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일본에선 간병 시설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고령에 비례한 기저 질환자가 많아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 일본에선 간병 시설 등 고령자 집합 공간에서의 갈등이 구체적이다. 행정·시설·가족 등 관계자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논란 속에 ‘긴급사태’는 해제됐지만 언제든 재확산될 수도 있어 안심할 수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고령 인구의 감염·사망률이 꽤 높다. 현재 진행형이라 통계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노인 시설의 사망자는 전체의 15%를 웃돈다. 시설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정 악화로 일본 정부가 시설 간병에서 재택 간병으로 방침을 전환한 이후 급속도로 늘어난 데이케어(통소 서비스)와 단기 시설까지 넣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일본이 공을 들이는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이 방문 간병을 핵심으로 하기 때문에 확산 우려로 간병 공백이 생기는 부작용까지 가세한다. 실제 N차의 현실화된 집단 감염도 목격된다. 덩달아 휴업 사태가 잇따르면서 대체 시설 등 후속 문제가 새로운 갈등을 유발한다.
◆日 시스템, “지금은 버텨도 붕괴는 기정사실”
방역 공백은 의료 공백으로 연결된다. 감염 환자와 위급 환자가 뒤섞이며 적절한 치료가 힘든 의료 공백이 발생한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1주일 넘게 환자와 병원의 미스 매칭으로 불상사가 반복된다. 정상적인 의료 시스템의 붕괴 우려다.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간병 시설 고령 인구인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볼 때 환자와 가족의 공포는 갈수록 높아진다. 초고령사회답게 잠재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무기력한 정책 혼선과 미숙한 대응도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무상 지급에도 불구하고 불량한 품질과 기능성의 논란 등으로 수취 거부가 잇따른 일명 ‘아베마스크’가 내각 지지율을 30%까지 끌어내렸을 정도다.
이대로라면 간병 붕괴는 초읽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가뜩이나 환자가 많은데 대응 체계는 폐쇄·격리 등으로 시설과 인원이 모두 감소세다. 간병 현장은 코로나19의 최대 전선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방치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버텨도 계속되면 수급 붕괴는 기정사실이다. 감염력이 거세질 가을 이후까지 시간도 별로 없다.
방법은 뾰족하지 않다. 일상 복귀와 3밀(밀폐·밀집·밀접) 회피는 이른바 ‘균과 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긴장 관계다. 일단 일상으로의 복귀를 선언?지만 집단 감염이 계속되면 상황은 반전된다. 특히 간병 현장처럼 일상 복귀가 힘든 취약 공간에선 감염 공포와 간병 붕괴를 막을 대안조차 거의 없다.
간병 현장은 감염 확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리스크가 높은 다수 환자 △3밀 회피의 구조적 한계 △방호복 등 장비 비축 부족 등이 원인이다. 중증화되기 쉬운 지병을 보유한 고령자가 대부분이고 치매 환자면 자발적인 대책 실천도 어렵다. 스스로 마스크를 쓰거나 손을 자주 씻는 예방 대책을 지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1명의 직원이 다수 환자를 간병해 감염 확대 우려도 높다. 마스크·방호복 부족 사태처럼 대응할 수 있는 장비가 충분하지 않은 것도 현실 한계다. 정책과 현실의 엇박자도 목격된다. 고령자는 감염이 확인되면 병원 입원이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그대로 해당 시설에 잔류·방치된다. 의사가 상주하는 간병 시설일수록 의료진만 믿고 옮기지 않는데 이는 일상 의료와 감염 대응이 구분된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코로나19로 현장 문제점 곳곳에서 드러나
행정 당국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방역 지침을 따르기 힘든 현실 제약 때문이다. 무엇보다 간병 환자가 감염됐을 때 받아줄 병원을 찾기가 어렵다. 환경 변화가 간병 환자의 심신 상태를 악화시킨다는 염려도 반영된다. 자구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층을 분리해 감염 환자와 간병 환자를 분리·수용하는 방식이다. 생활 공간과 대응 직원을 나눔으로써 최소한의 감염 루트는 줄여보자는 차원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시설 직원의 일손 부족이 상시적인데다 외부 지원이 있어도 감염 지식이나 치료 경험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 실제 직원 감염이 잇따른 시설은 대부분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곳으로 확인된다. 심지어 감염자와 접촉한 직원은 밀접 접촉자로 2주간의 자택 대기가 요구됨에도 워낙 일손이 달려 현장 유지를 이유로 보건소와 상담해 계속 일하게 한 사례도 나왔다.
감염 환자가 확인된 간병 시설은 더더욱 정상 운영이 힘들어진다. 일종의 낙인 효과다. 청소 위탁 등 거래 관계를 가졌던 상대측이 접촉을 꺼려 해당 시설이 방치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잔류 직원이 청소부터 음식·세탁에 이르기까지 과부하가 걸린다.
낙인 효과는 보육·유치원부터 직장에까지 광범위하지만 특히 전염력·취약성이 부각되는 간병 현장이 심각하다.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기엔 직원의 사명·선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간병 현장에 모든 책임·대안을 요구할 게 아니라 대체 병원의 수용 능력을 확대하거나 파견 인력의 지원 확대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상황은 쉽지 않은 상태다.
간병 시설에 대한 코로나19의 감염 공격은 초고령사회 일본의 간병 인력 부족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줬다. 향후에도 감염 우려와 간병 수요가 일상적이란 점에서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는 판단이 설득적이다.
중앙 정부도 관련 대책을 꺼내들었다. 4월 추가경정예산 긴급 편성 때 간병 현장 최전선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위험 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언 발의 오줌 누기’로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중·장기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위험 수당이 현장 요구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책상머리에서 꺼내든 간편한 방식의 또 다른 관성적인 수당 카드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2020년은 일본의 간병보험제도가 시작된 지 20년을 맞는 분기점이다. 그간 수차례 간병 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20년째 제자리걸음이란 평가가 많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그간 미뤄 왔던 간병보험의 외상 장부가 한차례 되돌아온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언젠가 닥쳐올 게 불거진 것에 불과해서다.
향후 인력 부족이 점차 심화될 것으로 추정된다. 후생성은 2025년이면 무려 55만 명에 이르는 간병 인력의 추가 공급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나마 동남아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해 간병 현장에 충원할 계획이었는데 이젠 그조차 어려워졌다. 발본적인 제도 개혁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간병 현장의 인력 부족은 사실상 저임금이 최대 원인이다. 일이 고된데 임금이 적으니 지속 가능한 인력 확보가 난제일 수밖에 없다.
간병 현장에서도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을 장기간 요구해 왔다. 그 덕분에 2010년부터 월평균 6만 엔 정도 임금이 인상되기도 했다. 2019년의 소비 증세 상황에서도 베테랑 간병 복지사는 월평균 8만 엔의 처우 개선이 확인됐다. 시차를 갖고 점차 전체 직원으로 임금 인상 조류는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인상 효과가 충분한지를 시작으로 추가적인 처우 개선과 재원 조달 등의 논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간병 환경의 구조 개혁도 요구된다. 간병 현장의 혁신 개혁으로 일하기 쉽게 바꿔 보자는 차원이다. 고려할 열쇠 중 하나는 정보통신기술(ICT)의 적극적인 도입이다. 가령 센서를 활용해 일상 변화를 휴대전화로 확인하면 간병은 한결 수월해진다. 환자와 직원의 접촉이 줄어 감염 우려도 낮아진다. 리프트를 통한 입욕 지원은 적은 일손만으로 가능하다.
감염 확대를 막기 위해 가족 면회의 제한 조치가 계속되면 차선책으로 단말기를 활용한 안부 확인도 가능해진다. 신기술 도입이 늦는 간병 현장을 위한 지원 체계로 ‘새로운 간병 방식’이 안착하면 인력 수급은 물론 간병의 품질을 높이는 묘책이 될 것이란 얘기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0호(2020.06.06 ~ 2020.06.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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