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삼성, ‘반도체 강국’ 미래 건 투자 나서…각자도생 벗어나 협력 생태계 구축이 관건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린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자 수출 1위의 효자 업종이었다. 중국이 쉽게 넘보지 못한 산업이 바로 메모리 반도체였다. 그렇게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반도체이지만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메모리 업황이 출렁거릴 때마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 갔다.
‘비메모리 반도체를 육성하자’는 아이디어는 그렇게 나왔다. 반도체 산업을 들여다본 결과 메모리보다 약 2배 큰 시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이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들어내면 마이너스 성장인 한국 경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비책은 없을까. 잘하고 있는 분야에서 기술 자산을 발판 삼아 비메모리 반도체의 저변을 확대해 보자는 판단에 따라 4월 30일 ‘시스템 반도체 비전과 전략’이 발표됐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로도 불린다.
2030년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5대 중점 과제는 팹리스·파운드리·생태계·인력·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팹리스 분야에서 대대적인 수요 창출, 전용 펀드 신설, 스케일 업 지원, 원스톱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 중심을 이룬다. 파운드리 분야에선 하이테크의 대기업과 미들테크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중견기업을 구분하고 기업의 투자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세제·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나왔다.
이와 함께 공동 상생 협력 생태계를 조성하는 한편 계약학과를 신설해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도 수립됐다. 또 향후 10년간 1조원 이상 기술 투자를 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총 5개 분야의 지원을 통해 2030년까지 파운드리 세계 1위, 팹리스 시장점유율 10% 달성, 2만7000명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 계획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8년 ‘시스템 반도체 2010’, 2011년 ‘시스템 반도체 2015’ 사업이 추진된 바 있다. 이를 통해 디스플레이 구동칩(DDI)과 이미지 센서 등 일부 품목에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있지만 산업의 근본적 체질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전문 인력 부족 문제는 늘 제기됐고 무엇보다 생태계의 경쟁력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세 번의 지원책, 이번엔 다를까
2019년 다시 한 번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엔 뭐가 다를까. 관건은 생태계에 있다. 팹리스·파운드리와 조립·검사로 이어지는 비메모리 생태계가 구축되고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춰야만 일자리 창출과 비메모리 반도체의 저변 확대가 가능하다는 데 전문가의 의견이 모아진다. ‘얼라이언스 2.0’을 통해 기업 간 연계를 하고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른 대목이다.
외부 환경의 변화도 맞이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반도체 수요가 PC와 스마트폰 이외의 분야로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로봇·에너지·바이오 등 신산업으로 확대되면서 데이터 연산과 제어 기능을 필요로 한다. 메모리 반도체가 ‘저장’ 기능을 담당한다면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의 연산·처리·해석 등 논리적인 정보 처리에 사용된다. 기기의 ‘두뇌’ 역할로, 사람이 명령하지 않아도 자동차 등 다양한 기기에 내장돼 최적의 운영 조건을 유지하고 관리한다. 중앙처리장치(CPU)와 같이 특수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고도의 회로 설계 기술을 필요로 한다.
메모리 반도체가 D램과 낸드플래시로 두 종류인 반면 메모리 반도체 이외의 모든 반도체가 비메모리로 분류된다. 메모리는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반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생산이나 고부가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와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로 분업 구조를 갖는다는 점에서 차별적 특성이 있다. 팹리스 앞단에는 반도체 지식재산권(IP)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반도체 IP 개발 기업도 있다. 후공정으로 불리는 조립·검사 영역에서 테스트·패키지 회사들도 다함께 밸류 체인을 구성한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 편중 구조로 육성되는 동안 비메모리 반도체 관련 업체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 왔다. TSMC라는 글로벌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가격 경쟁력을 갖는 대만, 역시 강력한 정부 지원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국과 비교할 때 특히 한국의 팹리스 업체들은 수요처를 다변화하거나 해외시장을 개척한 몇 개사를 제외하고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10년 사이 대표 기업이 바뀌기도 했다. 10년 전 팹리스 1위였던 엠텍비전은 증시에서 퇴출됐고 2위 코아로직은 다른 업체와 합병해 업종을 바꿨다.
국내 반도체업계 전문가는 “한국은 글로벌 파운드리인 삼성전자도 있고 전 세계 패키지 물량의 상당수를 포함하는 ASE코리아와 엠코코리아 등 걸출한 기업들이 이미 존재하지만 협력이 전혀 되지 않고 각자 살길을 찾아 왔다”며 “주요 기업들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구축해 순환 고리를 만들고 합리적인 가격정책으로 동반 상승하는 시너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새로운 도전…133조원 풀린다
비메모리업계에서는 ‘삼성의 두 얼굴’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삼성의 파운드리 비즈니스의 주요 고객은 애플이었다. 연간 7조~10조원 정도의 물량을 소화하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그런데 애플이 대만의 TSMC와 손잡을 때 국내 팹리스 기업의 1조~2조원어치의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문제는 비정기적인 개방으로, 매년 상황이 바뀐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최근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면서 정기적인 개방에 나섰다.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로 파운드리 비즈니스를 확대할 방침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4월 24일 발표한 ‘반도체 2030 비전’은 정부 정책과 맞물려 국내 비메모리 전망을 밝게 한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1만5000명을 채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30년까지 연구·개발(R&D)에 73조원, 생산 시설에 60조원 등 총 133조원을 투자하고 국내 중소 반도체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국가 시스템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강화한다는 게 골자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시장을 주도하며 대한민국 경제를 받쳐 왔지만 더 큰 시장인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새로운 기회와 성장 가능성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극자외선(EUV) 7나노 제품을 세계 최초로 4월 말 출하했고 5나노 로드맵을 밝힌 바 있다. 파운드리에서도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고 신규 파운드리 라인을 추진하면서 생산량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5G 모뎀 솔루션, 차량용 반도체(엑시노스 오토, 아이소셀 오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관련 분야로도 팔을 걷어붙인 상황이다.
비메모리 생태계의 두 축인 팹리스와 파운드리에서 현재 세계 1위는 각각 퀄컴과 TSMC다.
정부 정책과 기업의 미래 비전이 모두 비메모리를 향하면서 한국발 비메모리 전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선두에 삼성전자가 있다. 여기에 국내 파운드리 4사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DB하이텍·매그나칩반도체와 약 100~150개로 추정되는 팹리스 업체들이 가세한다. 한국은 메모리를 넘어 비메모리 반도체로 우뚝 설 수 있을까.
국내 한 반도체 전문가는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은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메모리 편중 구조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집중 공략, 대전환하는 길목에서 효과적인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경비즈니스는 이에 따라 비메모리 반도체의 주요 축인 팹리스 업체와 파운드리 현황을 살펴보고 삼성전자의 전략, 연구 기관의 동향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 charis@hankyung.com
[커버스토리=메모리에서 비메모리로, 반도체 대전환 플랜 기사 인덱스]
-'4차 산업혁명의 주역' 비메모리 반도체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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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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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8호(2019.06.10 ~ 2019.06.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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