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레이더]
-대법원 “근무환경수당·해외수당은 통상임금에 해당”…정기성·일률성·고정성이 ‘포인트’
통상임금 소송 이겨 93억원 받아낸 한전KPS 직원들
직장인들은 자신이 받는 보수의 총액은 알아도 세부 내역은 잘 모르는 이가 많다. 그럴 만하다. 연봉은 기본급에 더해 명칭도 생소한 여러 가지의 수당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시간을 내 이 같은 각종 수당이 어떤 명목과 기준으로 지급되는 것인지 알아보길 권한다.

만약 법적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만 회사가 이를 통상임금으로 책정하지 않았다면 미지급된 임금을 추가로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도 ‘통상임금 리스크’를 미리 해결하지 않으면 추후에 수십억원 정도의 미지급금을 뱉어내야 하는 낭패를 볼 수 있다.

한전KPS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 직원 3500여 명은 기술수당·근무환경수당 등이 통상임금임에도 회사가 이를 제외하고 퇴직금과 각종 수당을 지급했다며 임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6년여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이들은 지난 6월 총 93억원 상당의 미지급금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규정된 통상임금

통상임금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선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이라고 정의한다.

사전적 정의만 봐서는 이해가 잘 안 된다. 통상임금의 구체적 요건은 다음과 같다.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으려면 정기성·일률성·고정성 등 세 가지를 만족해야 한다. 먼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임금이 계속적으로 지급돼야 한다(정기성). 만약 어떤 상여금이 매달 혹은 2개월마다·반기마다·1년마다 등 일정 주기에 따라 지급된다면 정기성을 충족한다. 하지만 회사 성과에 따라 상여금이 지급돼 주기가 그때그때 다르다면 정기성이 부인될 수 있다.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에 달한 모든 노동자에게 특정 수당이 지급된다면 일률성을 충족한다. 또한 소정 근로에 대한 가치 평가와 관련돼야 한다. 가령 회사가 모든 직원들에게 매월 가족수당을 10만원씩 지급한다면 일률성을 충족한다. 하지만 가족 수에 따라 가족수당을 차등 지급한다면 일률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고정성은 ‘근로자가 제공한 근로에 대해 업적·성과 등의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확정된 성질’을 의미한다.

업무 성과가 최상인 직원에게 1000만원의 상여금을 주고 최하 대상자에겐 100만원만 준다면 어떤 평가를 받든 100만원을 받을 것이 확정적이므로 고정성이 있다. 반면 S등급에겐 1000만원을, 최하 등급에겐 한 푼도 주지 않는다면 고정성이 없다고 할 것이다.

통상임금이 중요한 이유는 퇴직금과 연·월차수당, 연장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을 계산할 때 기준 임금이 되기 때문이다. 즉 통상임금 산입 범위가 넓어질수록 1시간 더 근무했을 때 받는 임금과 퇴직금 등이 자동적으로 오르게 되는 것이다.

한전KPS 직원들(원고)과 사측(피고)은 근무환경수당·해외수당·장기근속격려금·내부평가급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이견을 보였다. 이 가운데 법원은 근무환경수당과 해외수당은 통상임금이 맞다고 판단했다.

사측은 근무환경수당의 경우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이 어디인지에 따라 차등 지급돼 고정성과 일률성이 없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해당 사업장에 발령 받은 노동자가 소정 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확정적으로 지급되는 금전”이라며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해외수당에 대해서도 사측은 “근무지 환경의 불편함을 고려해 지급되는 수당으로 일률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기근속격려금에 대해선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한전KPS는 10년 이상 재직한 노동자들에게 근속연수 5년마다 일정 금액을 장기근속격려금으로 지급했다.

법원은 “근속연수(5년)가 도래하는 급여 지급일 전에 퇴직하면 장기근속격려금을 전혀 받지 못한다”며 “고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내부평가급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한전KPS는 전년도의 성과에 따라 내부평가급을 지급했다. 한전KPS는 매년 12월 이사회를 개최하고 다음 연도 예산안에 대한 의결을 하면서 새해에 지급될 내부 평가 지급률을 결정해 왔다.

법원은 “최소한도의 지급이 확정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통상임금에 요구되는 고정성을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원고들은 소를 제기하면서 기술수당·자격선임수당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함에도 퇴직금 등을 계산할 때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사측도 인정해 법정에서 다툼이 벌어지진 않았다.

◆신의칙 위반 주장도 안 통해

이번 소송에서 쟁점이 됐던 수당들의 통상임금 여부에 대한 판단은 1심과 2심이 동일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도 지난 6월 원심 판단이 옳다고 최종 판결했다.

이에 따라 원고들은 기술수당과 근무환경수당 등을 통상임금으로 포함할 때 나오는 수당·퇴직금과 실제 지급분과의 차액인 93억여원을 지급받게 됐다.

법무법인 KCL과 김기덕 변호사가 각 1~2심과 상고심에서 원고들을 대리했다. 한전KPS 대리는 1~3심 모두 태평양이 맡았다.
앞서 사측은 “(통상임금을 새로 산정할 경우) 회사에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하게 돼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펼쳤다.

하지만 법원은 “한전KPS에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이 발생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된다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4호(2020.07.04 ~ 2020.07.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