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정치인]
- “총선 출마? 역량 될까 고민 깊어…허업 쌓는 정치 아닌 담대한 미래 만드는 것이 내 역할”
“대선 출마, 그런 무모한 일에 나서지 않을 것”
“정치권, 먹고사는 삶의 본질적 문제에 천착할 때 왔다”
“디지털 혁신 경제 시대 … 와이즈 국가로 가야”
“아·태 中核국가·삶은 질 아시아서 1위로 만들자”
“대통령, 글로벌 100대 기업 초청해 토론해 보자”
이광재 “훈수 하긴 싫고 세상 변화에 기여하고 싶다”
[홍영식 대기자·김우섭 한국경제 기자]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더불어민주당 총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9년 만에 정치권에 돌아왔지만 정치 얘기에는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2011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아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가 지난해 12월 31일 특별 사면으로 이번 총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그에게 지역구 출마를 권하고 있다.
그는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에 한참 뜸을 들인 뒤 “고민이 깊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정치가 허업(虛業 : 겉으로만 꾸며 놓고 실속은 없음)이 되지 않고 희망의 씨를 만들려면 확고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치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다가도 이내 미래 먹고살 문제로 돌아가곤 했다. ‘기승전 미래·경제’였다. 인터뷰 질문은 ‘정치인 이광재’에 초점을 맞췄지만 대답은 싱크탱크 ‘여시재(與時齋 : 시대와 함께하는 집이란 뜻)’ 원장다운 것이었다.

- 선대위원장을 맡은 것은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뜻 아닙니까.
“고민이 깊습니다. 내가 (국회의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여의도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소명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내가 감당할 만한 역량이 될까, 시대정신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국가 비전을 만드는 데는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한국에는 국가 비전을 만드는 곳이 없어요. 정당 부설 연구소는 선거 연구소에 그치는 실정입니다. 중국과 미국처럼 엘리트를 체계적으로 배출하는 데도 없고 국가를 통합하는 리더를 키워 미래를 끌고 가는 시스템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민주당에선 강원 출마를 권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정치가 허업이 되지 않고 희망의 씨를 만들려면 확고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감이 없어요. 그냥 훈수 두는 사람이 되긴 싫고 허업을 쌓는 정치가 아니라 담대한 미래 리더십을 만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을 뿐입니다.”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발언 같습니다.
“전혀 아니에요. 나는 내 자신을 잘 압니다. 그런 무모한 일에 나서기보다 여야가 나라의 미래 비전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는 데 내 역할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대선보다는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를 보면서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도자들이 조금만 더 마음을 모으면 국민이 위대한 나라로 만들 수 있어요.”

-미래라는 화두를 던졌는데, 총선 물갈이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까.
“물갈이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우선 차기 국회의원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미·중·일·러를 철저히 알아야 우리 운명을 타개해 나갈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 국회에 국제전략연구처를 둬야 합니다. 둘째, 경제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제입니다. 특히 디지털 혁신 경제가 발전하려면 국회의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셋째는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야 합니다. 총선 이후가 중요합니다. 선거(4월 15일)와 21대 국회 임기 시작(6월 1일) 사이 한 달 반 동안 당선자들이 경제와 외교, 산업 전략 등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여야를 떠나 집단적인 컨센서스를 모아 미래 국가 발전을 위한 새 에너지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정치권 청년 인재 영입이 ‘스토리’ 위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유명해졌다고 영입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기초의원 잘하면 도의원 하고 시장·구청장 잘하면 의원·도지사 하는 식이 돼야 합니다. 국민 삶의 질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등 실적 중심의 경쟁력 평가 지표를 만들어 선발해야 합니다. 시장을 했으면 교육 환경을 얼마나 개선했고 경제 성장은 얼마나 이뤘는지, 학자는 세계적인 논문을 얼마나 썼는지 등 평가 기준을 정하자는 겁니다. 국회의원도 실적에 따라 1등부터 300등까지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실적을 낸 사람만이 앞으로 갈 수 있게 하는 인재 양성 시스템이 확고히 자리 잡아야 합니다.”

-586(60년대에 태어난 80년대 학번, 50대)도 세대교체 대상에 올랐습니다.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80세 넘어 대통령이 됐는데 ‘아직 정치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중요한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꿈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시대 흐름은 있습니다. 오늘날 586의 역할은 디지털로 무장한 미래 세대를 대거 발탁하는 겁니다. 그런 역할을 하지 않으면 시대가 586들의 생명력을 짧게 할 겁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선 미래라는 화두가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은 국민이 강하고 지도자가 약합니다. 지도자들이 마음을 모으면 굉장히 좋은 나라로 갈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이 건강해져야 합니다. 양극단의 진영 대결은 의미가 없어졌어요. 여야가 협치와 연정(聯政)을 통해 지긋지긋한 분열의 시대를 끝내야 합니다. 독일에 ‘히든 챔피언’이 생긴 것도 연정의 힘 때문이에요. 이스라엘은 20여 개 정당이 난립하는 데도 연정을 하잖아요.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전 대통령은 분열된 땅 위엔 집을 지을 수 없다고 했어요. 현 정부는 임기가 절반 지났다고 보지 말고 새 출발한다는 각오로 국정에 임해야 하고 야당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책임감 있게 끌고 갈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이 60세에 정년퇴직하면 100세까지 40년간 뭘 먹고 살아야 하느냐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천착할 때가 왔습니다.”
이광재 “훈수 하긴 싫고 세상 변화에 기여하고 싶다”
(사진)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이스라앨 실로(silo)의 사례를 들며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이승재 기자
-연초 세계 가전 전시회(CES)를 참관하고 왔다고 들었습니다.
“3주 동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를 참관하고 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를 방문했습니다. 이어 이스라엘·네덜란드·싱가포르에서 디지털 경제 흐름을 파악하고 미래 도시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척박한 나라에서 어떻게 혁신이 가능하고 리더십의 요체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시산학(市産學)의 중요성을 봤어요. 네덜란드 소도시 바헤닝언은 인구가 3만6000명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바헤닝언대는 시산학 협력을 통해 푸드밸리를 조성했어요. 식품 하나로 연간 매출 약 70조원을 올립니다. 네덜란드는 인구가 1700여만 명밖에 안 되는데 미국 다음으로 농업 수출이 많은 나라입니다. 한국은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100조원 넘게 쏟아부었는 데도 농촌이 피폐화되고 있어요. 네덜란드의 시산학 정책은 우리가 배울 점입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도 대표적인 ‘캠퍼스 시티’입니다. 대학이 지식 산업의 메카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어요. 캠퍼스 시티가 지역 경제를 살리는 모델을 봤습니다. 이들 나라를 다니며 느낀 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시아·태평양 중핵(中核)국가가 돼야겠다는 겁니다. 산업화·민주화 이후 어디로 갈 것인지 찾아야 하는데 강소(强小) 국가 전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를 가도 미국과 중국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군사력은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미·중 간 갈등이 일어나면 생존할 길이 없어요. 또 디지털 혁신 경제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디지털 변화의 속도 면에서 중국의 도약으로 우리에게 많은 시간과 기회가 없어요. 아울러 국민의 삶의 질도 높여야 합니다. 안정적 경제 성장과 함께 주거·교육·의료·문화 등 부문에서 국민이 느낄 수 있는 삶의 질이 좋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제대로 준비하고 있다고 봅니까.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혁명이라고 하는 게 맞아요. 인공지능(AI)에 의해 지식과 지혜가 자동 생성되는 시대입니다.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혁명과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이 퇴출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의 시대입니다. 아시아 중핵 국가, 세계 최고 국민 삶의 질을 이루기 위해선 와이즈(지식) 국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술을 중시하는 사회 시스템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리페이보다 페이 시스템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또 페이스북보다 훨씬 먼저 만든 게 싸이월드죠. 하지만 우리가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지 못한데 대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대전환을 위한 도전을 해야 해요. 두려움 없는 도전을 하게 하려면 미국처럼 벤처한 사람이 실패하면 경력이 되는 것과 달리 신용 불량자가 되는 우리의 풍토를 바꿔야 합니다. 최고 리더부터 기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대통령·총리·국회의장 중 한 사람은 이공계 출신이 나와야 하고 장관과 차관 중 한 명도 이공계 출신이 있어야 합니다. 와이즈 국가가 되기 위해선 질문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교육 혁명이 필요해요. 기술력은 교육에서 탄생합니다. 교육 혁명을 통해 세계 최고의 지식을 도출해야 합니다.”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세계 일류와 함께 일하면서 배워야 합니다. 그 일환으로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노벨상 후보에 오른 사람이 1만8000명이 넘어요. 노벨상을 받으려면 3~4년 정도 스웨덴에서 연구합니다. 평상시 보기 힘든 세계적인 학자들이 스웨덴에 와 있는 거죠. 지식의 허브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도 노벨상을 받을 만한 ‘주니어’를 선발해 보내는 겁니다. 이런 시스템을 정착시키면 세계적인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진화할 수 있어요. 대학이 좋아지기 위에선 국내 10대 기업들이 포스코와 포항공대, 삼성과 성균관대 모델 같이 대학을 대대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는 세제 혜택 등 측면 지원을 해 줘 대학이 세계적인 ‘학자 허브’가 되도록 키워야 합니다.”

-세계적인 싱크탱크 유치를 주장하는 이유는 뭡니까.
“지도자들은 한국이 어디로 갈 것인지 설계도를 만들지 못하고 있어요. 비판만 하지…. 그래서 세계 50대 싱크탱크 아시아 본부를 유치하자는 겁니다. 세계의 눈으로 보고 같이 진화하자는 것이죠. 외교 문제만 해도 그래요. 지금까지는 미국과 잘 지내면 됐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새판을 짜는 시기가 왔어요.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해 일본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중 관계에서 오락가락했어요. 세계적 싱크탱크를 데려와 외교의 틀을 새로 짜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글로벌 기업인 초청을 주문했는데요.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도 멘토를 뒀습니다. 덩샤오핑 중국 전 주석도 박태준 포스코 전 명예회장을 경제 고문으로 삼았잖아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는 말도 있습니다. 한국 대통령도 세계를 움직이는 최고경영자(CEO) 100명 정도 불러 더불어 생각하고 토론하면 세계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AI)이라고 했어요. 디지털 경제 시대를 맞아 이런 사람들의 에너지를 모으면 우리는 더 빨리 진화할 수 있습니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결국 미국과 중국이 OK를 해야 합니다. 둘이 합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연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국제 사회는 북한 지도층이 싱가포르·베트남·중국의 선전 중 어떤 개혁·개방 모델을 채택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게 그들에게 견문을 넓힐 기회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yshong@hankyung.com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약력 : 1965년 강원도 평창 출생. 원주고,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국회의원 노무현 보좌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제17대 국회의원. 강원도 도지사. 재단법인 여시재 원장(현)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3호(2020.02.10 ~ 2020.0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