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 4·15 총선 압승한 여당, 국정 운영 진짜 시험대 올라
- 여야 당권·대권 경쟁 총성 울렸다
[홍영식의 정치판] ‘超슈퍼 與 대 1.5 野’…‘가보지 않은’ 정치 실험 끝은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에서 180석(더불어시민당의 비례의석 포함)을 차지함으로써 정치 지형이 완전히 뒤바뀌게 됐다. 선거에 의해 특정 정당이 300석 중 5분의 3 이상을 차지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등 3당이 합당해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전체 의석(299석) 가운데 72.9%(218석)를 차지했지만 이는 선거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다.


특정 정당의 의석 5분의 3 차지는 의미하는 것이 크다.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개헌을 빼고 다 할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구애 받지 않고 쟁점 법안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오랫동안 굳어져 왔던 양당제도 허물어졌다. 180석 대 103석(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의 ‘초(超)거대 여당 대 1.5 야당’의 초유의 정치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야당의 견제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구조가 됐다. 하지만 민심은 어느 한 쪽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지역구 의석은 민주당 163석 대 통합당 84석으로 거의 더블 스코어지만 득표율은 49.9%(민주당) 대 41.5%(통합당)로 8.4%포인트 차이에 불과하다.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은 미래한국당이 33.84%로 더불어시민당(33.35%)보다 오히려 높았다. 그럼에도 여권이 수적 우위를 앞세우고 야당이 강경 대응으로 맞선다면 21대 국회는 4년 내내 또다시 동물국회·식물국회 오명을 들을 수 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상대를 존중하고 타협의 묘수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힘 받는 문재인표 소득주도성장 정책들


여권은 정권 중반기에 치른 선거에서 승리한 만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각종 정책들이 국민들의 신임을 받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더 힘 있게 추진할 발판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여권발 검찰 개혁에도 걸림돌이 사라졌다. ‘문재인표 정책’들의 시즌2가 시작되는 것이다.


‘뒷심’도 든든해졌다. 비단 180석 확보 때문만은 아니다. 문 대통령 측근 참모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한병도 전 정무수석,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 진성준 전 정무비서관, 민영배 전 사회정책비서관, 고민정 전 대변인 등 청와대 출신 참모들이 20명 가까이 당선됐다. 이들은 ‘문재인표 정책’ 추진에 총대를 멜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친문(친문재인)계 의원들도 대거 당선되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더욱 높아졌다. 우리 정치사에서 대통령 임기 후반에 으레 나타난 ‘레임덕’을 막을 강력한 방어막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여권은 공수처 설치와 검찰 개혁 법안 처리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예정이다. 여당은 4월 임시 국회를 조속히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가경정안을 최우선 처리할 방침이다. 여권이 21대 국회에서 처리를 추진 중인 법안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 지주사의 자회사 주식 보유 기준 상향 법안, 공정거래위원회 전속 고발권 폐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담은 상법개정안 등이다.


국회에 제출돼 있는 종합부동산세율 상향 법안이 그대로 처리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서울 강남권 지역 민주당 출마자들이 1가구 1주택자 부담 완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인터넷은행법 개정안, 원격의료 허용 법안, 최저임금 결정 구조 개편 법안 등에 대해선 여당 내 반대 의견이 많아 처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영식의 정치판] ‘超슈퍼 與 대 1.5 野’…‘가보지 않은’ 정치 실험 끝은


︎개헌 군불 때는 여권…임기 말 추진 어려울 듯


민주당이 다른 범여 정당들과 손잡고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헌 의결 요건은 3분의 2인 200석이다. 180석인 여당 단독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개헌안 발의는 할 수 있다. 민주당은 벌써부터 개헌론을 꺼내고 있다. 민주당이 정의당·열린민주당·국민의당 등 다른 야당과 일부 무소속 의원을 끌어들여 개헌에 드라이브를 건다면 거센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2018년 4월 발의한 개헌안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부마항쟁’, ‘6·10항쟁’을 넣었다. 여권은 토지공개념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공무원 노동3권 인정 등도 추진하고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2월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당은 또 개헌한다면 ‘촛불 항쟁’도 넣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여당이 섣불리 개헌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문 대통령 임기 말 개헌으로 여야가 극심하게 충돌한다면 국정 블랙홀을 부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총선 승리를 바탕으로 차기 대선까지 유리한 구도가 형성된다면 개헌 추진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민주당, 국정운영 오롯이 책임…당권·대권 경쟁 막 올라


민주당이 이번 총선 승리로 차기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대선 승부는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것이다. 총선 압승은 국정 수행에서 더 이상 야당 탓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지게 됐다는 것이다.


임기 말 국정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차기 대선에서 국정 심판론이 중심 화두에 오를 수 있다. 총선 승리가 민주당이 잘한 결과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어려운 처지에 몰릴 수 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위대한 국민의 선택에 기쁨에 앞서 막중한 책임을 온몸으로 느낀다”고 한 것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내외 경제 상황,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외교 안보 등 국정의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며 “국민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여권이 오롯이 그 책임을 질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차기 대선에서 우리가 심판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종로에서 승리한 이낙연 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대표 후보로 나서 ‘대세론 굳히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위원장이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은 당권 확보가 취약한 당의 지지 세력을 구축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 차기 대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기회다.


이 위원장은 총선 과정에서 약점으로 지적돼 온 당 기반을 다지기 위해 민주당 후보 38명의 후원회장을 맡아 지원 유세를 했다. 유세 지원을 받은 후보들은 자연스레 이 위원장의 우군이 될 수 있다. 다만 당의 대주주인 친문 세력들의 지지를 온전히 끌어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두 가지 관점이 있다. 권력 속성상 차기 유력 대선 주자 쪽에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 위원장이 차기 당권 도전도 성공한다면 친문들도 이 위원장 지지 쪽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시각이 현재로는 우세하다. 하지만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친문 주자들이 대선전에 뛰어든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총선을 거치면서 여권 대선 주자들은 ‘풍성’해졌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생환에 성공했고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등도 외곽에서 버티고 있다. 8월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당내 세력 확장을 위한 이들의 권력 투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영식의 정치판] ‘超슈퍼 與 대 1.5 野’…‘가보지 않은’ 정치 실험 끝은


︎미래통합당, 홍준표-유승민-김태호 경쟁 구도 되나


미래통합당은 이번 선거에서 ‘정권·조국 심판론’과 ‘폭주 견제론’을 내세웠지만 민주당의 ‘국난 극복’ 구호를 넘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덮어버린 게 패배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분석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만 돌리기에는 패배의 그늘이 너무 크다. ‘문재인 정부 실정’에만 기댄 채 집권 대안 세력으로서 비전과 희망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통합당은 대표와 7명의 최고위원 가운데 조경태 의원만 생존했다. 주도 세력 교체가 불가피하게 됐다. 공천 과정에서도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계 다툼이 치열했다. 이제 이런 계파로는 당의 미래가 없기 때문에 중도 세력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총선에서 통합당이 중도층과 무당층의 마음을 끌어오는 데 실패한 만큼 차기 대선을 위해서라도 중도 색채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승민 의원이 주목된다. 그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측면 지원 유세에만 집중해 직접적인 선거 패배 책임에서 비켜 갈 수 있다. 중도층·무당층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 통합당의 패배 원인으로 꼽히는 만큼 중도 보수를 주장해 온 유 의원이 당 대표 후보로 나설 것이란 예상도 있다. 다만 21대 국회에서 원외가 되는 것이 한계다.


정치 1번지 종로에서 패배한 황교안 전 대표는 대권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정치 생명에 위기를 맞게 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의원 등 대선 후보들이 낙선하면서 당 내에선 이러다가 대선 주자의 씨가 마르는 것 아니냐는 한탄마저 나온다.


그런 점에서 당의 공천 배제에 불복해 각각 대구 수성을과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생환에 성공한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의 행보가 주목된다. 통합당은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복당을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한 석이 아쉬운 판이다. 이들이 복당한다면 당권·대권을 놓고 유승민 의원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5선이 된 서병수·주호영·정진석·조경태 의원도 당 운영 전면에 나서거나 당권 도전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3호(2020.04.20 ~ 2020.04.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