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윤제 월드로봇코리아 회장
-“로봇은 모든 과학을 융합한 종합 기술이자 인공지능의 집약체
-인간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불어넣어 미래 富 창출하는 원동력”
“로봇을 선점하는 국가가 세계 경제 이끌게 될 것”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로봇이라면 죽고 못 사는 사람이 있다. 이윤제(70) 월드로봇코리아 회장이다. 이 회장이 32년에 걸쳐 세계 12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로봇은 3500여 점에 이른다. 그가 로봇 수집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한국의 전시 문화 사업 분야 1세대로 일하면서 일찌감치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그를 로봇 ‘덕후(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라고 부를 만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단순한 로봇 ‘덕후’가 아니다. 그의 지향점은 로봇에 관심을 갖고 전시하는 수준을 넘는다.

로봇은 인간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불어넣어 미래 부(富)를 창출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미래 트렌드인 로봇을 선점하는 국가가 세계 경제를 이끌게 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어릴 때 엑스포장에서 로봇을 본 뒤 과학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인간의 상상력에서 출발한 로봇은 이제 ‘미래 트렌드’의 핵심이 됐다.

디자인과 캐릭터 측면뿐만이 아니다. 모든 과학을 융합해 미래의 무궁무진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종합 기술, 인공지능(AI)의 집약체다.”

그는 평생의 소원인 로봇 종합 테마파크를 건립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소장품을 보고 꿈과 희망·상상력·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회장을 만나 왜 그렇게 로봇에 온 힘을 바치는지 물어봤다.
“로봇을 선점하는 국가가 세계 경제 이끌게 될 것”

-어떤 계기로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1970년대 특수철강(금형 자재) 사업을 했어요. 그런데 2차 ‘오일 쇼크’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후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해외 근무를 하게 됐죠. 원래 소품을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해외를 돌아다니며 로봇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전시 사업을 하면서입니다. 내 성격이 섬세하기도 하지만 전시 사업 특성상 특이한 소품(콘텐츠)·그림·사진 등이 보이면 수집, 연출할 기회가 많았고 내 취미와도 맞았습니다. 역사·인문·설화 등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스크랩하고 보존하는 열정도 남달랐다고 볼 수 있어요.”

-모든 전시 사업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기존 박물관 전시 형태는 대부분 유물이나 각종 역사, 민속, 향토적 문헌 자료들로 스토리와 내용을 전개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기록성 방법으로 전시하는 방식으로 건립하죠. 이와 달리 엑스포와 산업 전시회, 과학 전람회 등은 산업 발전의 미래 비전과 트렌드를 예시하고 상상할 수 있는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이벤트입니다.

나는 다행히 이런 종류의 전시업에 종사하다 보니 로봇과 같은 콘텐츠에 눈을 뜨게 됐고 그 가치를 알게 됐습니다. 박물관·과학관·홍보관·테마파크 등 다양한 전시 사업을 하면서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트렌드가 있는 주제가 무엇이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미래 문명의 과학·산업·기술·인문학적 상징성과 경제 가치를 가진 콘텐츠가 바로 로봇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죠. 역사·문화·산업을 종합적으로 구성해 조성하는 박물관 건립 사업을 오랫동안 하면서 콘텐츠 지식과 미래 전망, 방향을 감지한 행운이 로봇 콘텐츠 수집의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다양한 박물관 건립과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해외를 갈 때마다 각 나라의 문화와 콘텐츠 시장을 눈여겨본 뒤 수집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여정에서 1995년 콘텐츠 수집과 지식 등 결정적 길잡이 역할을 한 교수(컬렉터 전문가)를 만난 인연이 로봇 콘텐츠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로봇을 선점하는 국가가 세계 경제 이끌게 될 것”

-보유하고 있는 로봇이 3500여 점이나 되는데, 어떻게 수집했습니까.


“건설업·전시업을 하면서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어요. 120여 개국을 다녔는데 업무를 보는 틈틈이 눈은 로봇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골목을 쑤시고 돌아다니면서 수집했죠. 그 나라 신문과 잡지를 뒤져 갖고 싶었던 로봇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 설득하는 등 닥치는 대로 모았습니다. 내 전 재산과 열정, 청춘을 모두 쏟아부었죠. 한 점 한 점 수집한 뒷얘기와 애환·에피소드를 얘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사업을 오래 했지만 골프도 못합니다. 그만큼 로봇에 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로봇과 희귀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을 텐데요. 어떻게 충당했나요.

“로봇 한 점을 구입하기 위해 외국에 많이 갔는데 로봇 구입 가격보다 항공료·숙박료 등으로 훨씬 더 많이 지출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로봇을 평가할 만한 시장 가격이 형성되지 않아 가격 절충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우연히 구입한 것이 알고 보니 고가의 명품으로 판정받기도 하는 등 사연이 많습니다. 푼돈까지 다 쏟아붓는 바람에 50세가 넘도록 집 한 채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가족과 휴가 한 번 가지 못했어요. 내가 로봇 수집에 미친 것을 잘 아는 지인들이 선물로 준 것도 꽤 있습니다.”

-로봇과 미래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요.

“로봇의 기원을 찾아보면 고대 동서양의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적인 토속 다신들, 이집트의 태양의 신,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12신, 동양의 도깨비, 한국의 장승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요. 로봇은 상상 속에서 나왔어요(로봇이라는 단어는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 처음 등장). 상상력과 창의력은 미래를 이끌어 갈 힘입니다. 로봇은 이런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현하는 원천입니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은 가장 인간을 닮은 로봇을 창조했습니다. 인간이 할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세상입니다. 청소·의료·재난·산업·우주항공·군사·농업 등 모든 분야의 험난하고 어려운 일을 인류를 대신해 로봇이 합니다. 피부·손놀림 등 수 많은 기술 아이템이 종합적으로 녹아 있죠. 디자인·캐릭터 등 다양한 산업과도 연계돼 있어요. 한 예로 ‘슈퍼맨’ 로봇 만화가 처음 나왔을 때 그 크기가 A4 용지보다 작았습니다.

여기에서 파생해 ‘슈퍼맨’ 영화가 탄생했고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하나의 상상력으로 출발해 큰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죠. 또한 로봇이 첨단 산업이 되면서 거기에 융합되는 기술은 무궁무진합니다. 미래 먹거리를 떠받쳐 줄 종합 과학입니다. 게임 산업과도 연결됩니다. 소프트웨어가 프로그램·매뉴얼·스토리 전개·운영·작동·연출이라면 로봇이라는 하드웨어는 모든 것을 융합적으로 구성해 표출한 것입니다.

‘슈퍼맨’과 ‘아톰’이 게임에서 캐릭터가 됩니다. 미래 트렌드인 로봇을 선점하는 국가가 세계 경제를 이끌게 됩니다. 한국이 노래와 춤 문화 강국이라고 하는데 이런 무형적인 문화도 중요하지만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로봇과 같은 첨단 기계 문명은 경제적 규모면에서 무형 문화와 비교될 수 없는 분야입니다. 또한 로봇 휴머니즘이란 말까지 나왔어요.

로봇은 차갑지만 인간을 대신합니다. 표정과 감정까지 불어넣습니다. 그래서 로봇 헌장까지 나온 세상이 됐죠. 제1조는 ‘로봇은 사람에 위해를 가하면 안 된다’, 2조는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3조는 ‘로봇은 1, 2조를 위반할 우려가 없는 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등입니다.”
“로봇을 선점하는 국가가 세계 경제 이끌게 될 것”

-로봇 종합 테마파크 건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뭡니까.


“잠자고 있는 세계적인 콘텐츠들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적으로 희귀하고 가치가 큰 각종 로봇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것을 어렵게 수집해 자식과 같이 잘 키웠으니 시집 장가를 잘 보내야 한다는 마음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오브제(일상생활 용품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것)’와 인문학적 관점에서 시각적으로 잘 연출해 전 세계에서 누가 와서 보더라도 ‘로봇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상상 속에서 출발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그렇게 미래 세대의 주역인 아이들이 미래 트렌드를 보고 상상력과 희망, 꿈을 키우는 장이 되도록 할 겁니다.

과거 상상의 로봇이 산업화되고 있듯이 로봇을 보고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거죠. 로봇 박물관은 테크놀로지와 디자인을 접목한 종합적인 뮤지엄입니다. 45개 국가의 초기 로봇도 갖고 있는데 로봇 전시의 메카를 만들어 전 세계에 알리고 자랑하고 싶을 뿐입니다.”

-한국에는 그런 박물관이 없습니까.

“진정한 로봇 박물관은 없습니다. 몇몇 박물관이 있지만 작품 로봇, 사인 볼 몇 개를 갖다 놓은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건 로봇 박물관이 아니에요. 미래 경제 발전과 연결된 종합 박물관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박물관 하나의 가치는 매우 큽니다. 예컨대 일본 요코하마 인근에 건담 전시관이 하나 있습니다. 건담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며 기다립니다. 그것이 경제입니다.

구경도 하고 식당에 가서 음식도 먹습니다. 식당 크기가 엄청납니다. 로봇 종합 테마파크를 만든다면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를 통해 로봇 상징 조형물을 만들 겁니다. 전문가들이 상징 조형물을 건축할 수 있게 할 계획이에요. 약 50m 높이의 전망대도 만들려고 합니다. 한강변에 세워 놓으면 기가 막힐 겁니다. 종합 박물관엔 주재관과 산업관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관·중국관·미국관·일본관·영국관 등을 만들어 로봇을 전시할 겁니다.

로봇이 음식을 날라주고 바텐더도 하는 레스토랑도 들어섭니다. 로봇과 관계된 놀이 시설과 체험 시설을 만들고 야외에서는 빵과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게 하고 카페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로봇 캐릭터와 전문 배우가 동시에 연출하는 로봇 영상관을 건립하고 첨단 증강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입니다.”

-과거 로봇 박물관을 운영하다가 접은 이유는 뭡니까.


“2004년 5월 서울 동숭동에 세계 처음으로 로봇 박물관을 개관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9년여 운영하다가 폐관했습니다. 경영상 일시적인 유동 자금 사정으로 운영하던 회사를 정리하게 되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또 박물관 면적이 약 860㎡(약 260평) 정도밖에 안 됐어요. 단순히 전시 진열밖에 못했죠. 그것도 내가 가진 것의 3분의 1 정도밖에 전시하지 못했어요.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계 정도가 아니라 밥상으로 치면 백반밖에 내놓지 못하는 꼴이었어요. 로봇에 대한 스토리(인문학, 역사, 캐릭터 탄생과 진화, 게임, 만화 등)를 전개할 수 있을 정도로 수집해 놓았는데 그 규모로는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유치원생들이 오면 밥 먹을 자리가 없어 타고 온 버스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래서 접었죠.”
“로봇을 선점하는 국가가 세계 경제 이끌게 될 것”
“로봇을 선점하는 국가가 세계 경제 이끌게 될 것”

[돋보기]

-섹시·첨단 로봇, 슈퍼맨 1호 만화, 전 세계 가위 1300여 점 등도 소장


이윤제 월드로봇코리아 회장은 로봇뿐만 아니라 가위와 로봇 관련 만화·소설·잡지·포스터 등도 수집해 보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소장 가치가 큰 것들이 적지 않다.

이 회장은 “보유 로봇 중 30% 정도는 세계적 경매 회사인 소더비의 도록에 품목과 설명, 가격 등이 등재돼 있고 약 40%는 미국·일본·영국 등 세계적 앤티크 로봇 전문 잡지에 등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180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로봇을 보유하고 있다.

앤티크 로봇 가운데 한 점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거래되는 것도 있다. 세계 각국 앤티크 로봇 2000여 점, 만든 지 150~200년 된 동물·곤충 관련 생태 로봇 300여 점, 국가별 초기 로봇 45점, 로봇을 매개로 만든 기념품과 상품 200여 점, 음악·청소·요리·운전 등 직업별 로봇, 우주·항공류 로봇, 섹시 로봇 등 테마별로 다양하다.

이 회장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로봇은 여성 로봇 ‘마리아’다. 이 로봇은 독일 프리츠 랑이 1927 제작한 SF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등장한다. 이 회장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영화를 찍기 위해 만든 로봇이다. 1935년 프랑스에서 만든 피노키오 로봇도 있다. 4인조 첨단 밴드 로봇과 남녀 모노드라마 로봇, 로보캅 등 시대별·분야별 다양한 스토리를 갖췄다.

이 회장이 보유한 1938년 작 ‘슈퍼맨’ 1호 만화와 1939년 ‘배트맨’ 27호 만화는 미국에서 수억~수십억원에 평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1888년에 나온 프랑켄슈타인 소설 초판, SF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가 1940년대 초반에 쓴 소설 ‘아이 로봇’,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왕자’ 초판(1943년 발간), 1928년에 나온 ‘슈퍼맨’ 필름, 미국에서 1947년 발간된 만화 ‘은하철도’, 1928년 발간된 미국 SF 전문 잡지 ‘어메이징 스토리’의 삽화, 한국 최초로 로봇 얘기가 나오는 만화 ‘헨델박사(1952년 발간)’ 1·2·3권 등 가치 있는 로봇 관련 저작들도 적지 않다.

이 회장이 세계 80여 개국에서 수집한 가위는 1300여 점에 이른다. 한국·유럽·아시아·미주·아프리카에서 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만들어진 것들이다. 생활용, 장식용, 휴대용, 사무용, 주방용, 양털 깎기 등 특수용, 위생용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일제강점기 때 엿장수들이 사용한 가위도 있다. 이 회장은 “가위 하나를 통해 문명 디자인(각 나라 생활 도구의 미술사)의 변천과 동서양의 문화적인 차이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5호(2019.12.16 ~ 2019.12.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