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수 절벽 이어 해외 주문도 ‘뚝
-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휘몰아치는 감원 바람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섬유·패션업계가 비상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들어오던 주문이 하나둘 끊기더니 4월부터는 대부분의 수출길이 막혔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지속되고 있는 패션업계의 내수 불황은 코로나19발(發) 팬데믹(세계적 유행) 여파로 한층 더 심화됐다. 안팎의 판로가 모두 닫친 셈이다. 섬유·패션업계를 이끌고 있는 의류 벤더(주력 공급사)들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대기업 할 것 없이 매출이 곤두박질 중이다.
급기야 이들 섬유·패션 기업들은 자금 유동성 악화에 직면해 인력 구조 조정에 나서고 있다. 특히 수출 비율이 높은 벤더를 중심으로 인력 감축이 본격화되면서 관련 산업 전반에 ‘실업 대란’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 한솔섬유·신성통상·신원 등 감원 태풍
섬유·패션업계는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으면서 본격적인 비상 경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출 비율이 높은 기업들 중 일부는 인력 구조 조정까지 진행하고 있다.
국내 패션 기업 중 수출 비율이 높은 의류 벤더는 세아상역·한세실업·한솔섬유 등 ‘빅3’를 비롯해 신성통상·신원·풍인무역·최신물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중 3곳은 이미 인력 구조 조정을 단행했고 2곳은 현재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업계 빅3로 꼽히는 한솔섬유는 4월부터 일부 사업부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거래처의 주문 취소·지연으로 대금 회수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제품 생산을 위해 투입한 원단·봉제·부자재 비용까지 고스란히 떠안자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이다.
풍인무역은 코로나19 이후 해외 거래처들의 취소가 본격화되면서 3월 27일 해외 영업부서의 일부 직원들에 대해 무급 휴직을 단행했는데 상황이 심각해 4월 1일부터 인력 구조 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풍인무역은 지난 3월 해외 바이어의 일방적 취소 통보로 1000만 달러(약 123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신성통상은 좀 더 빨리 움직였다. 3월 8일 수출본부 직원 25명을 권고사직시킨 데 이어 최근에는 비슷한 규모의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신성통상은 패션 매출 중 30%가 해외 물량인데 지난 3월 해외 바이어들이 갑작스럽게 계약을 해지해 손실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근 두 달 동안 미얀마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생산 공장 가동도 중단된 상태다.
베스띠벨리 등 여성복 브랜드를 운영하는 신원그룹 역시 해외사업부 소속팀 1개를 축소하고 직원 7명을 해고했다.
여기에 최근 영캐주얼 브랜드 비키의 오프라인 사업을 접으면서 담당 직원 20여 명도 내보냈다. 신원 역시 최근 미국으로의 수출이 예정돼 있던 물량이 취소되면서 타격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패션 니트 섬유 수출 기업인 최신물산도 코로나19로 주문이 끊기자 지난 3월 일부 임원과 계약직 직원들을 내보냈고 임직원들의 연봉도 일부 삭감했다.
세아상역도 주요 거래처인 갭·올드네이비·콜스 등의 주문이 취소되자 일부 아르바이트생을 계약 해지한 상황이다.
◆ 내수 주력 기업도 비상 경영 체제 돌입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기는 내수 비율이 높은 패션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패션업계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까지 더해지며 매출이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
이에 일부 패션 대기업들은 임금 삭감과 무급 휴가를 단행하는 등 선제적으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황이다.
LF는 지난 3월 자진 반납 형태로 임원의 급여를 30% 삭감했다. LF 측은 “경영진이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일부를 자진 반납했고 진정 국면에 들어갈 때까지 잠정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LF는 지난해 1조8517억원의 매출에 영업이익 875억원을 올린 것으로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대비 8.5%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6.8%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당기순이익도 전년 대비 14.6% 떨어졌다.
여성복 전문 기업 바바패션은 4월 들어 임직원을 상대로 임금 삭감과 무급 휴가를 진행했고 아이올리·부래당·동광인터내셔널 등 대부분의 패션 기업들은 필수 근무 인원을 제외한 직원들을 상대로 5일간 무급 휴가를 단행했다.
한섬은 마케팅 활동비를 전액 회수하는 조치까지 진행했다. ABC마트코리아는 사내 복리비용을 축소하는 동시에 무급휴가제를 도입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도 국내에서 인력 구조 조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니클로 한국법인 에프알엘코리아의 배우진 대표는 실수로 인력 감축 계획을 전 직원에게 e메일로 보내면서 감원을 예고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유니클로는 “배 대표가 언급한 e메일의 내용은 회사의 공식적인 방침이 아니다”며 구조 조정에 대해 선을 그었지만 회사 직원들은 큰 혼란에 빠진 상태다.
유니클로는 지난해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의 표적에 올라 전년 대비 31% 급감한 974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유니클로 매출이 1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이처럼 패션 대기업까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들에게 섬유나 원단을 납품하고 있는 중견 업체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 합섬 직물 전문 가공 업체들이 모여 있는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은 한 기업이 조업을 중단하고 4월 말 폐업을 예고한 상태다.
이 기업 외에도 2개 업체가 4월 초부터 한 달 동안 휴업에 들어갔고 3곳은 보름간 휴업을 선언했다. 주 3~4일 가동으로 조업 일수를 줄인 업체도 20여 곳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조속한 시일 내 코로나19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휴·폐업에 들어가는 업체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진출해 있는 국내 의류 제조 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의류 제조에 필요한 섬유를 구하기가 힘든 상황인데 기존에 계약된 주문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 급기야 일부 공장들은 직원들을 해고하고 공장 문을 닫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인한 전방위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섬유·패션업계는 정부의 지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최근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정부에 △중견기업 대상 긴급 경영자금 지원 확대 △피해 증빙 기준 완화 △무역보험·대금 미지급 피해 대상국 확대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3호(2020.04.20 ~ 2020.04.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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