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방 경제는 얼어 붙은 지 오래다. ‘아베노믹스’ 7년의 성과도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지방 경제의 회복과 부활에 엄청난 정부 자원을 쏟아부었지만 대부분은 기대보다 탐탁하지 않은 성과다. 가성비로는 불합격에 가깝다.
뒤집으면 그만큼 지방 경제가 장기간에 폭넓게 망가졌다는 의미다. 이 와중에 몇몇은 극적인 상권 부활에 성공해 화제를 모은다.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의 흐름을 이겨낸 모범 사례다. ‘TV도쿄’ 등 일본 언론도 주목한다. 방치된 그저 그런 지방 동네에서 외지인이 찾아오는 새로운 명소로 변신한 사례를 집중 발굴한다. 지역 경제를 되살린 묘수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지역 동네를 관광지로 바꾸는 전문 회사도 등장해
일본 정부도 적극적이다. 내수 진작과 청년 고용, 인구 확보, 특구 설치 등 지역 재생 전담의 지방창생장관까지 임명해 공을 들인다. 특별교부세를 확보해 지역발 부활 계획에 차등적인 경쟁 체제도 구축했다. 총리 직속의 내각부를 비롯해 관련 부처의 지원과 표창도 잇따른다. 방향은 하나다. 도시 집중 현상과 지방 과소에 브레이크를 걸겠다는 취지다.
영향력이 큰 NHK 등 방송은 지역에 특화된 드라마와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지역 활성화’를 주제로 그 속에서의 고군분투를 스토리에 반영하는 식이다. 사실상 가용 가능한 전체 자원을 지역 부활에 집중 배치하는 형국이다. 지방이 무너지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돋보이는 상징 사례는 이와테현의 소도시 구지시다. 산지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과소 도시였던 이곳은 몇 년 새 국내외의 수많은 관광객과 시찰자를 불러모으는 유명 성지로 승격됐다. 1700여 기초지자체 중 독보적이다. 2013년 NHK 연속 드라마 소설 ‘아마짱’의 무대로 전국 방송을 탄 게 주효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로케(로케이션 : 현지 촬영) 지역을 찾는 발길은 여전하다. 사람이 몰려드니 돈이 흘러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지역은 오랜만에 건강한 순환 경제를 되찾았다. ‘로케투어리즘’의 성과다. 방송은 끝나도 기억은 남는다.
지금도 해녀역의 주인공처럼 직접 잠수해 해산물을 눈앞에서 채취하고 판매한다. 가령 개당 1000엔(약 1만1000원)인 성게 알은 잡히자마자 경쟁적으로 팔려 나간다. 방송 전후 지역 경제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와테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첫해의 관광 소비액만 31억 엔(약 344억6000만원)에 달했다. 지금도 비슷한 경제 효과라는 후문이다. 스토리의 힘이 보잘것없는 몰락 도시를 부활시킨 셈이다.
로케 유치를 통한 재생 실험의 성공은 벤치마킹으로 연결된다. 영화 등 로케 유치를 지원하는 지자체도 올해 7월 기준 335개로 급증했다. 해외에서의 문의도 잇따른다. 로케 후보지를 소개하거나 촬영 장소, 보조 출연 등의 조정과 교섭까지 해준다.
2016년 아키타현의 자연경관을 무대로 찍은 태국의 TV 드라마는 태국 관광객을 급증시켰다. 방송 이전 태국 숙박객은 1700명이었는데, 이후 4040명까지 늘었다. 계절 변화가 없는 동남아에서 사계절은 충분한 관광 유인으로 작용했다. 관광자원이 없는 지자체로선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사이타마현 니자시는 2018년 청사까지 촬영 무대로 제공하면서 한 해 12건의 로케 기록을 세웠다. 관광지로 변신하려는 노력이다. 이 밖에 옛날 그대로의 날것을 내세워 부활을 꿈꾸는 시도는 셀 수 없이 많다.
전문 회사도 등장했다. ‘지역활성플래닝’은 지역 동네를 방문 성지로 바꾸는 사업 모델로 유망 회사가 됐다. 과소 지역과 방송 제작자를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사업 모델이다. 공간과 장소의 매칭뿐만 아니라 로케 유치를 위한 컨설팅까지 진행한다. 맞아떨어지는 곳은 한 해 50건 이상 로케 성과가 나온다. 로케 이후엔 지속적인 관광 유치를 위한 후속 작업도 진행한다.
한국에서도 방영된 영화 ‘어느 가족’의 로케 지역인 이스미시와는 지역상공회의소와 연계해 새로운 명물 음식 순례 코스를 개발했다. 잡지 발행과 판매 사이트까지 뒤따른다. 이스미시는 영화 개봉 후 3개월에 30억 엔(약 333억5000만원)의 경제 효과를 올렸다. 단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한다. 거액을 들여 매칭 컨설팅을 받았지만 로케 성과가 없거나 기대했던 반향이 적어 후회하는 곳도 생긴다.
멀고 불편하고 스산하며 춥고 더운 지역 공간이 새로 변신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을 불러 모으기는 기본적으로 힘들다. 반짝하고 끝날 염려도 상존한다. 그만큼 정교한 수급 매칭과 정밀한 연계 장치가 필수다. ◆한 달 만에 6만 명 방문한 ‘라면과자 테마파크’
미에현 쓰시도 그만그만한 기초지자체 중 하나다. 좋은 입지로 현청 소재지가 됐지만 관광 측면에선 이렇다 할 스폿이 없다. 이곳 전원 지대에 2019년 독특한 황색 건물이 들어섰다. 간식거리 전문 메이커 ‘오야쓰컴퍼니’가 오픈한 테마파크형 간식 타운이다. 인접한 공장 견학까지 세트로 가능하다. 3층의 옥내 시설은 일본 최대급 활동 시설을 갖췄다.
공통 테마는 주력 제품인 ‘라면과자’다. 1959년 창업 이후 3대에 걸쳐 사랑받는 전국구의 ‘롱셀러’ 과자다. 외국계 펀드에 경영권을 넘긴 2대 사장이 사재로 간식 타운을 세웠다. 생각보다 부지는 작다. 3967㎡(1200평)다. 아무리 둘러봐도 테마파크가 들어설 공간도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역 감사와 고객 환원이다.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초기란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만족도가 높고 입소문을 탔다. 지역민은 물론 외지인까지 물어물어 찾아온다.
회사도 사활을 건다. 성공 경험을 갖춘 테마파크 운영 전문가를 초청해 효율적인 집객 전략을 실천한다. 차별화된 전략 중 핵심은 ‘체험’이다. 원래 라면과자는 즉석면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조각 라면에 소금·간장 등 맛을 입혀 히트 상품이 됐다. 생산 현장의 노동자가 버리기 아까워 제품화를 시도한 게 주효했다.
방문객에게도 이 경험을 선사한다. 본인이 직접 취향에 맞춰 맛부터 색까지 각양각색의 맞춤 과자를 만들도록 했다. 실현되는 맛의 종류만 20가지다. 게다가 손쉽다. 사 먹는 즐거움에서 체험하는 즐거움을 구체화한 덕분이다. 본인만의 경험 소비인 셈이다. 최근 인기인 ‘물건 소비→경험 소비’의 지방판 혁신 실험인 셈이다.
기초지자체는 엎드려 절할 판이다. 지역 전체가 사람을 불러 모으자는 전략으로 화답한다. 오픈 1개월에 6만 명의 방문 성과가 뒷받침한다. 지자체는 교통 노선 신규 개설 등 적극적인 유치 지원에 나섰다. 인구 28만 명의 기초지자체가 연간 40만 명의 집객 목표를 내건 프로젝트에 힘을 보태는 것은 당연지사다.
주변 상권도 팔을 걷어붙였다. 상점가는 물론 인근 온천까지 모처럼의 외부 발길을 유도하고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부가·연결 코스를 내건다. 간식 타운에 납품되는 물건도 지역 한정품 위주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숨겨진 매력을 찾아내면 사람과 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았다는 점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6호(2019.10.14 ~ 2019.10.2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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