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정치인]
-새 정치세력으로 신당 추진 들고나온 이정현 무소속 의원
-“국이 상했으면 국물만 아니라 건더기와 국그릇 통째로 갈아야”

"4차 산업혁명 시대 걸맞는 인물 대변혁 뒤따라야 현장 경험 풍부한 전문가 그룹, 정치 세력화 절실 미래 세대 위해 20~30대 대거 국회에 들어와야"
이정현 의원 “정치권에서 필요한 건 물갈이가 아닌 판갈이”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지난 3년 가까이 공개 활동을 삼가 온 이정현 의원(무소속)이 최근 목소리를 부쩍 높이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판 갈이론’을 들고나오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꼽힌 그는 2016년 12월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대표에서 물러났고 이듬해 1월 탈당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물갈이로는 정치 개혁과 쇄신이 요원하다며 판 자체를 갈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자유한국당 입당 요청을 뿌리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 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도 들고나왔다.

-역대 총선 때마다 상당히 물갈이를 했는데도 우리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두 가지로 봐요. 첫째는 시대적인 과제를 제대로 도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독립, 건국 시기엔 자유민주의 확립, 빈곤 시대에는 산업화, 권위주의 시대엔 민주화라는 각각의 시대적 과제가 있었습니다.

헌정 72년 동안 이러한 시대 과제를 분명하게 도출했고 지금까지는 잘해 왔다고 봅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 이후 문재인 정권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 시대 과제가 100인 100색이에요. 선진화·통일·정상화·공정·공평 등 제 각각이죠. 시대 과제를 제대로 도출하지 못했어요.”

-둘째는 뭡니까.

“시대 과제를 추진해 나갈 정치 주체 세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산업화·민주화 이후 새 주체 세력을 만들지 못하다 보니 구습에 젖은 정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선거때마다 30~50% 물갈이 해왔지만 정치는 쇄신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국이 상했는데 국물만 갈아선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배탈이 계속 날 수밖에 없어요.

상한 건더기와 함께 국그릇을 통째로 갈아야 합니다. 판갈이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잘못 그려진 그림은 덧칠할 게 아니라 도화지 자체를 갈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물갈이가 아닌 판갈이를 해야 미봉이 아닌 근본적인 정치 개혁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주체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판갈이를 못하다 보니 기존 정치를 해 왔던 다선(多選) 의원들이 주요 당직을 맡게 되면서 구태 정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선수(選數)가 많은 사람들이 몸에 밴 구태적인 인식을 가지고 당과 국회를 이끌다 보니 초·재선 의원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의미가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물갈이를 한다는 것은 선거에서 약간의 신선함을 줄지는 모르지만 정치 개혁과 쇄신으로 연결되지는 못합니다.”

-어떤 인물들이 정치권에 들어와야 합니까.

“정치 수요자인 국민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정치인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등을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의 대변혁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걸맞은 인물의 대변혁도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이를테면 지금 남북한 문제가 글로벌 이슈화돼 있습니다. 외교가 아주 중요한 상황이지만 국회의원 가운데 외교관 출신이 한 명도 없어요. 이래서는 제대로 된 외교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예요. 대한민국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인데도 국회에 제대로 된 경제 전문가가 없는 실정입니다.

특히 현장 경험이 있는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관련 전문가들이 국회에 들어와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과학자들도 거의 없어요.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젊은이들의 창의력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교육 개선이 필요한데 관련 전문가들이 거의 없습니다. 문화·예술·체육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야를 제대로 뒷받침할 전문가들이 거의 없어요.

더 안타까운 것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데 국회의원 가운데 20대는 한 명도 없고 30대도 극소수(3명)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기성, 중·장년들이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부응할 수 없다고 봐요. 종합하면 현장 경험이 있는 전문가 그룹과 미래 세대에 해당하는 젊은이들이 대거 정치에 들어와야 합니다.

운동권·변호사 등 엘리트 층의 일부가 아니라 전문화·세분화된 세상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에서 들어와야 실질적인 대의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국회가 그렇게 구성돼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고 특히 미래 세대를 키우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20대에서 국회의원이 20명 이상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정 정도 세(勢)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40대 이하가 국회의원의 60%(180명) 이상은 돼야 합니다.”

-정치 자질을 갖춘 젊은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새 정치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사전에 국민운동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미생모)’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여러 계층·지역·분야 등에서 ‘미생모’들이 각자 미래를 생각하는 조직을 만들자는 겁니다.

이러한 ‘미생모’가 구성되고 여기에서 각자가 많은 토론과 얘기를 한 뒤 특정 시점에서 블록체인화해 전국의 ‘미생모’들의 정책적 제안과 목소리를 모으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젊은 인재들을 발굴해야 합니다.

20대 중에 정말 미래 대통령·국회의장·장관으로 키울 수 있는 사람을 지금부터 발굴해 그런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한국도 유럽처럼 30대 총리나 대통령이 나올 수 있습니다. 40대 기수론에 20, 30대 주축론이 나와야 합니다.

지금 젊은이들 가운데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비틀스에 비견되는 유명한 가수도 나왔어요. 젊은 사람들 중에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고 봅니다. 20대 과학농들이 부농(富農) 반열에 올라 있어요. 그런 사람들 중에서 훌륭한 인재들을 발굴해 키우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인재들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도 각 정당들이 젊은이들을 영입해 왔고 2004년엔 30대 젊은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들어왔습니다.

“각 정당이 젊은 세대를 영입해 왔다고 하지만 지금 정치권에 40대 이하는 거의 없는 상태예요. 젊은이들을 영입했다고 해도 장식용·선전용에 불과했습니다. 세를 형성해 목소리 낼 수가 없었어요. 적어도 교섭단체 형성 기준인 20명 정도는 돼야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대의제에 맞게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영입된 것이 아닙니다. 운동권에서 대거 들어오니 국회 대결 구도가 심화되고 한쪽으로 편중된 목소리만 나온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정치권 기득권이 두꺼워 판갈이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36년간 정치를 해 오면서 정치인들의 말과 실제가 달라 크게 실망했습니다. 말로는 민주를 얘기하면서 사실은 민(民)을 졸(卒)로 본다는 점입니다. 선거로 당선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해놓고 당선돼 꽃목걸이를 거는 순간 바로 갑으로 돌변해 국민을 졸로 보는 것이 정치인들의 습성입니다.”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지금 정치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쇄신이고 쇄신은 그저 바꾸고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부숴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무엇을 부수느냐가 중요해요. 지금까지 물갈이는 기득권을 연장하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그쳤어요.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완전히 부숴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 위해선 새 정치 세력을 형성해야 합니다. 미래 세대들이 새 미래 지향적인 방식과 내용으로 미래 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기득권을 부술 수 있고 시대를 전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정치의 또 하나 문제점은 대통령은 왕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헌법엔 민주주의 국가로 돼 있는데 실제적으로는 청와대 중심 국가로 운영하고 있어요.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것도 시급합니다.”
이정현 의원 “정치권에서 필요한 건 물갈이가 아닌 판갈이”


-추진하고 있는 신당은 잘돼 갑니까.


“새로운 정치 세력의 종착점은 결국 정당 형태가 돼야 합니다. 1월 말까지는 전문가들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주축이 된 새로운 정치 세력화에 주안점을 둘 예정입니다. 그런 뒤 정당의 형태로 발전시켜 내년 총선 때 그 세력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게 할 계획입니다.”

-신당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캐치 올 파티’, 즉 ‘포괄정당’입니다. ‘포괄정당’은 진보와 보수가 한 당 안에 포함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보수당의 정책과 노동당의 정책을 섞어 제3의 길을 만들어 냈죠. 또 독일에서는 보수의 기민당과 진보의 사민당이 연대해 14년째 집권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39세 때 진보당과 보수당 국회의원 한 명도 없는 정당, 즉 전진당을 창당해 유럽의 새 강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자민당은 진보와 보수를 끌어안고 63년째 집권하면서 강대국으로 부상했어요. 이제 새로운 정치 세력이 지향해야 할 가치는 진보와 보수를 한 당 안에 다 품는 것입니다. 영·호남,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뿐만 아니라 반공 좌파도 우파와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친북 좌파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하나가 돼야 합니다.”

-융합이 잘될 수 있을까요.

“정치 지도자들의 탐욕만 버리면 못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친북 좌파는 100만 명도 안 됩니다. 우리 국민 중 2%도 안 돼요. 이들을 제외하고 진보와 보수를 다 끌어안는 정당이 탄생한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념적 간극이 큰 세력이 같은 당에서 함께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해 보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간극이 큰 세력들 간에 당 내부에서 격렬한 논의가 이뤄지나 완전히 다른 정당을 만들어 논의가 이뤄지나 어차피 어느 쪽도 조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 당, 한 조직 안에서 타협을 끌어내는 게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이제는 대결과 대립, 분열과 갈등에서 대화와 타협, 상생 쪽으로 가야 되는 시대가 됐어요.”

-신당에 참여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새누리당을 탈당해 지난 2년 11개월간 무소속으로 있으면서 전국 102개 시·군·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일반 국민의 대부분은 지금의 정치 행태에 대해 피곤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기존 정치 세력은 호수 위에 떠 있는 약간의 기름에 불과할 정도로 극소수이고 국민과 완전히 괴리돼 있어요. 그래서 지금이 새 정치를 시도할 적기라고 봅니다.”

-보수 야권이 통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야권이 쪼개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기득권이 갈라져 있다는 것은 스스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고 자신감이 없다는 얘기예요. 이것이 바로 기회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든다면 그것에 대한 열망이 훨씬 더 강해질 것으로 봅니다.”

-3선인 이 의원도 기득권 아닙니까.

“나조차 상한 건더기라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신당에 참여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심판을 받아 국민이 한 번 더 밑바닥에서 쌓아 온 정치 경륜을 토대로 정치를 제대로 바꿔 보라고 명령한다면 그때 참여할 것입니다.”

-정치권이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큽니다.

“선거 때마다 선거법과 선거구를 바꿨습니다. 전국체전 또는 월드컵에서 선수들이 출전할 때마다 룰을 바꾸고 골대를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축구가 발전하겠습니까. 제도와 룰이 잘못돼 한국 정치가 국민에게 불신 받고 있다고는 보지 않아요. 따라서 선거법을 바꾸는 것과 정치 개혁은 전혀 무관합니다. 룰을 만들어 놓으면 거기에 맞춰 선수들을 훈련시켜야지 기존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자꾸 룰을 바꾼다면 그게 제대로 된 스포츠입니까. 완전 불공정한 것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습니다. 탄핵 문제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탄핵에 대해 할 얘기가 하늘의 별 만큼 많지만 지금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누가 누구를 사면한다는 말입니까. 그 정도로만 얘기하겠습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3호(2019.12.02 ~ 2019.12.0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