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Ⅰ]
일본의 사례에서 찾아본 ‘신탁의 미래’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얘기할 때 가장 자주 비교되는 국가는 일본이다. 2006년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에 진입할 정도로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국가인 만큼 고령화 시대의 시대 변화를 가장 가깝게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4년 신탁업법의 개정으로 금전·유가증권·금전채권 등으로 한정돼 있던 수탁 가능 재산의 제한을 없애고 ‘포괄주의’로 변경했다. 금전신탁과 재산신탁의 구분을 없앤 것이다. 이후 2007년 새로운 신탁업법의 시행으로 유언대용신탁, 수익자 연속 신탁에 관한 규정이 신설되며 다양한 신탁 상품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신탁협회·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9년 9월 기준 일본 신탁 시장의 규모는 1224조1000억 엔(약 1경3308조원)으로 한국 신탁 시장(905조원)의 14.7배에 달한다. 신탁 제도가 활발한 일본의 사례를 들어 향후 국내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대표적인 신탁 상품들을 소개한다.

◆ 유언장 작성부터 집행까지 '유언장보관집행서비스'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신탁 서비스다. 신탁은행에서 유언장 작성 지원부터 유언장 보관과 유언 집행까지 지원해 준다. 미리 유언장을 작성해 신탁은행 등에 유언서 보관과 유언 집행을 부탁해 두면 상속인 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어 활용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단순히 유언장 보관만 하는 건수는 오히려 줄고 신탁은행으로 하여금 집행까지 맡기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치매 등에 대비한 ‘후견제도지원신탁’

일본에서는 ‘후견제도지원신탁’도 대중화돼 있다. 일본은 2000년부터 치매 등 정신적 장애가 있는 이들을 위한 후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도입 이후 피후견인의 재산에 대한 크고 작은 유용 사고 등 재산 관리에 대한 문제가 적지 않게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이에 일본최고재판소가 피후견인의 재산 관리 방법을 신탁에 의해 관리되도록 추진해 마련된 서비스가 바로 후견제도지원신탁이다. 신탁 계약의 체결부터 계약의 변경 및 해지가 가정재판소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다. 이에 따라 후견인조차 신탁된 재산에 대해서는 임의로 인출할 수 없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일본에서 2012년 2월 출시된 이후 2018년 9월까지 수탁 건수가 2만1000건을 넘어섰고 최근 3년간 일본신탁협회 자료를 보면 2015년 대비 약 4배 가까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치매 환자들의 성년후견제도 신청 비율이 높아 후견제도지원신탁은 치매 환자들의 재산 보호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젊은 세대로 자산 이전 돕는 ‘교육자금증여신탁’

‘교육자금증여신탁’은 일본 고령층의 자산을 젊은 세대로 이전시키는 방안으로 2013년 세제 개편과 함께 신설된 신탁이다. 교육자금증여신탁은 손자 등의 교육 자금으로 조부모 등이 현금을 신탁허면 1500만 엔(약 1억7000만원)까지 비과세되는 신탁이다. 교육자금증여신탁은 고령자들이 보유한 금융 자산을 교육비 부담이 큰 신세대에게 이전함으로써 사회 전반적으로 소비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수익자가 30세가 되면 신탁이 종료되고 남은 재산에 대해서는 증여세가 부과된다. 20만 건 이상의 계약이 체결되는 등 고령층의 관심이 증가해 교육비 지원 목적 자금으로 젊은 세대에게 자산이 이전됐다.

◆내 죽음에 대한 결정권 부여, ‘셀프장례신탁’

일본에서는 최근 들어 ‘셀프장례신탁’이 유행이다. 1만원에서 1억원까지 현금으로만 설정할 수 있는 이 신탁은 자신이 사망했을 때 장례비용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가족을 사후 수익자로 지정할 수 있다. 유산 분할 협의 과정 없이 사후 수익자에게 금전을 곧바로 지급하므로 유족들이 고인의 자산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8호(2020.03.16 ~ 2020.03.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