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과거 마련한 매뉴얼의 함정에 빠져선 안 돼…상황에 맞게 수시로 업그레이드 필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 [김광진의 경영전략]
[김광진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상 국가적 재난 사태에 빠졌다. 모든 것이 휘청거리고 있다.

과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이겨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에 따른 매우 심각한 상황은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은 고스란히 모든 산업과 기업에 전방위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마치 불확실성이 대세가 돼버린 최근 비즈니스 환경에서 안간힘을 내 뛰어왔던 기업들을 시험이라도 하듯 말이다. 기업들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다.

사실 이 같은 재난에 가까운 위기는 기업의 경영 환경과 종종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곤 한다.

지난 사례들을 보더라도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들이 어처구니없는 작은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망해 버린 곳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사례를 통한 학습의 효과 때문인지 많은 국내 기업들이 위기관리를 위한 매뉴얼 하나 정도는 마련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위기관리 대응 수준이 ‘아직도 위기 수준’라고 지적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마다 다르겠지만 대표적으로 세 가지 원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매뉴얼을 다시 책장에서 꺼내야


첫째, 기업들이 매뉴얼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매뉴얼은 분명히 필요하다. 주관 부서 중심으로 여러 경험과 사례를 기반으로 기업에서 발생했던 위험 요인을 분석하고 표준화된 대응 프로세스를 담고 있다. 만약 아직도 매뉴얼이 없다면 꼭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매뉴얼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정성들여 만들고 난 후에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활용도를 확인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매우 낮고 매뉴얼 자체만으로 심리적인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위기 대응을 위한 소통의 스킬에만 집중해 왔다는 것이다. 과거 위기가 발생한 후 현장에서 말도 안 되는 첫 대응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른 대응’, ‘핵심 메시지’, ‘하나의 메시지’, ‘진솔한 사과의 스킬’, ‘최고경영자(CEO)의 역할’ 등이 주를 이룬 대응 매뉴얼이 대부분이다.

2000년 초 삼성그룹에서 사용한 ‘상시 위기(perpetual crisis)’라는 말이 증명하듯 단순한 소통 스킬만으로는 ‘불만에 가득 찬 고객’을 대응하기가 어려워진 요즘의 경영 환경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매뉴얼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작성한 매뉴얼을 책장에서 꺼내야 한다. 그리고 학습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죽어 있는 매뉴얼을 업그레이드하고 살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 이 위기를 획기적으로 이겨내기 위한 전략이 필수적이다. 단 전략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밤을 새워 가며 만들어 놓은 전략이 실행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CEO를 포함한 많은 리더들은 조직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하고 힘을 합쳐 이겨내길 바란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문제는 조직 구성원들의 생각과 의지는 경영진의 바람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그 대답일 수 있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조금씩 다른 고민과 생각을 하는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영진과 리더들은 이러한 작업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글로벌 화학 기업 ‘듀폰’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듀폰은 1815년 화약 공장의 폭발 사고를 겪었다.

이후 ‘안전’이라는 키워드를 기업 철학과 원칙으로 상시화하고 모든 위기 상황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했다. 거창한 전략보다 원칙과 기준을 ‘안전’이라는 하나의 핵심 가치를 통해 살아 있도록 한 것이다.

◆철저한 준비만이 ‘사고’를 막을 수 있어

셋째, 기업들의 경영 환경에서 발생하는 위기 상황의 종류와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질리티(agility)와 디지털(digital)이 생존을 위한 경영 화두인 만큼 위기 대응 전략 역시 여기에 맞는 혁신과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시스템과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위기의 속성은 항상 비슷하다. 불현듯이 찾아오고 항상 현장에서 발생한다. 또 요즘 같은 비밀이 없는 세상에는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10년 전 무심코 작성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글귀 하나 조차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험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따라 현장 단위에서 조직 구성원 모두가 위기를 위기로 보는 눈과 의식을 기를 필요가 있다.

원하지 않는 위기 상황일지라도 긍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위기는 부족하거나 취약한 점을 드러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지금까지는 이를 방어하는 기조의 대응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그 위기를 기회로 삼는 창의적인 접근과 해석이 필요하다.

위기는 분명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향후 위기 상황인지, 그 상황이 어떠한 파급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현장 중심의 판단 능력이 더욱 중요한 핵심 역량이 될 것이다.

우리가 간혹 헷갈려 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사건’과 ‘사고’다. 두 단어 모두 기본 뜻은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태의 결과가 불행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좋은 경험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그 위기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사건이 될 수도 혹은 사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이 시점에 꼭 챙겨봐야 할 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7호(2020.03.09 ~ 2020.03.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