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혁의 신산업 리포트]
⑤유통-몰락하는 오프라인 리테일러
- 니만마커스·JC페니 등 줄줄이 파산
- 아마존은 주문 폭주에 10만 명 신규 채용 예정
잔인한 코로나19, 미국 오프라인 리테일러를 벼랑으로 몰다
[최중혁 칼럼니스트] “미국 최초의 백화점 본점 입지에 아마존이 입성했다.”

미국 유통업계에 상징적인 장면이다. 미국에서 오프라인 유통을 대표하는 백화점 산업의 상징적인 자리에 온라인 유통업계의 ‘공룡’ 아마존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지난 3월 1826년 설립돼 올해로 창립 194년을 맞은 로드앤드테일러의 본점으로 쓰였던 뉴욕 맨해튼 5번가 424의 빌딩을 9억7800만 달러(약 1조1758억원)에 인수했다.

이 빌딩은 작년에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 위워크가 인수한 뒤 아마존이 입주하려고 했지만 최근 이 빌딩 리모델링 공사 대여금(약 7억5000만 달러)을 아마존이 부담하고 나머지 비용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빌딩 소유권이 위워크에서 아마존으로 넘어갔다.

로드앤드테일러는 한때 미국에서 고급 여성 의류 백화점 체인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이제는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 미국 오프라인 리테일러는 왜 한물갔나?
잔인한 코로나19, 미국 오프라인 리테일러를 벼랑으로 몰다
소매·기술 분야 연구·자문 회사 코어사이트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미국 경제는 탄탄했지만 약 9300개의 오프라인 리테일 매장이 문을 닫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무관하게 이미 진작부터 소매업의 종말(retail apocalypse)이란 이야기까지 나오며 오프라인 리테일러의 미래가 암울할 것이란 예측이 줄을 이었다.

이 산업이 몰락하는데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발전 때문이란 오해가 많다. 하지만 시장 조사 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정작 2019년 미국 이커머스의 매출 중 전체 소매업 매출 비율은 10.7%에 불과한 5995억 달러(약 721조원)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뉴욕타임스는 오프라인 리테일러의 몰락에 대한 이유를 3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코스트코·월마트와 같은 독립형 창고형 매장의 성장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쇼핑몰에 있는 작은 소매점보다 외곽에 자리한 대형 창고형 매장에서 쇼핑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코스트코는 미국에서 사회적 거리를 두며 매장에 입장해야 하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상황에도 긴 줄을 서며 입장하려는 모습을 보는 게 어렵지 않다.

둘째, 소득 불평등의 심화로 중산층이 줄어들어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오프라인 리테일러의 매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여론 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1970년 62%에 달했던 미국 중산층의 비율은 현재 40%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상품 구매 지출보다 서비스에 쓰는 돈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1960년대에 미국인들이 건강관리에 사용한 지출은 전체 소득의 5% 정도였지만 지금은 약 18%에 육박한다.

또 지금 미국인들은 음식이나 의류에 지출하기보다 교육과 레저 등 서비스 지출이 급격히 늘었다. 2018년 기준 미국인들은 음식에 13%, 의류에 3%를 사용했다.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리테일러들이 실패한 요인에 변화하는 유통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평가도 많다.

이커머스의 가속화로 동일한 제품에 대한 가격 비교를 하는 것이 쉬워졌고 온 디맨드 형태의 주문의 활성화로 제품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하지 않고 몇 개 시즌 전에 재고를 준비해야 해 트렌드에 맞는 흥미로운 제품들을 만나기 힘든 오프라인 리테일러를 굳이 이용할 이유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명품 업체들도 직영 매장을 늘려 가면서 점차 백화점을 이탈했다. 또한 미국 백화점들은 유통 과정에서 수수료를 줄일 수 있는 직매입을 통해 물건을 판매하는데 재고 부담도 백화점이 직접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판매가 부진할 때는 신규 투자는 꿈도 꿀 수 없다.

이커머스에 대한 투자는 말할 것도 없다. 118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 JC페니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적자를 기록했다.

◆ 코로나19로 더 힘들어진 업계, 디지털 가속화

아마존은 코로나19로 비대면 트렌드가 가속되자 주문이 폭주해 급기야 10만 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던 미국 오프라인 리테일러들은 진짜 위기가 오자 하나둘씩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중증 환자’였는데 코로나19로 미국 전역에 이동 제한 명령이 떨어지자 그마저 공급되던 ‘산소’도 끊긴 것이다. 미국의 명품 백화점 니만마커스, 의류 업체 제이크루와 브룩스브러더스, 중저가 백화점 체인 JC페니 등이 줄줄이 파산 보호 신청(챕터11)을 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리테일러들이 코로나19를 핑계로 회생 절차인 챕터11을 신청한 것을 배제할 수 없다. 어차피 그간 내부 사정은 곪을 대로 곪고 거기에 정부의 조치로 판매조차 할 수 없으니 업체들은 현금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챕터11을 신청하면 기업들은 임대를 거부하거나 매각할 기회도 얻게 돼 10년 이상 장기로 임대차 계약을 한 소매점도 일방적으로 임대 거부 결정을 할 수 있다.

법률 서비스 기업인 에픽글로벌에 따르면 올해 5월 챕터11 신청은 724건으로, 전년 동기의 487건보다 48%나 늘었다.

이러한 기회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해 고객에게 옴니 채널 환경을 제공하고 이커머스에 대한 투자를 확충하는 업체도 있다.

미국 명품 백화점 노드스트롬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미국 전역에 16개 지점을 영구 폐쇄한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디지털 매출 증가로 이 분야에 투자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2020년 1분기에 노드스트롬은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약 40% 감소했지만 디지털 매출은 약 5% 증가했고 이 매출이 전체 매출에 54%를 차지했다. 1년 전 같은 기간엔 디지털 매출이 전체 매출 중 31%에 불과했다.

노드스트롬은 백화점에서 팔지 못한 재고나 반품되는 물건들을 계열 할인점인 노드스트롬 랙에서 판매하면 되기 때문에 다른 업체에 비해 다소 부담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사람들이 매장에 방문할 유인이 줄었고 기존에 비해 매장에서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사람도 적어지기 때문에 오프라인 리테일러들의 입지가 계속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코어사이트리서치는 미국의 폐점 매장 숫자가 전국 소매업의 55~60% 수준인 2만~2만5000개로 예상된다고 전망하며 더 이상 유명 의류 브랜드 단독 매장으로 거대한 쇼핑몰을 채우거나 역시 의류 브랜드 위주로 백화점 공간을 채우던 방식의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마케터도 미국 총 소매 판매량은 올해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며 2022년까지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오프라인 리테일러들은 근본부터 모두 바뀌고 미래를 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음 연재는 ⑥유통 - 경쟁력 있는 전문 리테일러)
ericjunghyuk.choi@gmail.com
잔인한 코로나19, 미국 오프라인 리테일러를 벼랑으로 몰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5호(2020.07.11 ~ 2020.07.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