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마음에 꽂히는 메시지가 핵심…TV 예능에서 배워라
‘비밀과 소통 사이’…전략 커뮤니케이션의 고민 [박찬희의 경영전략]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전략은 잘못하면 망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비밀이 많다. 전략의 작은 부분이 노출돼도 경쟁자는 그 빈틈을 파고들기 마련이다.

기업에 위해를 가해 이득을 보려는 이들은 어떤 작은 정보라도 약점으로 활용한다. 작전 계획이 누설돼 군대가 전멸하고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빠진 사례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충분한 소통을 통해 전략을 공유하지 못하면 구성원과 사업 파트너들의 힘을 모을 수 없다. 비밀이라고 꽁꽁 숨기기만 하다가 갑자기 ‘따라오라’고 하면 충분히 준비할 수도 없고 그 당위성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비밀과 소통의 사이, 전략의 지혜는 어디에 있을지 사례들을 통해 생각해 보자.

◆사례1- 토론과 탐색이 사라진 상명하복


건설업으로 시작해 세계적 기업군을 만들어 낸 A 회장은 입으로 전략을 운운하는 임직원을 싫어한다.

정치를 포함해 매우 높은 수준의 정책 정보가 필요한 사안들을 세상 물정 모르는 실무자들이 다룬다니 믿음이 가지 않고 아이들에게 폭탄을 맡긴 것처럼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그 누구도 이런 문제를 A 회장보다 잘 알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전략을 사업으로 실천하다 보면 답답한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A 회장은 중동 모 국가에서 석유 사업권을 따기 위해 산업단지 개발 사업을 적자를 감수하고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개발 사업은 석유 사업권에 대한 협상에 맞춰 진도를 관리해야 하고 관련 기자재 매입이나 외환 배정도 최고위층과의 협상 경과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다.

불행히도 이 회사에는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사업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회사 경력이 제법 쌓인 실무자들은 해당 개발 사업의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물어볼 곳이 없어 막막하다.

사장이나 본부장도 모르기는 마찬가지고 자꾸 여기저기 물어보면 자칫 눈치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이다. 제대로 알려주지 않다가 불쑥 따라오라고 하니 사업 파트너들도 불만이다.

전략과 관련한 모든 비밀은 임직원들이 공유할 수는 없다. 모두가 A 회장처럼 탁월한 사업가일 수도 없다. 하지만 필요한 만큼은 알아야 일을 할 수 있다.

A 회장만 안다는 기밀 사항도 현지국의 관리나 업자들을 상대하는 실무자들의 직접 체험에 비춰 보면 철 지난 얘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보고와 회의가 필요하다.

물론 보고와 회의는 ‘회장님 한말씀’에 앞뒤 다 짜 맞춘 의전 행사가 아닌 치열한 토론으로 전략을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A 회장이 매번 실무자들과 얘기할 수 없다면 정보 전달과 소통의 창구를 맡을 기획실을 두든지 상황에 맞춰 빨리 연결해 줄 비서를 두면 된다.

이런 토론과 탐색이 힘들다면 경영자로서의 능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실무자들의 까칠한 얘기가 짜증난다면 경영자가 아닌 지배자일 뿐이다.

정보 전달과 소통을 위해 둔 기획실이나 비서가 권세를 부린다면 역시 경영자가 무능하다는 뜻이다. 즉, 더 잘하는 사람에게 경영권을 넘겨야 한다.

◆사례2- 말만 둥둥 떠다니는 전략 회의


K 회장은 좋은 학력과 경력을 갖춘 2세 경영인이다. 해외 유수의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글로벌 컨설팅 업체에서 몸담았던 경력도 갖고 있는 그는 세련된 전문 용어로 정리된 보고와 회의가 편하다. 이를 위해 몇 년째 임직원들을 모아 연수시키고 외부 전문가도 영입하고 있다.

전문 용어와 분석 틀을 쓰니 좋은 점도 있지만 서로 빤히 아는 내용도 억지로 외운 전문 용어로 포장하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파워포인트를 써서 그림과 표로 정리하니 언뜻 보긴 좋지만 행간에 숨은 심란한 내용을 놓치고 넘어가기 일쑤다.

젊은 회장님의 뜻에 맞추려는 눈치 빠른 사람들은 컨설팅 회사를 고용해 보고서를 꾸미고 그럴듯한 해외 사례를 외워서 써 먹는다. 별 필요도 없는 영상 회의, 콘퍼런스 콜이 등장하고 나중에는 ‘영어만 쓰는 회의’, ‘모래시계로 시간 재는 회의’까지 나온다.

구체적 현실을 잘 모를수록 몽롱한 단어들만 흩날리고 그럴듯한 전문 용어와 분석 기법은 현실을 호도하고 억지를 뒷받침하는 데 쓰인다.

말과 글은 길게 늘어지는 데 내용은 더 모호해진다. 전문 용어나 기법은 투박한 현실을 쉽게 정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구성원들이 그 개념과 배경을 함께 이해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포장에 불과하다. 현실을 가리고 공허한 말만 둥둥 떠다니게 만들 뿐이다.

경영자는 투박하고 복잡한 현실과 이를 풀어내는 전략을 쉽고 분명하게 요약해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들과 이해관계인들을 이해시킬 수 있다.

1980년대 제너럴일렉트릭(GE)의 구조 조정을 이끌던 잭 웰치는 ‘업계 1·2위가 아니면 정리’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장의 신뢰를 이끌어 낸 바 있다. 복잡한 세상에서 ‘사업성과 사회적 역할을 고려한 구조 조정’ 같이 길고 모호한 메시지는 먹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해서다.

◆사례3 비대면 보고의 기술


정보기술(IT)업계의 성공한 전문 경영인 M 사장은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출연자의 얘기를 시청자에게 쏙 꽂히게 자막으로 표현하고 심지어 재미없는 상황도 그 자체를 웃음의 소재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표현과 전달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여러 일들로 생각이 복잡한 대주주 회장님이 불쑥 던지는 질문에 핵심을 짚어 간결하게 답하려면 현안을 정말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얼굴 보고 나누는 얘기도 조심스러운데 표정과 반응을 볼 수 없는 전화는(기계음과 전파가 주는 짜증 때문에도) 훨씬 심란하다.

짧은 통화 시간에 최대한 명확하고 간결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고 서로 말이 엉키지 않도록 호흡과 타이밍을 생각해야 한다. 10분의 통화를 하나의 토크 프로그램처럼 기획하고 진행해야 하는 셈이다.

전략은 주요 현안에 대해 점검하고 달라진 전략 방향을 그 배경과 함께 알려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실천된다.

시간 현장 대응이 중요할수록 이런 상시 점검과 지시는 더욱 중요한데 직원들이나 협력 업체와의 대화 역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늘 온라인으로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게임이든 TV 프로그램이든 상황을 압축한 자막을 보면서 살아온 세대에게 길고 거창한 훈시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언제 누가 대화나 메시지를 기록해 악의적 편집을 더해 공격할지도 모르니 메시지의 내용과 방식도 조심스럽다.

최고경영자의 세계는 모호함으로 가득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놓고 다양한 가능성을 살려가야 하고 대립되는 집단들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려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일상이 된다.

복잡하고 민감한 일을 소수의 사람들과 짧게 논의하다 보면 옆 사람은 들어도 모르는 선문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내용을 다수의 구성원과 사업 파트너들에게 요령껏 알리는 것이 최고경영자와 전략 스태프의 숙명이다.

메신저와 영상 회의 등 온라인 수단들 덕분에 직접 만나지 않고도 훨씬 많은 상대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비대면 접촉은 세심한 준비와 훈련이 없으면 말만 흩날려 버리고 만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자막을 붙이듯이 전화나 나아가 화상 회의에는 간결하게 핵심을 정리한 메시지가 동반돼야 한다.

그 내용은 쉽고 명확하게 상대의 마음에 꽂혀야 한다. 봉화대로 급한 상황을 알리고 전령을 보내 추가 설명과 지시 사항을 전달하던 노력을 생각해 볼 일이다.

생각해 보면 과거 조정 대신들이 임금 앞에서 성현의 글이나 역사 속 사례를 거론한 것도 공통의 이해를 기반으로 논의를 쉽게 이끌려고 했던 나름의 노력이었다.

말만 많은 사람은 그 말로 망하지만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경영자도 망하긴 마찬가지다. 경영자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2호(2020.04.13 ~ 2020.04.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