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셧다운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세상에 전염병이 돌아 공장 문을 닫는 것을 제 나이 70이 되도록 본 적이 없습니다. 공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거리 두기를 시행한 셈이죠. 세계가 촘촘하게 연결돼 한 곳에서 생산이 중단되면 공급망 자체가 파괴되는 게 현재의 상황입니다. 글로벌 공급망을 크게 정보와 물류로 나눈다면 정보적 측면에선 교류가 가능한데 물류는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생산 자체가 중단되고 있습니다.”
물류 공급망은 어떻게 구성돼 있습니까.
“삼성이나 LG와 같은 모기업이 있다면 그곳을 정점으로 피라미드형 구조를 가집니다. TV·냉장고·스마트폰 등을 만든다고 할 때 상당히 많은 과정을 거칩니다. 원·부자재가 생산 현장에 투입돼 부품·단품·반제품 등의 형태로 공장 간으로 이동합니다. 1차 협력업체(벤더)부터 2차·3차 등으로 얽혀 있고 또 수직 계열화돼 있습니다. 부품을 조합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벤더사를 거치면 모기업은 완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공급합니다.”
시기에 따라 공급망이 달라졌나요.
“과거 라디오와 선풍기 등 간단한 제품을 만들던 시절에는 생산량이 적고 품질도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 공장에서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 소품종 소량 생산을 한 것이죠. 이후 국민 소득이 올라가고 집집마다 가전제품을 필수로 두면서 소품종 대량 생산을 했습니다. 생산이 수요를 끌고 가던 시기죠.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수요가 팽창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경쟁이 붙기 시작했어요. 가격이 낮아지고 품질과 서비스 경쟁력이 중요해졌습니다.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나갈 방법은 바로 ‘원가 절감’이었습니다. 어떻게 싸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혼자 100% 만드는 것보다 간단한 작업들을 내주는 형태로 수직 계열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입니다. 이후 규모가 커지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죠. 글로벌 아웃소싱도 확대됐습니다.”
밸류 체인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모든 기업은 수평과 수직의 밸류 체인이 서로 연관되면서 밸류 체인 맵(value chain map)을 형성합니다. 부품이 단 한 개만 차질이 생겨도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공급망을 시스템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곳에서 제품의 QCD(Quality·Cost·
Delivery)가 부상합니다. 품질·비용·납기일을 뜻하는 QCD는 부품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때 관리의 기본이 되죠. 여기에 안전이 추가돼 QCDSM(Quality·Cost·Delivery·Safety·Moral) 개념이 중요해졌습니다. 수요가 생산을 창조하는 시절에 고객 만족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조립 형태로 보면 가장 아랫단에서부터 UPC·UPG·모듈·어셈블리 등으로 공급망이 분류됩니다. 1차·2차·3차 등으로 벤더가 복잡해지면서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관리할지가 관건이 됐습니다.”
코로나19로 지금의 밸류 체인이 한계를 노출했습니다.
“앞서 도요타가 공급망을 전환한 것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도요타는 JIT(Just In Time) 시스템으로 유명합니다. 도요타가 연간 800만 대 이상 자동차를 만들면서 생산 대수 기준으로 세계 1위가 됐죠. 비결은 가격에 있었습니다. 제품 간의 공용화된 부품을 쓰면서 낭비 발생을 줄여 비용을 절감한 것이죠. 각종 자재를 필요한 때, 필요한 양만큼, 필요한 장소로 공급받아 재고를 최소화하고 불량을 방지하는 이른바 ‘도요타 생산 방식’입니다. 재고가 쌓이면 그만큼 관리비용이 늘어납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전산화되지 않아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품에 쪽지를 붙여 가면서 관리하는 ‘간반(看板) 방식’을 통해 생산 방식을 혁신을 이룬 것입니다. 공급망에 문제가 불거진 것은 1000만 대 생산을 넘어서면서입니다. 글로벌 생산 공장 중 미국에서 불량품이 나오면서 문제가 터진 겁니다. 복잡한 공급망 때문에 한 곳에서 한 번 삐끗했는데 도요타가 문을 닫는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때 JIT의 시대는 지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웃소싱’하던 것을 ‘인하우스’로 돌리자고 했습니다. 특히 값이 비싸고 중요한 부품 위주로 가져왔습니다. 또 ‘니어 소싱’ 전략으로 해외 공장 인근에 있는 곳과 거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류 공급망이 지역별로 나뉜 겁니다.”
지역별로 나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지역별 거점 생산 방식을 만든 겁니다. 만일 어느 한 해외 공장에서 생산이 어려워지면 다른 국가에서 생산을 늘리는 식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가 무너져도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 것이죠. 그때는 규모가 크면 불리합니다. 거점 생산을 할 때 부품·지그(Jig) 등의 ‘공용화(shareness)’를 통해 부품 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신제품을 만들어도 신규 규격의 부품을 개발하지 않고 기존에 타 모델에 적용하고 있는 부품을 그대로 사용해 부품을 줄이는 겁니다. 또 호환성을 살려 여러 부품을 조립할 때 모양은 달라도 결합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합니다.”
재고 관리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안전 재고’의 개념을 가지는 겁니다. 결국은 ‘모듈화’ 생산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일종의 중간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DIY(Do It Yourself) 형태로 조립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공장이 소규모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생물의 원칙은 진화이기에 전염병 위기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겁니다. 코로나19 이후 소규모 공장 논의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면 통제가 가능해져요. 인구학적 측면에서도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있죠. 지금과 같은 대규모 공장 형태로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스마트폰 크기가 작아도 성능이 좋은 것처럼 디지털화·첨단화를 통해 공장 소형화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재택근무도 일종의 소규모 노동 방식 아닙니까. 바이러스에 노출돼도 흩어져 있어 전체 시스템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거죠. 소집단으로 살아가는 게 감염병에 맞서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거점 생산 방식이라는 것도 비슷한 논리입니다. 신경망 네트워크는 하나가 끊어지면 다 끊어지지만 거점 생산 방식은 한 곳만 끊어내면 됩니다. 적어도 한꺼번에 몰락하는 현상을 막자는 거죠.”
거점 생산 방식으로 재편할 때 과제는 무엇입니까.
“3불(불합리·불필요·불균일)을 통해 과잉 생산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인공지능(AI)이 가속화되면 사용자 맞춤형 생산 방식이 가능해집니다. 변품종 변량 시대에 맞는 생산 방식이죠. 또 해외에 나갈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토착화입니다. 공장의 생산 요소인 4M(사람·설비·기술·자재)에서 사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설비·기술·자재는 그대로 들여올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공장 자동화가 됐다고 해도 아직 일부에 불과하고 설비나 기술도 결국 사람이 가르쳐야 하는 일입니다. AI는 부분적으로 판단력에 도움을 주는 것이지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전체 그림을 다 만들지는 못하죠. AI에 대해 과도한 환상을 갖기보다 현실적인 것들을 잘 따져보면 좋겠습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5호(2020.05.04 ~ 2020.05.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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