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대치동 시대’ 맞은 현대백화점그룹…탄력 붙은 정지선의 ‘돌다리 경영’
-새벽 배송 참전하고 공격적 M&A로 화장품 사업 승부수
-무한 경쟁 속에도 ‘실리 경영’ 추구
롯데·신세계와 다른 길…‘패스트 팔로워’ 정지선의 ‘돌다리 경영’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현대백화점그룹이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의 단골로 이름을 올리며 미래 먹거리 투자에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신사업 영역 확장에도 거침이 없다.

오프라인 유통업의 위기 속에서도 현대백화점그룹은 신규 출점을 오히려 늘리고 계열사를 통한 신사업 진출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경쟁사인 롯데·신세계 등이 유통업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고 성장 중심 전략에서 탈피해 수익성 우선의 경영 전략으로 선회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롯데·신세계와 다른 길…‘패스트 팔로워’ 정지선의 ‘돌다리 경영’

◆ ‘퍼스트 무버’보다 전략적 ‘패스트 팔로워’


다른 유통 기업들이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들을 따라잡겠다고 자사 온라인몰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배송 속도 경쟁을 벌일 때 현대백화점그룹은 일단 시장 상황을 관망했다. 롯데와 신세계가 대형마트와 면세점을 키울 때도 현대백화점그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발 주자들의 과도한 출혈 경쟁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시장이 안정화됐다고 판단되면 후발 주자로 그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마디로 모험을 해야하는 ‘퍼스트 무버(개척자)’보다 한 발 늦더라도 검증된 시장에 진입하는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의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이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경영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정 회장은 유통 기업 오너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로 알려졌다. ‘돌다리 경영’ 신념은 특히 신사업에 도전할 때 빛을 발한다. 최근 출사표를 던진 새벽 배송과 화장품 사업은 이미 선두 업체들의 시행착오 사례를 통해 수익성과 성장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시장이다.

최근 현대백화점그룹은 새벽 배송 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현대백화점은 신선식품 온라인몰 ‘현대식품관 투홈’을 올해 8월 오픈할 예정이다. 2018년 백화점업계 처음으로 새벽 배송을 도입했지만 시장에 큰 존재감을 남기지는 못했다.

현대식품관 투홈은 현대백화점이 운영 중인 식품 전용 온라인몰인 e슈퍼마켓을 업그레이드한 서비스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 한해 현대백화점 식품관의 모든 상품을 집으로 배달해 주는 것이 콘셉트다. 기존에 오후 8시까지만 받던 주문도 오후 11시까지 받는다. 주문 가능한 상품도 기존 1000여 개에서 약 5000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백화점은 또 백화점 식품관에 입점한 다양한 먹거리를 배달해 주는 딜리버리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입점한 식당가 인근 5~10km 지역에 1~2시간 내로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기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주문 배달로 이용할 수 없었던 백화점 식품관을 통째로 배송해 준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현대백화점이 전문 온라인몰에 출사표를 던진 배경에는 그동안 식품 분야에서 쌓은 경쟁력을 들 수 있다.

현대백화점은 국내외 유명 식음료(F&B) 업체와 다양한 지역 맛집을 입점시키는 등 식품관 강화에 공들여 왔다. 다른 백화점과 차별화하기 위해 2010년 시작한 프리미엄 전통 식품 자체 브랜드(PB)인 ‘명인명촌’이 대표적이다. 명인명촌은 연간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서 처음 내놓은 프리미엄 가정간편식(HMR) ‘원테이블’도 현대백화점의 대표 먹거리다.

최근 유통업계의 화두인 온라인몰 전략에서는 ‘통합’보다 ‘전문성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롯데쇼핑의 ‘롯데온(ON)’과 신세계그룹의 ‘SSG닷컴’이 통합 몰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현대백화점그룹은 계열사별 강점을 살린 전문 몰을 지향한다.

백화점·홈쇼핑은 유통의 강점을 활용해 종합 쇼핑몰인 더현대닷컴(백화점)·현대H몰(홈쇼핑)을, 한섬·리바트·현대그린푸드는 제조사의 전문성을 강조한 전문 몰 형태의 온라인몰인 더한섬닷컴·리바트몰·그리팅몰을 각각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첨단 정보기술(IT)과 유통을 결합한 ‘리테일테크’ 실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더현대닷컴이 증강현실(AR)을 활용한 메이크업 서비스를 도입하고 상품 정보와 구매 기능을 함께 담은 동영상 콘텐츠인 ‘비디오매거진’을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롯데·신세계와 다른 길…‘패스트 팔로워’ 정지선의 ‘돌다리 경영’


◆ 적과도 손잡는 ‘실리 경영’


현대백화점그룹은 유통 기업들이 모두 적자를 내고 있는 온라인에 대규모 투자보다 쿠팡 등 온라인몰과의 제휴 확대를 선택했다. 이처럼 온라인몰 전략에서도 실리를 추구하는 정지선 회장의 ‘돌다리 경영’ 기조를 엿볼 수 있다. 불확실한 시장에 바로 투자하기보다 시장의 메인 플레이어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적과의 동침’도 불사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온라인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할인을 앞세운 과도한 경쟁 대신 상품 경쟁력을 활용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고객 접점 확대와 제휴사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롯데와 신세계는 현재 쿠팡 등에 입점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사 플랫폼보다는 자사 플랫폼 키우기에 한창이다. 반면 현대백화점그룹은 일찍부터 타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강화해왔다. 더현대닷컴은 2017년부터 네이버 쇼핑에서 백화점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업계 최초로 지난해 5월 위메프, 8월 쿠팡에 각각 입점했다.

또 배달의민족과 손잡고 배민오더에 현대아울렛 맛집도 입점했다. 배달업계 1위 플랫폼인 배달의민족의 배민오더를 통해 현대아울렛 식당가 음식을 미리 주문하거나 테이크아웃할 수 있게 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동안 적극적인 M&A를 통해 사업을 확대해 온 만큼 중요한 순간에는 승부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정 회장은 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위해서는 공격적인 M&A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사에 없거나 부족한 역량을 재빨리 캐치해내 M&A를 통해 흡수하고 확장, 성장하는 방식이다.
롯데·신세계와 다른 길…‘패스트 팔로워’ 정지선의 ‘돌다리 경영’
정 회장이 회장직에 취임한 2007년 이후 13년 동안 현대백화점그룹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사업을 재편하기 위해 10여 개의 M&A를 추진해 왔다. 계열사들의 M&A를 통해 패션 기업 한섬, 가구 회사 리바트, 건자재 기업 한화L&C 등을 잇달아 인수해 유통·패션·종합식품·토털 리빙·미디어·렌털·B2B·건설장비에 이르기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재계에서 자산 기준 22위의 종합 생활 문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동안 비축한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M&A 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계열사인 현대HCN 매각을 추진 중이다. 새 먹거리인 화장품 사업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5월 11일 기능성 화장품 기업인 클린젠 코스메슈티칼을 인수한 데 이어 화장품 원료 기업인 SK바이오랜드 지분 인수도 타진하고 있다. 이번 인수가 성공한다면 화장품 원료-생산-유통까지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 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유통업계가 저마다 생존 경영 모드에 돌입한 것과 달리 현대백화점그룹의 사업 확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대치동 신사옥으로 본사를 이전한 것을 계기로 한 단계 도약을 준비 중이다.

올해 6월 대전점, 11월 남양주점, 2021년 1월 파크원점 등 모두 3곳의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을 열고 2021년 초에는 서울 여의도 파크원에 초대형 백화점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 면세점 운영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면세점도 신규 출점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두산타워에서 동대문점이 영업을 시작했고 9월에는 인천공항 면세점을 새로 열 계획이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9호(2020.05.30 ~ 2020.06.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