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의 조직 문화 혁신.. 공유 오피스 시스템 도입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SK이노베이션이 공유 오피스 실험에 돌입했다. 서울 종로 서린동 사옥에서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1일 1차 공유 좌석제 시행 이후 공사가 마무리되면 잠시 자리를 떠난 계열사까지 포함해 완전한 공유 좌석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공유 오피스를 일하는 방식의 혁신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 여성 친화적인 기업 문화를 제도로 정착하는 등 일하기 좋은 조직 문화의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홍보팀에서 근무하는 정희정 사원의 하루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켜면서 시작된다. SK 사내 앱인 ‘온 스페이스’에 접속해 그날 일할 자리를 선택하면서다. 출근 30분 전부터 좌석을 예약할 수 있다. 앱으로 체크인했다면 건물 1층에서 일종의 출근 도장을 찍는다. 출입증 카드를 찍는 동시에 책상의 전자 명패에 자동으로 이름이 새겨지면서 그날의 지정석이 확정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사물함 존’으로 향한다. 이곳에선 각자의 짐을 개인 로커에 매일 보관해 사용한다. 책과 노트북 등 책상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모두 사물함에 보관돼 있다. 개인 로커는 거의 고정적으로 사용하지만 앱을 통해 맞교환도 가능하다. 개인 로커 옆 칸은 공용 옷장이다. 외투를 벗어 걸어 놓은 후 두 손 가볍게 책상으로 향한다. “짐을 간소화하는 것이 공유 오피스의 핵심”이라고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공유 오피스’로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고 있다. ‘일하는 공간이 바뀌면 일하는 방식도 바뀐다’는 경영 원칙을 전 임직원과 함께 실험 중이다. 기존의 ‘팀-실-본부’ 단위별 지정 좌석제가 아닌 원하는 자리에 앉아 일하는 방식의 사무실 형태로 탈바꿈했다.
지난 4월 1일 SK이노베이션 본사가 있는 SK서린사옥에서 1차 공유 오피스를 오픈한 이후 SK이노베이션·SK에너지·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소속 임직원들은 서린사옥 14~19층에서 소속 회사·조직 간 구분 없이 자율적으로 자리를 선택하고 있다.
매일 다른 좌석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한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해 초 신년사에서 일하는 공간의 혁신을 주문했다. 최 회장은 “근무시간의 80% 이상을 칸막이에서 혼자 일하면 새로운 시도나 비즈니스 모델 변화는 가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연히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동료를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혁신 오피스 실험은 그룹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초 SK는 사무 공간 혁신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미국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사무실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서린사옥의 대대적인 리모델링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다. 이와 함께 사옥 맞은편 그랑서울빌딩에서 공유 좌석제를 먼저 시도했다.
서린사옥에서도 1차 공유 좌석제가 시행된 후 약 두 달이 흘렀다.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기 위해 공유 오피스 형태로 탈바꿈한 SK이노베이션은 임직원들이 빠르게 적응해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오피스에서 각 부서별로 나뉜 사무 공간, 매일 보는 얼굴들, 전형적인 대기업 사무실의 모습이 ‘아련한 추억’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롭게 선보인 공유 오피스는 ‘소통’과 ‘협업’을 늘리고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도입됐다. 이를 위해 자리 사이의 칸막이를 없애고 공동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을 조성해 ‘우연한 마주침’을 유도하고자 했다. 날마다 다른 회사, 다른 조직의 임직원을 만나 다른 시각을 나누자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5월 29일 오후 서린사옥 15층에 들어서자 조명과 음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음악은 카페에서 들려올 법한 이루마의 ‘키스 더 레인(kiss the rain)’이었다. 휴게 공간으로 보이는 널찍한 라운지에선 노트북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공식 업무 공간”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임직원들이 근무하는 공간인 워킹존은 크게 두 개로 분류돼 있다. 개별 근무 공간인 포커스존과 공유·협업 공간인 라운지가 그것이다. 라운지 공간은 백색소음 상태에서 업무에 더 집중하는 직원들을 위해 늘 음악을 틀어 놓는다. 책상도 갑갑한 칸막이 형태가 아니다. 1인용·2인용·긴 테이블 등 다양한 형태의 책상과 의자·소파가 있다. 지정 좌석이 있는가 하면 예약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유 공간도 확보했다.
한쪽에는 식음료 코너도 있다.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의 시리얼과 빵·토스트기·커피머신·우유·주스 등이 구비돼 있다. 서린사옥의 공유 오피스는 친환경을 지향하는 에코 오피스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운동인 ‘아그위그(I green We green)’를 시행 중이다. 일회용 컵이 아닌 공용 머그컵과 식기 세척기가 한쪽에 놓여 있다.
회의실은 투명한 유리창으로 답답한 느낌을 줄였다. 종이를 아끼는 페이퍼리스 운동의 일환으로 모든 회의실에는 전자 칠판을 도입했다. 또 출력물을 이용하기보다 메일 커뮤니케이션과 대면보고, 팀룸 뷰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회의에 앞서 문서를 사전 공유하면서 불필요한 회의 시간을 줄이는 것도 공유 오피스 도입과 함께 박차를 가하는 부분이다.
또 하나의 업무 공간인 포커스존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구성됐다. 유리창을 열고 들어선 공간은 기존 사무 공간과 비슷한 풍경이다. 단 파티션은 없다. 가장 앞쪽에 벌집 모양의 파티션 몇 개를 제외하면 널찍하게 열린 공간이다. 각 자리는 싱글 모니터, 듀얼 모니터 등으로 구분돼 있다. 또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모션 데스크로 서서 일하고 싶은 임직원을 배려했다.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임원들은 고정된 집무실에서 근무한다. 단 임원 집무실의 전체 규모를 기존 대비 3분의 1 규모로 축소했다. 또 기존에 회사별, 유관 부서별로 모여 있던 것과 달리 랜덤으로 집무실을 배정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 역시 일정 기간마다 변경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온 스페이스’ 앱에는 다양한 기능이 포함돼 있다. 좌석 예약 관리를 할 뿐만 아니라 층별 좌석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같은 팀원들이 어느 곳을 선택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피해 앉을 수 있는 권리’가 개개인에게 주어진 것이다. “팀장과 떨어져 앉으면 업무 집중도가 높아진다”고 한 직원은 귀띔했다.
문용관 SK이노베이션 SHE본부 과장은 “일하고 싶은 좌석 유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왜 좋은지 공유 오피스를 통해 느끼게 됐다”며 “평소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팠는데 모션 데스크 좌석에서 서서 일하다 보니 업무 효율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더 집중이 필요할 때는 칸막이 좌석으로 이동해 일하곤 한다”고 말했다.
민선홍 SK에너지 아스팔트사업부 사원은 회사의 가장 큰 장점으로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꼽았다. 입사 2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팀에서 영상 제작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실제 팀장 역할을 하며 업무를 주도하기도 했다. 민 사원은 “김준 사장님 취임 이후 ‘할 말 하는 문화’가 강조되고 있다”며 “특히 공유 오피스에서는 기존과 달리 자리에 따른 위계가 없어 상사에게 보고하러 가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고정된 자리가 없다면 매일 자리는 어떻게 정할까’, ‘거래처 등에서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는 어떻게 받아야 할까’ 등 공유 오피스를 생각하면 자주 하는 질문에 SK이노베이션은 “슬림&스마트”라고 대답한다.
임직원은 필요에 따라 라운지와 싱글·듀얼 모니터 등의 자리를 선택한다. 예약 후 출근하면 예약한 좌석에 전자 명패가 나타난다. 전화도 사내 앱을 이용한다. 오피스 폰(Office Phone)이란 이름의 앱을 사용해 본인의 휴대전화로 사내 전화의 착발신을 이용한다. 앱을 통한 통화는 사내 인터넷망을 통해 운영돼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일하는 방식과 함께 SK이노베이션은 전반적인 조직 문화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우수한 기업 문화가 성장의 토대”라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여성·가족 친화적인 기업 문화도 그중 하나다. SK그룹에선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매우 중요하다. SK이노베이션은 “가족이 행복해야 구성원이 행복하고 구성원이 행복해야 기업이 행복하다”는 생각에서 구성원과 구성원 가족의 행복을 제도화 하고 있다. 말로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임신기 또는 출산기에 있는 여성들을 위해 최대 1년 반의 충분한 휴직기(무급 3개월, 유급 1년 3개월)를 보장하고 있다. 이는 크게 출산 전 휴직, 출산 휴직, 육아 휴직 총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임신 초기 또는 출산 직전에 있는 여성들에게 최소 1개월, 최대 3개월의 ‘출산 전 무급 휴직’을 제공한다. 임신 초기 안정이 필요한 시기나 임신 후반부 출산 휴직에 붙여서 사용할 수 있다. 이어 ‘출산 휴직’은 최대 90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여성 구성원이 출산 휴직을 신청했을 때 ‘육아휴직’ 1년이 자동적으로 같이 신청되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출산 휴직에 더해 육아휴직을 모두 사용하고 복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출산 휴직과 육아휴직 중이라도 평가나 승진상 불이익이 없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위해 당해에 6개월 이상 휴직했을 때 그해의 인사 평가 대상에서 제외해 평가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자녀 초등학교 입학 무렵 하루 4시간 근무 가능
육아휴직과 별도로 만 9세 이하 자녀를 가진 임직원들은 자녀당 최대 1년까지 ‘육아기 노동시간 단축제’를 사용할 수 있다. 육아를 위해 하루 4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제도다. 이때 급여는 노동시간에 비례해 지급된다. 실제로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에 이 제도를 많이 활용한다. 모든 육아휴직과 육아기 노동시간 단축제는 남녀 임직원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또 SK이노베이션은 임신·출산 중에 발생하는 진료·검사·분만 관련 모든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사내에서는 ‘SK 행복 어린이집’도 운영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며 만 1세부터 만 4세 사이 원아를 보육한다. 사내 어린이집과 육아기 노동시간 단축제 등을 활용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이경진 SK이노베이션 홍보실 부장은 “여성 리더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후배들도 커리어 관리에 동기부여를 하곤 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플렉서블 타임 제도’를 운영하면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주고 있다. 플렉서블 타임제도는 출근 시간을 오전 7~10시, 퇴근 시간을 오후 4~7시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긴 휴가를 장려하는 ‘빅 브레이크(Big Break)’도 있다. 근무일 기준 5~10일(주말 포함 시 최대 16일)의 휴가를 갈 수 있는 제도로 2016년 도입됐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의 휴가 소진율은 97%에 육박했다. 또 상사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원하는 때에 자유롭게 휴가를 떠날 수 있도록 제도로 만들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3월 이후 팀장 결재 없이 ‘본인 기안 후 본인 승인’ 절차를 통해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휴가 신고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기존에는 팀장에게 구두로 휴가 날짜를 알린 뒤 그에 대한 결재를 올리는 방식으로 중복 승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면 직접 자신의 휴가 사용을 승인하고 그에 대한 알림 메일이 소속 팀의 팀장과 유관 부서 팀원들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구성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업 문화 개선은 계속될 것”이라며 “일할 때는 효율적으로 패기 있게 일하고 쉴 때는 누구보다 신나게 놀 수 있는 사내 분위기를 계속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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