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혁의 신산업 리포트]
⑥유통-경쟁력 있는 전문 리테일러
- 달러제너럴·트랙터서플라이는 신규 매장 오픈 계획
- “중요한 것은 결국 경쟁력”
미국 리테일러 몰락 속에 살아남은 ‘그들’
[최중혁 칼럼니스트] “더 이상 이커머스(전자 상거래)는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건 틀렸으니까.”

10년 전에 나온 말이 아니다. 심지어 구멍가게 사장님이 한 말도 아니다. 연매출만 400억 달러(약 48조2000억원)를 벌어들이는 미국 의류 잡화 할인 체인 티제이맥스(TJ Maxx)의 최고경영자(CEO) 어니 허먼이 지난 6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미국의 수많은 오프라인 리테일 스토어들이 문을 닫거나 구조 조정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소비자들이 매장을 방문하는 것을 꺼리고 소비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경쟁력을 갖춘 전문 리테일러들에는 오히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마존과 같은 전문 이커머스 업체들이 미국 리테일업계를 모두 잠식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 이커머스를 거부한다

미국 리테일러 몰락 속에 살아남은 ‘그들’
티제이맥스 매장을 방문하는 것은 늘 새롭다. 1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도 늘 다른 제품이 진열돼 있다. 잘만 찾으면 저렴한 가격에 무척 좋은 물건을 건질 수도 있다. 이곳에 한 번 들어서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난다.

매장에 나타난 ‘헌터(사냥꾼)’가 돼 ‘보물’을 찾게 만드는 것이 이 회사의 매장 운영 방침이다. 티제이맥스는 미국의 록다운(봉쇄 조치) 기간 동안 거의 대부분의 매장이 문을 닫았지만 6월 들어 85% 이상이 오픈하면서 많은 소비자들이 ‘크리스마스 쇼핑’하듯 설렌 마음으로 방문했다.

고객들은 매장에 가야만 이러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티제이맥스의 매출 중 온라인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2%밖에 되지 않는다. 유사한 업체인 벌링턴도 온라인 매출이 전체 매출의 0.9%에 불과해 이번 기회에 이커머스를 완전히 접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리테일러들은 대폭 할인된 물건을 팔기 때문에 이커머스로는 배송비와 반품비를 감안할 때 수익을 내기 어렵다.

글로벌 패스트 패션 업체 자라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 1200개 점포를 영구 폐쇄하고 온라인 판매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에선 시골에 가면 농협에서 운영하는 마트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다. 미국에선 달러 제너럴과 트랙터 서플라이가 그 역할을 한다. 미국 시골에서도 우리가 잘 아는 월마트나 코스트코는 찾을 수 없다.

업체 이름에서 느껴지겠지만 달러 제너럴은 저가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미국의 생활용품 할인 업체이고 트랙터 서플라이는 농축산업 용품 판매 업체다. 미국에서 로드 트립을 하다 보면 자주 마주치게 되는 매장들이기도 하다.

달러 제너럴은 미국 소도시에 주로 자리해 있지만 1만6000개의 매장이 미국 인구의 75%의 주거지 5마일 이내에서 커버한다. 특히 월마트 같은 대형 매장에서 매진된 필수 물건들이라도 이곳에선 재고를 상시로 확보해 둔다.

트랙터 서플라이는 아마존이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다용도 트랙터·제초기·반려동물 사료 등을 판매한다. 이들 매장은 출입이 빠르고 인파가 한정돼 있어 사회적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된다.

이커머스에 큰 투자를 하지 않아도 운영에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재택근무의 활성화로 노동자들이 외곽으로 이동한다면 이 업체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 제너럴은 올해 1000개의 신규 매장을 추가로 열 계획이고 트랙터 서플라이는 1863개인 매장 수를 2500개 이상으로 늘릴 전망이다.

◆ 경쟁력만 있다면 소비자는 제 발로 온다
미국 리테일러 몰락 속에 살아남은 ‘그들’
특별한 경우만 아니라면 미국 리테일러들에게 이커머스 투자는 필수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따른 비대면 트렌드의 활성화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리테일러들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차별화된 경쟁력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미국을 휩쓴 뒤 미국인들은 실내 쇼핑몰에 방문하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요가복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애슬레저 브랜드 룰루레몬은 미국에서 305개의 매장 중 140개가 쇼핑몰에 자리해 있지만 자택 대기 명령이 해제된 후 많은 소비자들이 방문하며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룰루레몬이 입점된 쇼핑몰에 함께 입점한 업체는 최근 파산이나 매장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JC페니와 메이시스, 노드스트롬의 숫자가 제일 많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외부 활동이 줄어들어 명품이나 일상복보다 룰루레몬과 같은 애슬레저룩이 유행이기에 매장 방문자가 금세 회복된 것이다. 홈 트레이닝의 수요 증가도 이 회사 제품 판매 증가에 한몫했다.

물론 온라인 매출은 더 큰 폭으로 늘어 이번 1분기(2020년 2월 3일~5월 3일) 매출에서 작년 1분기에 27%였던 온라인 매출 비율이 54%까지 늘었다.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물품을 파는 리테일러들은 코로나19의 영향에도 큰 타격이 없다.

미국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전문 리테일 업체 베스트바이는 2004년부터 스마트 기기에 능숙한 전문가 ‘긱(geek : 괴짜)’들이 상담을 통해 제품을 추천하고 설치와 기술 지원, 수리까지 전담하는 긱 스쿼드(geek squad)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전자 제품을 이커머스로 구매하면 경험할 수 없는 장점이다. 미국 최대 건축 자재 유통 업체인 홈디포도 건축 전문가들에게 상담 받을 수 있어 미국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이번 팬데믹 때 사람들이 집 안에 오래 있다 보니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지만 수리가 필요한 것들이 눈에 띄었고 집을 좀 더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까지 더해져 홈디포 방문자 수가 대거 늘어나게 됐다.

그 덕분에 홈디포의 1분기(2020년 2~4월) 매출은 록다운 기간(3월 중순~4월)인데도 불구하고 전년 동기 대비 9.6%나 증가했다. 특히 홈디포의 온라인 주문은 같은 기간 전년 대비 80%나 늘었다.

제품의 품질 또한 중요한 경쟁력이다. 미국 대형 유통 업체 타깃은 미국 유통업계의 최강자인 월마트·아마존·코스트코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들 업체보다 가격 경쟁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타깃은 높은 품질의 제품을 강조해 고소득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리테일러다.

타깃은 2017년 12월 온라인 배송 업체 시프트를 5억5000만 달러에 인수해 아마존에 뒤지지 않는 배송 속도를 보여준다.

또한 물건을 기다리기 싫지만 매장을 방문하기도 원하지 않는 소비자들을 위해 온라인 주문 후 매장 밖에서 제품을 찾는 커브사이드 픽업(curbside pickup) 서비스를 제공한다.

코스트코는 고객들에게 연회비를 받는 대신 물건에선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 판매 물품 대부분 믿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신뢰가 쌓여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이커머스의 비율은 점점 높아질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가진 업체라도 소비자들에게 차별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마련한다면 수십 년 뒤에도 끄떡없을 것이다.

(다음 연재는 ⑦유통-이커머스 리테일러)

ericjunghyuk.choi@gmail.com
미국 리테일러 몰락 속에 살아남은 ‘그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6호(2020.07.18 ~ 2020.07.24) 기사입니다.]