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 ‘힐링 게임’으로 불리며 매진 행렬…혁신 이어 가는 닌텐도의 저력
닌텐도 ‘동물의 숲’ 열풍…코로나19로 지친 마음 달랜다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세계는 지금 ‘동물의 숲’에 빠져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진짜 동물원에 가지 못하는 대신 게임 속 동물들과 교감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부상한 트렌드가 바로 게임이다. 바이러스를 피해 시작한 ‘집콕 생활’이 장기화되고 집에서 여가 생활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져 게임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동물의 숲은 일본의 게임 회사 닌텐도가 3월 20일 출시한 신작이다. 공식 명칭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 줄여서 ‘모동숲’으로 불린다. 이 모동숲이 글로벌 집콕족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일본·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을 포함해 글로벌에서 빠른 속도로 판매가 늘고 있다. 일본에서만 출시 후 3일 동안 188만 장이 판매됐다. 닌텐도 스위치 전작에 비해 최대다. 영국에서도 출시와 동시에 게임 인기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도 동물의 숲 열풍이 불고 있다. 출시 당일 대형마트에는 새벽부터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긴 줄을 늘어섰다. 이마트는 이후 응모 방식으로 온라인을 통해서만 판매에 나섰는데 동물의 숲 에디션 구매권 당첨자 발표를 앞두고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이 멈춰 설 만큼 사람들이 몰렸다. “소셜 커머스에서 매일 200대씩 풀려 12시 정각에 들어가는데 1분도 안 돼 품절됐다”는 하소연이 들려온다.

게임 기기인 닌텐도 스위치 가격도 급등했다. 닌텐도 스위치 본체 가격은 원래 36만원이지만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60만원 이상까지 거래된다. 이 때문에 신제품을 구매해 다시 되파는 ‘닌테크(닌텐도+재테크)’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중국 닌텐도 공장이 코로나19로 가동 중단 상태에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심리가 빨리 사자는 쪽으로 움직여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닌텐도 측은 중국 공급 물량을 늘릴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어 실수요자들은 여전히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60만원이 된 동물의 숲 인기, 왜?
동물의 숲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를 둔 한 직장인은 “학교를 못 가고 있는 아이와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동물의 숲”이라고 말했다. 가족 친화적인 콘텐츠로 어른과 아이가 다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동물의 숲에는 전투를 하거나 빼앗고 빼앗기는 잔인한 장면이 없다.

동물의 숲에는 ‘힐링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동물의 숲은 전반적으로 귀엽다. 게임이 느리게 진행되고 동물과 교류하면서 섬을 잘 꾸밀 수 있다. 무인도로 이주한 게임 캐릭터가 집을 짓고 낚시를 하고 열매를 따고 식물을 가꾸고 살아가는 단순한 설정의 게임이다.

다소 심심해 보일 수 있는 게임이지만 특별한 게 없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게임업계에선 분석한다. “코로나19로 불안하고 우울한데 동물의 숲은 1인칭 슈팅게임(FPS)처럼 자극적인 게임이 아니라 평화로운 휴식이 가능하다”는 유저 후기도 있다. 유유자적 ‘슬로 라이프’가 주는 위로다.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후기도 나온다.

또 게임 속에서 친구들과 언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점도 현실 세계에서의 격리에 대한 대리 만족으로 읽힌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해 게임 속에서 결혼식장을 꾸미고 친구를 초대했다는 유저도 있다. 동물의 숲에서 게임 속 시간은 실제 세상과 똑같이 흘러간다. 여기에 온라인 접속을 통해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고 다른 플레이어들의 섬을 방문할 수도 있다. 실제 세상에선 사회적 거리 두기로 고립돼 있지만 게임 속에서 끈끈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반사 이익을 누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빚을 진 후 천천히 갚아 가는’ 설정도 국내 유저들의 호응을 얻는 포인트다. 무인도로 이주할 때 너구리 캐릭터가 대출해 주면 동물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열매를 수확하는 등 돈을 벌어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점에서 코드가 통했다는 분석이다. 게임 속에서는 빚을 독촉하지도 않고 무리한 노동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빚을 갚으면서 재미를 찾는 게 인기 요인이다. 또 게임의 ‘자유도’가 높아 사용자가 ‘자신만의 섬’을 꾸밀 수 있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게임이 설정해 놓은 스토리라인에 따라가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룰 안에서 유저의 성향에 따라 자유로운 인생을 펼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다른 게임과의 차별성도 눈에 띈다. 닌텐도 스위치는 특히 ‘감각적 컨트롤’에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닌텐도 스위치는 콘솔 게임으로 분류된다. 앞서 닌텐도가 내놓은 닌텐도 3DS, 닌텐도 위(Wii)와 비교할 때 휴대성이 높은 장점이 있다. TV나 PC와 연결해 게임을 할 수 있고 조이스틱을 분리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국내에선 모바일 게임이 강세인 만큼 콘솔 게임의 인기가 미미했다. 동물의 숲 열풍으로 국내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의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라고 시장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닌텐도 스위치 출시 이후 주가 급등한 닌텐도
닌텐도는 코로나19의 최대 수혜 기업 중 하나가 됐다. 동물의 숲 출시 이후 닌텐도의 주가는 5월 1일 기준 4만4680엔까지 올랐다.

동물의 숲 열풍에는 닌텐도 스위치 성공과 닌텐도 재기라는 스토리가 있다. 닌텐도는 한때 모바일 게임에 밀리면서 큰 위기에 빠졌다. 2011년부터 부진이 본격화돼 2012년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됐고 2013 회계연도 기준 464억 엔(약 5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위기에서 닌텐도를 구한 구원투수는 바로 닌텐도 스위치다. 2017년 3월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를 출시하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후 닌텐도의 실적은 2018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108.5%, 영업이익이 444.9% 급증하는 등 대폭 대선된 모습을 보였다. 스위치 돌풍과 함께 게임 소프트웨어도 흥행에 성공했다.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슈퍼마리오 오디세이’, ‘마리오 카드 8 디럭스’, ‘포켓몬’ 등이 스위치 기반의 대표적인 게임들이다.

스위치의 흥행과 함께 이익률이 좋은 디지털 매출이 늘면서 닌텐도의 성장은 지속됐다. 새로운 수익 모델로 디지털 다운로드와 스위치 온라인 구독의 비즈니스 혁신을 시작한 것이다. 황승택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올해 3분기 누적 소프트웨어 매출 중 디지털 매출 비율은 28.6%로 전년 동기 21.8%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닌텐도는 포켓몬, 슈퍼마리오, 젤다의 전설, 동물의 숲 등 독점 게임을 가지고 있고 2018년 연간 아마존 비디오 게임 베스트셀러 톱10 중 6개가 닌텐도 게임일 정도로 지식재산권(IP) 파워를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의 숲은 이번이 여덟째 시리즈다. 게임 자체의 독특함도 있지만 특히 스위치와 만나면서 슈퍼마리오와 포켓몬 고에 이어 동물의 숲으로 닌텐도 제3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닌텐도는 소비자들에게 환영받는 게임기를 만들고 그에 맞는 독점 작을 선보인 후 외부 개발사가 만든 게임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자체 게임 생태계를 키우는 데 강점을 보이고 있다. 후루카와 타로 닌텐도 사장은 4월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흥미롭고 새로우며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는 캐릭터와 놀이를 계속 개발한다면 닌텐도를 원하는 수요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동물의 숲’ 만든 닌텐도는…
닌텐도는 약 132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게임 회사다. 게임 회사로 익숙하지만 시작은 화투 제작이었다. 1889년 설립 이후 화투와 트럼프 카드를 만들던 닌텐도는 러브호텔, 택시 회사, 즉석밥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다가 1970년대 비디오 게임 시장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부터 전자 게임기 제조와 판매를 시작했고 휴대형 게임기 ‘게임&워치’, ‘패밀리컴퓨터’를 성공시켰다. 닌텐도는 가정용 게임기 분야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게임 회사로 성공한 지금도 여전히 화투를 제작, 판매하고 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5호(2020.05.04 ~ 2020.05.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