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여객기보다 더 빠른 기차…‘최신 기술’ 넘어 인간과 사회에 새로운 가치 제공이 중요
[심용운 SK이노베이션 딥체인지 수석연구원] 항상 명절이 되면 그리던 가족을 찾아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로 도로는 몸살을 앓는다. 물론 예전처럼 차 안에서 밤을 새워 가며 내려가는 일도 없고 KTX 같은 고속철도도 있어 한결 편안해진 귀성길이지만 아직도 고향 내려가는 길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좀 더 빨리 원하는 목적지까지 교통 체증 없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러한 대중교통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차세대 초고속 모빌리티 서비스인 ‘하이퍼루프(hyperloop)’다.
차세대 미래 운송 수단으로 떠오른 ‘하이퍼루프’
하이퍼루프는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 설립자인 엘론 머스크가 2013년 백서를 통해 제안한 미래 이동 수단이다. 하이퍼루프는 극초음속(hypersonic speed)과 루프(loop)의 합성어로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초고속열차를 지칭하는 용어다.

하이퍼루프의 개념은 사실 머스크 CEO가 처음 고안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공상과학 소설 ‘20세기 파리’에 해저에 설치된 공기 튜브를 통해 대서양을 횡단하는 초고속 튜브 열차가 등장한다. 2024년 상용화될 예정인 하이퍼루프는 이 소설에서처럼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터널 안을 진공 상태에 가깝게 설계하고 열차 모양도 캡슐처럼 만든다.

하이퍼루프는 기술 방식에 따라 2가지로 나뉜다. 자기 부상 방식과 공기 부상 방식이다. 자기 부상 방식은 자기 부상 열차처럼 자력의 힘으로 레일 위를 떠서 달린다. 기존 자기 부상 열차와 다른 점은 전자석 코일 대신 전력이 필요 없는 알루미늄 튜브와 궤도에 자기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공기 부상 방식은 포드(pod)라고 불리는 창문이 없는 캡슐 형태의 열차 칸을 부분 진공 상태의 밀폐된 원형 관을 통해 운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하이퍼루프는 무엇보다 빠른 운송 시간, 에너지 효율성, 상대적으로 저렴한 건설비용 등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이 초고속열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간을 시속 1200km의 초고속으로 35분 만에 주파할 수 있고 시간당 3000여 명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전기모터와 자기장 그리고 저항진 환경과 결합함으로써 항공기보다 최대 10배 정도의 에너지 효율성도 가진다.

이에 비해 건설비용은 60억 달러(약 7조원)에서 75억 달러(약 9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머스크 CEO는 자신이 세운 굴착 회사 보링컴퍼니·테슬라·스페이스X와 함께 약 1.3km 길이의 초고속 터널 구간을 건설하고 있다 .

물론 하이퍼루프 말고도 이와 유사한 초고속 열차(high-speed rail) 서비스가 추진되고는 있다. 2015년 첫 삽을 뜬 ‘캘리포니아 고속열차’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속도와 비용 효율성 면에서 하이퍼루프에 비해 열세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이 고속열차는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간을 평균 시속 960km로 2시간 30분에 주파하고 인프라 구축비용도 약 700억 달러(약 83조원)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부터 ‘튜브’ 방식 개념 제시
머스크 CEO의 발표 이후 많은 기업들과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하이퍼루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버진 하이퍼루프 원’, 미국 ‘하이퍼루프 트랜스포테이션 테크놀로지(HTT)의 ‘퀸테로 원(Quintero One)’ 그리고 캐나다·네덜란드·인도 등이 상용화를 위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선 ‘버진 하이퍼루프 원’은 영국의 버진그룹과 아랍에미리트(UAE) 국영 항만 운영사인 DP월드가 추진하고 있는 하이퍼루프 프로젝트다. 초기 DP월드가 추진하던 ‘하이퍼루프 원’은 2016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 사막에서 시험 운영에 성공했고 2017년 영국 버진그룹에 인수되면서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제24회 세계에너지총회에서 실물 열차가 전시된 바 있는 ‘버진 하이퍼루프 원’은 지름 약 3.5m인 원통 튜브로 최대 승객 28명을 태우고 최고 시속 1200km로 달린다. 일반 여객기가 시속 900km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속도인 것은 틀림없다. 보통 승용차로 2시간 걸리는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불과 12분 만에 갈 수 있다.

또 다른 하이퍼루프 프로젝트는 미국 HTT의 ‘퀸테로 원’이다. 2018년 초고속 진공 열차 모델을 공개한 바 있는 이 열차는 여객기보다 빠른 최고 시속 1300km까지 주행할 수 있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단 15분 만에 갈 수 있다. 퀸테로 원은 2019년 프랑스에서 유럽 첫 하이퍼루프 열차 시험 운행 트랙을 완공한 바 있다. 2020년에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시험 운행을 할 예정이다.

캐나다 트랜스포드(TransPod)가 추진하는 하이퍼루프도 프랑스에서 트랙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네덜란드 스키폴그룹도 하이퍼루프 개발 회사 하르트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암스테르담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450km를 하이퍼루프로 연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7월에는 인도 정부가 하이퍼루프 건설을 승인했다. 뭄바이와 푸네를 연결하는 이 프로젝트는 2021년 시범 노선을 건설하고 2024년 상용화할 계획이다.

그러면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사실 하이퍼루프는 한국이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하이퍼튜브(HTX)를 개발했고 2011년 1kg 미만 모형 운송체로 700km까지 가속시켜 시범 운행하는데 성공한 바 있기 때문이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도 2016년 하이퍼루프 연구를 시작, 5년 동안 14억원을 투자하는 한국형 하이퍼루프 계획인 유루프(U-Loop)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 프로젝트들은 아직 상용화에 조금 뒤처져 있는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하이퍼루프가 해결해야 할 이슈들
하이퍼루프는 초기 발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미래 대중교통 수단으로 초미의 관심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하이퍼루프의 경제성과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먼저 그들은 하이퍼루프의 인프라 구축과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근 미국 미주리 주와 ‘버진 하이퍼루프 원’과의 시범 운영을 위한 트랙 계약비용만 3억~5억 달러(3549억~5913억원)가 들고 전체 공사비가 100억 달러(약 12조원)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초기 머스크 CEO가 추산한 60억 달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무려 1000억 달러(약 118조원)가 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다.

하이퍼루프의 안전성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운행하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비행기 사고에 버금가는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하이퍼루프는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튜브에 약간의 틈만 생겨도 공기가 급격히 유입돼 치명적인 구조적 손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승객들은 창문이 없고 밀폐된 진공 상태의 캡슐에서 여행을 하는 것에 갑갑함과 불안감을 가질 우려가 있다. 지형상 곡선으로 운행되면 회전에 의한 가속도가 너무 커 진동 문제 등으로 탑승객의 고통이 클 것이라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에는 승객 수송뿐만 아니라 화물 수송 쪽으로 관심이 옮겨 가고 있기도 하다.

하이퍼루프의 성공 여부를 지금 단계에서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많은 최첨단 기술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듯이 기술 자체만으로는 원하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술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하이퍼루프를 둘러싼 일련의 움직임은 향후 하이퍼루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긍정적인 신호로 봐도 될 것 같다.

먼저 작년 말 벤츠가 발표한 20년 후 서울의 미래 모빌리티 청사진인 ‘비전 서울 2039’에서 광역 고속철도인 ‘하이퍼루프’가 미래 교통 수단으로 언급된 적이 있다. 이 보고서에서 현란한 미래 교통 수단의 기술적 측면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2039년의 서울은 전기자동차와 공기 정화 기술로 대기 오염과 미세먼지가 없는 친환경 도시로 바뀐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이퍼루프는 초기 빠른 속도로 관심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개발이 진행될수록 점차 환경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들이 나오고 있다. 하이퍼루프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화석 연료 대신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고 탄소 배출도 전혀 없는 친환경 교통 수단이라는 점을 내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움직임은 하이퍼루프를 단지 초고속 열차라는 기술적 우위성이 아닌 실제 고객의 모빌리티 경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HTT의 회장인 비밥 그레스타는 하이퍼루프는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며 승객의 이동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승객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 기반의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즉 블록체인을 이용해 대중교통과 관련된 단편화된 모빌리티 서비스(승객 인증, 티켓, 바우처, 관광, 지역 교통 연계, 숙박, 승차 공간 등)를 통합한 모빌리티 생태계(mobility ecosystem)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하이퍼루프는 분명 빠른 속도로 교통 체증 등 현대 사회의 대중교통 문제를 해결해 줄 솔루션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미래 우리가 꿈꾸는 모빌리티 서비스가 현실에 안착하려면 단순히 빠르다는 기술적 가치를 넘어 고객과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차세대 미래 운송 수단으로 떠오른 ‘하이퍼루프’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3호(2020.02.10 ~ 2020.0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