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낙하산·정치인 출신 CEO들 총선 앞두고 줄사표
-정치 야망 수단 전락에 멍드는 공기업
염불보다 잿밥…‘총선 욕심’ 짐 싸는 공기업 수장들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2020년 4월 15일 치러지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총선)가 4개월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공공 기관 기관장과 임원들의 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일부가 임기를 남겨두고 중도 퇴임한 가운데 공공 기관 수장 자리가 정치권 진출을 위한 일종의 스펙 쌓기용으로 악용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 후보 등록이 12월 17일 시작됐다. 현재 2020년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유력시되는 공공 기관 전·현직 수장들은 이강래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 김형근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이정환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이상직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등이다.

공공 기관 수장들이 줄줄이 출마설에 휩싸이면서 일각에선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국가의 감독 아래에서 공공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 기관이 개인의 경력 관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정치인 출신 수장들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지금까지 총선에서 낙선한 후 보은 인사로 공기업 수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가 선거철이 되면 직을 버리고 정치권으로 돌아간 역대 공기업 수장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 정치인 출신 사장 떠난 도로公…직고용 진통 중

한국도로공사를 이끌었던 이강래 전 사장은 12월 5일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도로공사 사장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거치므로 대통령이 최종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한다. 이 전 사장은 전북 남원·임실·순창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사장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16~18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의원이다. 이 전 사장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이력 때문에 취임 때부터 낙하산·코드 인사라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17년 11월 ‘사람 중심의 스마트 고속도로’ 비전을 제시하며 사장에 취임했던 이 전 사장은 도로공사에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임기 1년여를 남기고 12월 17일 퇴임했다. 신임 사장이 취임할 때까지 진규동 부사장이 사장 직무 대행으로 도로공사를 이끌게 됐다.

이 전 사장은 최근 2018년 도로공사가 진행 중인 사업에 필요한 핵심 부품 납품을 동생 회사인 인스코비에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도로공사가 추진 중인 스마트 발광다이오드(LED) 가로등 사업의 핵심 부품을 인스코비가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해 충돌에 휩싸이자 이 전 사장은 즉각 성명문을 내고 허위 사실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과의 갈등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로공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라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 작업을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자회사 정규직을 거부하고 직접 고용을 요구한 요금 수납원 1500여 명을 7월 1일 집단 해고했다. 도로공사의 자회사 전환 정책에 따라 집단 해고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은 노동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8월 대법원은 도로공사가 요금 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직접 고용을 보류하고 2015년 이후 입사자가 별도 사법 판단을 받아야 한다며 노조와 줄다리기를 해왔다.

그러던 중 12월 10일 자회사 전환 고용에 동의하지 않은 요금 수납원 940명 중 2015년 이전 입사자 790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이 전 사장이 직고용 불가 방침을 밝혀 온 만큼 갑작스러운 직고용 결정에 대해 순수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많았다.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정략적으로 이들을 다시 정규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요금 수납원 문제는 12월 6일 대구지법 김천지원에서 노동자 지위 확인 소송 1심에서 도로공사가 패소해 판결 결과에 따라 직접 고용으로 모두 간주해 주기로 한 것이지 이강래 사장 퇴임 직전 표심을 의식해 직접 고용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 전 사장은 또 재임 시절 236억원이 투입되는 남원 지역 춘향휴게소 설치를 추진한 것과 관련, 자신의 출마 예상 지역에 선심성 예산 쓰기를 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춘향휴게소는 순천완주고속도로가 만들어질 때부터 휴게소 부지를 이미 조성해 놓았던 곳이었고 임시 휴게소로 사용 중이었다”며 “이 전 사장이 출마를 위해 선심성 예산을 썼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염불보다 잿밥…‘총선 욕심’ 짐 싸는 공기업 수장들

◆ 오얏나무 아래 갓끈 고쳐 매지 말라 했는데…

총선 예비 후보 등록이 2020년 3월 25일까지 가능해 공공 기관 기관장·임원 출신의 출마 러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예비 후보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김형근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도 충북 청주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안전공사는 2018년 사회 공헌 자금 약 3억5000만원을 특정 지역과 단체에 부정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김 사장은 가스안전공사 본사가 있는 충북 음성군보다 출마 예상 지역으로 알려진 청주에 더 많은 사회 공헌 자금을 집행했다. 이에 따라 김 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최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전북 전주 지역 출마 예상자로 거론되는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해당 지역구 노인정에 온누리 상품권 1만원짜리 100장을 전달하며 김 이사장의 이름을 거론한 것과 관련해 시민 단체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당했다. 전주지검이 해당 건과 관련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직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도 전북 전주 지역 출마가 예상된다. 최근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그룹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이사장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이사장은 이스타항공 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의 지분 약 40%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출마 선언이 임박한 시기에 이스타항공 매각 결정을 내리면서 일각에서는 이 이사장이 출마를 앞두고 이스타항공 관련 구설을 피하고 선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으로 매각을 결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이사장은 12월 21일 전북 전주에서 선거 출마의 신호탄 격인 출판 기념회도 열었다. 출판 기념회는 자신의 정치 철학을 알리는 동시에 후원금도 조성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이 이사장의 출마가 임박했다는 관측이다.

기관장들의 출마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출마에 대한 개인의 자유도 좋지만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공기업 등 공공 기관을 징검다리로 활용하는 행보에는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경영 공백에 따른 공기업 경쟁력 저하 우려도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국회 관계자는 “정치인 출신 공공 기관 기관장들이 선거철이 되면 중도 사퇴하는 것이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조직 장악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며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면 기관장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고 기관 운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에 출마하려는 공직자는 총선 90일 전에 맡고 있던 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이 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일부 정치인 출신 사장들로 인해 공기업이 받는 피해나 충격파를 줄이려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전에 사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주무 부처가 산하기관 기관장들의 중도 사퇴를 막을 수 있는 법률적 근거는 없지만 선거 출마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임명한다거나 제도적으로 개선, 보완할 점도 있다”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6호(2019.12.23 ~ 2019.12.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