 시장에 경쟁자가 존재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품질 향상에 초점을 맞춰 나갔다. 해외 선진 유가공 회사들의 기술 도입에 주력한 배경이다. 그 결과 1974년 국내 최초의 무균화 공정 시스템을 갖추고 이 기술을 적용해 상온에서 6주 보관할 수 있는 멸균 ‘팩 우유’를 출시했다.
보관 기간이 2~3일인 병우유가 주를 이루던 가운데 세상에 나온 팩 우유는 대중적인 식품으로 우유가 자리 잡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매일유업은 우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참치 캔의 대명사 격인 동원의 출발은 원양어업 회사였다. 임대한 선박을 타고 바다로 나가 참치를 잡은 뒤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 수출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던 1982년 국내 최초로 참치 살코기를 통조림에 담은 ‘동원 참치 캔’을 선보이며 식품 판매로 눈을 돌렸다.
고급 식재료인 참치는 가격이 비싸다. 이를 가공해 캔으로 만들어도 저렴하게 출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당시 업계에서는 국민소득 2000달러 이하인 나라에서는 참치 캔의 시장성이 없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 한국의 국민소득이 2000달러에 가까워지자 동원은 이를 재빨리 파악하고 어획한 참치를 상품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동원 참치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2.전략으로 편견을 이겨내다
새로운 제품을 들고나와 시장에 안착하는 과정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한식을 즐겨왔던 사람들에게 카레·케첩·마요네즈 등은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생소한 식품이었다.
유산균 발효유인 야쿠르트도 출시 초반 외면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반 사람들의 발효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균을 왜 돈을 주고 사 먹느냐’, ‘한국야쿠르트라는 기업이 병균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한다’는 웃지 못할 오해가 생겼다.
우유의 보관 기관이 2~3일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매일유업의 팩 우유는 ‘방부제 우유’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동원 참치 캔에 대해서도 “시장성이 있겠느냐”는 의문부호가 뒤따르기도 했다.
이런 의혹이나 여론에 개의치 않고 다양한 마케팅과 판매 전략을 내세우며 결국 편견을 깨버린 것도 4개 기업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다.
오뚜기는 첫 제품인 카레의 성공을 위해 그간 식품업계에서 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영업 방식을 꺼내 들었다. 영업 사원이 거래처를 직접 방문해 진열을 돕고 소비자와 대면하는 이른바 ‘루트 세일(route sale)’을 국내 최초로 실시한 것이다.
그렇게 현장 직원들이 직접 발품을 팔며 카레에 대한 인식을 서서히 바꿔 나갔다. 국내 최초의 시식 판매를 비롯해 차량 광고와 제품 박스를 활용한 광고 시행도 카레 판매 증가를 위해 오뚜기가 최초로 실시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현재 국내 영업과 마케팅 역사에 빠지지 않는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야쿠르트도 발효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한 끝에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방문판매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들은 직접 소비자를 만나며 견본 증정, 교육 자료 배포 등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공세적인 마케팅을 펼쳐 나갔다. 유산균의 과학성을 학술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 규모의 대규모 학술회를 여러 차례 개최하기도 했다.
매일유업도 제품 초기 발생한 오해를 씻어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75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임신·육아·출산에 관한 무료 정보 전달 프로그램인 ‘예비엄마교실’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요즘이야 여러 기업들이 고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며 시행 중이지만 당시엔 달랐다. 이윤 창출에만 몰두하던 국내 기업 풍토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예비엄마교실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4000여 회가 넘게 행사를 이어왔고 다녀간 이들만 300만 명이 넘는다.
동원도 참치 캔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알리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직접 찾아갔다. 참치 캔을 활용한 찌개나 샌드위치 등의 음식을 만들고 시식회를 열며 입맛 사로잡기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점차 참치 캔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동원을 대표적인 식품 회사로 도약하게 한 ‘효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3.새 도전으로 또 다른 결실을 보다
첫 성공에 안주하지 않은 채 끊임없는 시장 분석과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식문화’ 트렌드를 계속 만들어 간 것도 50년 넘는 기간 동안 이들 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분석이다.
오뚜기는 카레의 맛과 편의성을 보다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1981년 가정간편식(HMR)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3분 카레 요리’를 출시하면서 국민 브랜드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끓는 물에 3분만 넣으면 카레를 맛볼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들어 출시 첫해에만 400만 개가 팔려 나갔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카레뿐만 아니라 짜장과 미트볼 등 다양한 ‘3분 시리즈’를 개발해 내놓으며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식품 제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자 1987년 라면 시장에 진출하며 카레에 이은 ‘제2의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갔다. 진라면을 필두로 다양한 제품들을 매년 만들어 내며 지난해 라면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28%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매일유업도 유제품 시장 안착에 성공한 이후 새로운 시장에 눈을 돌렸다. 1988년 과즙 음료 ‘피크닉’, 1997년 국내 최초의 컵커피 ‘카페라떼’ 등 신시장 개척을 통해 다양한 히트 상품을 제조했다.
유제품 시장에서도 제품력 향상에 끈질기게 집착한 끝에 2005년 락토프리 우유인 ‘소화가 잘되는 우유’, 2008년 프리미엄 유기농 우유 ‘상하목장’ 등을 선보이며 선택의 폭을 넓혔다.
한국야쿠르트는 1976년 식품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균 연구’에 나섰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81년 자체적으로 제품 생산에 필요한 종균 배양에 성공했다.
야쿠르트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한 지 10년 만이었다. 연구소에서 직접 종균 공급이 가능해지면서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2000년)’, ‘쿠퍼스(2004년)’ 등 다양한 건강 발효유를 내놓으며 성장을 이어 갔다.
2014년에는 발효유를 넘어 커피 시장에도 손을 뻗었다. ‘콜드 브루’를 통해 단숨에 시장에 안착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동원 역시 참치 캔을 시작으로 1986년 ‘양반김’을 내놓으며 제품군을 확대해 나갔다. 1992년에는 국내 최초 즉석 죽인 ‘양반죽’을 출시해 해당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이어오고 있다.
동원은 인수·합병(M&A)을 통해 2005년 유가공 시장에도 발을 내디뎠다. 덴마크식 정통 살균 우유인 ‘덴마크 우유’와 치즈·요구르트 제품 등을 선보이며 꾸준히 인기몰이 중이다.
향후에도 도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4개 기업은 올해 50주년을 맞아 저마다 내부적으로 새로운 전략 구상이 한창이다. 제품 개발과 혁신 등을 통해 다시 한 번 시장과 업계를 뒤흔들 제품을 내놓으며 ‘100년 식품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청사진을 하나하나 그리고 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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