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제 1279호 (2020년 06월 01일)

땅·주식 팔아 현금 쌓는 기업들…위기 장기화에 군살 빼기 ‘고삐’

기사입력 2020.06.01 오후 05:19

-상장사 5월까지 2조원대 유형자산 매각…“6개월 내 현금소진 위기 기업만 102곳”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한국경제신문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한국경제신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산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시가총액 100대 기업 중 89곳의 순위가 요동쳤고 재계에서는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2분기부터 본격화될 조짐이 보이자 기업들은 자산 매각 행렬에 나섰다. 재무 구조가 악화되고 자금 조달 시장이 경색되면서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고 비주력 사업을 매각해 군살 빼기에 돌입한다는 전략이다.

금융 자산뿐만 아니라 기업이 아끼던 부동산 역시 시장에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더라도 대비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확보하고 재무 건전성을 갖추기 위해 현금 확보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5월 28일까지 유형 자산을 매각했다고 공시한 상장사는 45개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25개)에 비해 1.8배 늘었다. 이들의 유형 자산 처분 금액만 2조원이 넘는다.

여기에 두산타워와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등 아직 매각이 진행 중인 대형 매물이 더해지면 부동산 매각 판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이 토지나 부동산 등 유형 자산 매각에 나선 이유는 현금 보유를 통한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다. 유휴 부지뿐만 아니라 사옥이나 호텔 부지 등를 파는 대기업이 늘면서 서울의 노른자위 땅과 빌딩도 매물로 나오고 있다.

땅·주식 팔아 현금 쌓는 기업들…위기 장기화에 군살 빼기 ‘고삐’

◆이마트·두산·대한항공, 서울 노른자 땅 판다

이마트는 스타필드를 지을 예정이었던 서울 마곡지구 부지를 매각해 8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마트가 2013년 해당 부지를 서울주택도시공사로부터 2400여억원에 매입한 것을 감안하면 7년 만에 양도 차익만 약 5758억원을 남긴 셈이다.

이마트는 작년 11월에도 점포 13개를 매각하며 차입금 감축에 나서는 방식으로 재무 건전성을 확보해 왔다.

특히 스타필드 부지는 3만9050㎡에 달하는 넓은 면적에 마곡역과 붙어 있어 입지가 뛰어나 건설사 간 인수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8158억원을 제시한 태영건설 컨소시엄이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오피스·상업·문화 시설 등을 포함한 복합 빌딩을 구상 중이다. 여기에 일부는 이마트가 임대해 창고형 마트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4월 옛 사옥인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성암빌딩을 1520억원에 팔았다. 2017년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인근 신사옥이 완공돼 임대 사업에 활용했던 곳이다.

최근 현대제철도 서초구 잠원동 사옥을 처분했다. 매각 주관사인 현대엔지니어링에 따르면 재무 상태 개선을 위해 매각을 결정했고 아직 정확한 매각가와 매각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SK네트웍스 역시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월 주유소 300여 곳을 내놓았다. 이를 현대오일뱅크와 GS건설 자회사 자이에스앤디가 매입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3월 코람코자산신탁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SK네트웍스가 내놓은 직영 주유소 300여 곳을 약 1조3000억원에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하며 주유소 간판을 바꾸고 있다.

자이에스앤디는 매입한 5개 부지에 700억원을 투입해 자이엘라 오피스텔을 세울 예정이다. 해당 부지는 서울시 지하철 200m 이내 초역세권에 자리해 향후 안정적인 임대 수요 확보와 자산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입지다.

5개소 중 양평동 부지는 지식산업센터로 개발해 분양하고 보문동 등 나머지 4개 부지는 기업형 임대 주택으로 개발해 장기 임대 운영할 예정이다.

현대로템 역시 의왕연구소 부지를 현대모비스에 878억원에 매각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장부상 가치는 648억원으로 이를 통해서도 약 230억원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기업의 유형 자산 매각은 비상 경영 상황에서 실적 개선뿐만 아니라 부채 상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두산그룹과 대한항공 역시 서울 내 알짜 부동산을 내놓고 협상을 이어 가고 있다. 부동산 매각은 이들이 내놓은 자구안의 핵심이다.

땅·주식 팔아 현금 쌓는 기업들…위기 장기화에 군살 빼기 ‘고삐’
두산그룹은 기업의 상징인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매각을 한창 진행 중이다. 대체 투자 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과 매각가를 두고 마지막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부동산업계의 예상 매각가는 7000억~8000억원대다.

대한항공은 2003년 호텔을 포함한 복합 문화 단지를 신축하기 위해 사들인 송현동 부지 3만6642㎡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알짜 부지’인 만큼 고(故) 조양호 회장이 가장 애착을 가진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송현동 부지 매각은 대한항공이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1조2000억원을 지원받으면서 마련한 자구안이다. 채권단이 내년 말까지 2조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으로서는 하루라도 일찍 부지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해야 하지만 또 다른 난관에 부닥쳤다. 서울시가 이 부지를 문화 공원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정안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2003년 경복궁 송현동 부지를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원에 사들였다. 현 가치는 5000억~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서울시가 제삼자에게 매각해도 공원 계획을 밀어붙이겠다고 압박하고 있는 만큼 매각가가 절반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두산타워/한국경제신문

두산타워/한국경제신문


◆계열사 매각 통해 곳간 채우는 기업들

유형 자산뿐만 아니라 비주력 사업이나 주식을 처분하며 곳간을 채우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콜마는 5월 28일 제약사업 부문 매각에 나섰다. 한국콜마가 2018년 CJ헬스케어를 1조3100억원에 취득한 이후 2년 만의 결정이다.

자회사 콜마파마의 보유 지분 전량(62.1%)과 한국콜마 제약 사업 부문을 합친 매각 금액은 총 5124억원에 달한다. 한국콜마는 제약 사업 매각 이유에 대해 “재무 구조 개선과 그룹 사업 구조 재편으로 핵심 역량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콜마는 CJ헬스케어를 인수하면서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상환전환우선주 형태로 3500억원을, 인수금융으로 6000억원을 조달했고 일반 차입과 전자단기사채 발행으로 3000억원을 조달했다. 한국콜마는 이번 매각대금 일부를 차입금 상환에 사용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종합 유선 방송 사업자인 현대HCN의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유료 방송 시장점유율 3.95%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시장에 나오자마자 이동통신 3사가 모두 인수전에 참여했다.

해태제과식품은 주력 사업인 아이스크림 부문을 1400억원에 빙그레에 넘겼고 CJ ENM은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 지분 1661억원어치를 블록딜(시간외 대량 매매)로 처분했다. 아이에스동서·서연이화·코오롱·루미마이크로 등도 갖고 있던 주식을 대량 매각했다.

현대로템은 최근 계열사인 현대제철에 그린에어 지분 51%를 812억원에 매각했다. 재무제표상 가치가 597억원이어서 차액인 215억원 정도가 2분기 당기순이익에 반영되면 실적 개선과 부채비율 하락까지 기대할 수 있다.

타법인 주식을 처분하며 유동성 확보에 나선 기업도 있다. LG전자는 지난 2월 중국 법인 LG홀딩스(HK) 지분 6688억원어치를 매각했다. ‘선제적 유동성, 미래 투자 재원 확보’ 차원이었다. LG상사 역시 중국 베이징 트윈타워 지분 전량을 약 3912억원에 매각했다.

글로벌 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내 기업이 유형 자산과 금융 자산 매각에 나설 때 애플·디즈니·보잉 등 미국 우량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러시를 이어 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미국 투자 등급 기업의 미국 회사채 발행 규모가 5개월 만에 1조 달러(약 1234조원)를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발행된 회사채는 5400억 달러(약 668조원)에 그쳤다. 국내 기업과 글로벌 기업이 동시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올 혹한기에 대비하고 나선 것이다.

땅·주식 팔아 현금 쌓는 기업들…위기 장기화에 군살 빼기 ‘고삐’

◆6개월 이내 102개 기업 ‘현금 소진’ 위기 

기업들이 ‘팔 수 있는 것은 다 판다’는 의지를 가지고 매각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도 상장 기업들의 현금 보유에 경고등이 켜졌다. 코로나19 확산이 하반기까지 지속된다면 상장 기업 102곳이 6개월 이내 현금이 소진되는 등 단기적 자금 압박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코로나19 확산의 수요 충격에 대비한 상장 기업 현금 소진 위험 스트레스 테스트’ 보고서에서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상장사들의 2019년 결산 실적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보고서는 실적 분석 결과에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예측 정보까지 반영하면 6개월 이내 현금이 소진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102개라고 예상했다. 특히 항공·해운업 등이 포함된 운송업이 10.5%로 상대적인 추정 위험도가 가장 높았고 디스플레이(8.25%)·에너지(7.55%)·소재(6.55%)·자본재(6.47%) 등이 뒤를 이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돼 수출 감소, 내수 부진에 따른 기업 매출이 25~75% 급감한다면 6개월 이내 보유 현금 소진 기업이 상장 기업의 4.29~7.23%(90~152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무 건전성이 취약한 관리 종목이나 한계 기업일수록 현금 소진 확률이 더욱 위험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 잠식 기업은 6개월 이내 보유 현금 소진 확률이 최대 17.91%로 추정된다”고 진단했다.

회사채 만기 도래에 따른 차환 부담 역시 기업의 현금 소진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고서는 연내에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은 차환 부담이 없는 기업 대비 2.4~2.6배 수준의 현금 소진 위험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돋보기] 삼성, 98조 실탄으로 불확실성 대비


땅·주식 팔아 현금 쌓는 기업들…위기 장기화에 군살 빼기 ‘고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삼성은 곳간을 든든하게 채웠다. 내부에 쌓아 두고 있는 순현금 보유량은 역대 최대치다.

삼성전자가 1분기 현금 보유액으로 분류한 금액은 113조2000억원 규모다.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비롯해 단기 금융 상품, 장기 정기 예금 등도 포함됐는데 같은 내역을 기준으로 작년에 비해 11% 늘어난 규모다. 여기에서 총차입금을 제외한 순현금(97조5000억원) 규모만 100조원에 육박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현금성 자산이 감소하고 차입금은 증가하는 주요 기업들의 상황과 대조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두둑한 실탄을 활용해 기술 혁신과 신사업 추진을 위한 과감한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30년에는 메모리 1위는 물론이고 비메모리에서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공개한 만큼 삼성이 보유 자산을 토대로 굵직한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1분기 콘퍼런스콜을 통해 보유 자산을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쓰겠다는 전략을 내비쳤다.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 IR팀장을 맡고 있는 서병훈 부사장은 “2분기에는 해외 시장의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생산 판매 차질과 수요 위축 등 세트 사업 중심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코로나19 확산 등 시장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위기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내외 지역별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발 빠르게 대응해 주력 사업의 경쟁력 제고와 전략적 연구·개발(R&D) 투자 등 미래 지속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9호(2020.05.30 ~ 2020.06.0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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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6-03 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